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지구촌 전체에 휘몰아치는 ‘미투(Me Too)’ 바람을 많은 한인들이 즐겨 화제로 삼고 있다. 하지만 미국인들 입에 회자되고 있는 또 다른 풍자 말(meme)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사려와 기도(thoughts and prayers)’라는 문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특히 공화당)이 그 용어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무차별 총격으로 인한 대량살상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치인들은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사려와 기도를 드린다”고 판에 박은 듯 말한다. 콜럼바인 고교 총격사건(1999년), 한인학생 조승희의 버지니아텍 총격사건(2007년), 샌디 훅 초등학교 총격사건(2012년), 올란도 나이트클럽 총격사건(2016년), 라스베이거스 야외공연장 총격사건(2017년) 때도 그랬다.
우리 한인들도 지인의 별세 소식을 이메일이나 웹사이트를 통해 듣게 되면 “삼가 조의를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댓글을 단다. 거의 글자 하나 틀리지 않는 우리 식 ‘사려와 기도’이다. 하지만 그건 개인적 예법의 발로여서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다르다. 공인들에겐 ‘사려와 기도’만 아니라 그 이상의 행동이 요구된다.
지난 1995년 이후 정치인들은 연방의회에서 ‘사려와 기도’를 무려 4,000번 이상 표명했다. 같은 기간 전국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이 매일 평균 7명씩 총에 맞아 죽었다. 어린이 20명과 어른 6명이 숨진 샌디 훅 초등학교 총격사건 이후 지금까지 6년간 총기규제법이 강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총기구입이 더 용이하도록 연방정부와 일부 주정부가 법을 개악했다.
정치인들의 ‘사려와 기도’가 14명이 피살된 남가주 샌버나디노 총격사건(2015년) 후에도 쏟아지자 뉴욕 데일리 뉴스지는 이를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그 말이 ‘무의미한 상투어’라고 결론지었다. 언론은 또 전국총기협회(NRA)로부터 선거자금을 받는 공화당 정치인들이 유난히 ‘사려와 기도’를 많이 들먹인다며 이들이 모두 겉다르고 속다른 위선자라고 꼬집었다.
그래선지 트럼프는 지난주 17명이 숨진 플로리다주 파크랜드 고교 총격사건 후 말을 ‘기도와 조의’로 바꿨다. NRA는 2016년 선거 때 트럼프의 당선과 라이벌인 힐러리 클린턴의 낙선을 위해 3,000만달러 이상을 퍼부었다. 그 사건 후 “오늘은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고약한 날”이라고 바꿔 말했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도 NRA로부터 330만달러를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리다 사건 후 전국 어린이들에게 “너희를 돌봐주고, 너희를 사랑하고, 너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해줄 사람들이 너희들 곁에 있다”고 떠벌렸다. 그 다운 거짓말이다. 트럼프는 정신질환자들의 총기구입을 제한한 오바마 행정부의 관계법을 지난해 뒤집은 장본인이다. 플로리다주 총격범은 정신질환 병력의 19세 퇴학생이다.
정치인들의 천편일률적 ‘사려와 기도’에 식상한 국민들이 소셜미디어에 조롱과 비난의 글을 쏟아내고 있다. 그 용어를 ‘정책과 변화’로 바꾸라고 타이르기도 하고, NRA에서 돈을 받은 정치인들은 오는 11월 선거에서 끝장내겠다고 위협하는 글도 있다. 이들 정치인에게 기부금 수표를 보내며 금액 난에 액수 대신 ‘사려와 기도’라고 적는 장난이 유행하고 있다.
기도를 최우선으로 삼는 크리스천들도 거든다.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성경구절(야고보서 2:14~16)을 인용한다.
기성세대엔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며 마틴 루터 킹 같은 새로운 민중지도자를 기대하는 사람도 있다. 희망은 있다. 킹 목사가 “나에겐 꿈이 있다”고 포효하며 대규모 집회를 열었던 워싱턴DC의 내셔널 몰에서 오는 24일 플로리다 고교생들을 비롯한 전국의 청소년들이 ‘우리의 목숨을 위한 행진’ 시위를 벌이며 총기규제를 요구한다. 부디 성공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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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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