말문이 트였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전후로 남한과 북한 사이에 특사가 오고가더니 냉랭했던 침묵이 물러가고 남북한 사이에 말문이 열렸다. 더욱 놀라운 일은 한국 정부의 특사를 통하여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초대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을 하기로 하였다는 반가운 소식이 보도되었다. 4월에는 남북 정상회담이 있을 것이며, 5월에는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한다.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화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서로 마주하여 마음이나 감정 그리고 어떤 일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것을 대화라 한다. 대화는 단순히 화자(話者)의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은 대화를 통하여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고 상대방의 생각과 정보를 전달 받으며, 이러한 상호과정을 통하여 관계를 형성해 간다. 대화는 모든 관계의 시작이며, 나아가 선하고 유익한 대화는 그 사람의 사람됨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가끔 대화 상실(喪失)이니 불통(不通)이니 하는 말을 한다. 말을 할 줄만 알고, 들을 줄 모른다. 자기주장만 이야기하고 상대방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사람 사이는 물론 국제 사회에서도 대화 상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 글로벌 시대, 복잡다원화 시대일수록 소통 곧 대화가 중요하다. 대화가 살아나야 한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삶은 대화를 필요로 한다. 대화를 통하여 자기를 알리고 상대방을 이해하며 사회 속에서 인간다움을 실현 해 간다. 그러므로 대화의 상실은 인간성 상실과 다르지 않다.
이는 어디 개인뿐이겠는가? 남한과 북한은 같은 겨레이면서 그 동안 진정한 의미의 대화가 별로 없었다. 최근 9년여 동안만 보더라도 상호 비방만 있었다. 미국과 북한 사이 대화 부재는 새삼 불필재언(不必再言)이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굳게 닫혔던 대화의 문이 활짝 열리고 있다. 이 얼마나 기다렸던 일인가. 그러나 남한, 북한, 미국 사이에 열리게 될 대화를 바라보는 관점은 한반도 국제 정세(政勢)를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북한이 비핵화의 의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줄 때가지 끝까지 철저한 제재와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그 동안 반복 되어왔던 대화와 제재 해제 그리고 결렬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의 기억 때문인 듯하다. 그럼에도 대화에 의미를 두어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하여 비핵화를 도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편에서는 대화보다는 북한 정권이 쓰러질 때까지 경제적 압박을 가하거나 이른바 코피 터트리기 작전 같은 군사적 옵션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문가들마다 혹은 바라보는 이 마다 내 놓는 주장이 참으로 다양하다.
예수께서 몸으로 보여주신 사랑과 평화의 가치를 믿는 종교인의 입장에서 말을 한다면 미북간의 핵문제는 군사적 옵션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대화를 통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기울였던 대화의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대화 무용론(無用論)을 이야기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북한과 미국은 모두 진정성을 갖고 대화에 임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대화의 자리에서 화자(話者)는 말하는 이로서의 목적이 있고, 청자(聽者)는 듣는 이로서 목적이 있다. 진정성 있는 대화란 서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듣고, 행동을 통하여 보여주어야 한다. 상대방의 주장과 요구를 들어줌 없이 자기 잇속만 차리려 하거나 진정성 없는 대화는 개인이건 국가건 상호불신과 결렬을 가져오는 공허한 대화가 될 뿐이다.
많은 분들이 북한에게 비핵화를 요구한다. 핵 공격의 위협에 노출된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요구이다. 비록 쉽지 않은 일이지만 진정성 있는 대화가 열린다면 비핵화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이제는 대화를 앞두고 북한이 미국에게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깊이 헤아려 보아야 할 때이다. 어떻게 하면 미국과 북한이 그간의 상호불신을 극복하고 서로의 주장을 충분히 듣고 수용하여 비핵화를 넘어 관계 정상화에 이를 수 있을지 마음을 모아야 할 때이다. 이번에 열릴 정상간 대화가 미국과 북한을 정상적 관계로 이끌고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와 통일을 가져오는 새로운 역사를 여는 대화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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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성공회 워싱턴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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