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의 복수 (An Actor’s Revenge·1963)
▶ 반전영화 ‘버마의 하프’ ‘들불’ 등, 의식있는 전후 일본의 대표 거장
전후 일본 영화계의 거장 중 하나로 생애 총 68편의 영화를 만든 곤 이치가와 감독(2008년 92세로 사망)의 ‘배우의 복수’(1963·사진)는 가부키 배우를 주인공으로 한 배신과 보복의 걸작 멜로드라마이다.
이치가와의 첫 시네마스코프 작품으로 마치 무대극을 보는 것 같은데 색채와 안무와 세트 그리고 촬영과 재즈성의 음악과 연기가 모두 출중하다. 각본은 이치가와의 영화 각본을 여러 편 쓴 이치가와의 아내 나토 와다가 썼는데 이 영화는 1935년에 만든 동명영화의 신판이다.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온 카주오 하세가와는 두 영화에 모두 주연했는데 신판의 역은 그의 300번째 역이다. 예술과 실제 삶의 교직을 탐구한 스타일 과감하고 시각적으로 눈부신 작품인데 이번에 크라이티리언(Criterion)에 의해 복원된 블루-레이로 나왔다.
19세기. 유키타로는 7세 때 부모가 세 명의 탐욕스런 상인들로 인해 자살하는 비극을 맞는다. 그를 입양한 사람이 오사카의 가부키 배우 매니저 기쿠노조 나카무라. 자연히 유키타로는 성장해 가부키 배우인 오나가타가 된다. 예명은 유키노조. 오나가타는 여자 역을 하는 남자 배우를 일컫는 말로 이들은 실제 생활에서도 여자 옷을 입고 여자의 어투와 태도를 그대로 간직하고 산다.
여러 해 후 수퍼 스타가 된 유키노조는 극단을 이끌고 에도로 온다. 에도에는 그의 원수들인 세 상인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유키노조는 이들에 대한 치밀한 복수 계획을 마련한다. 결국 세 명의 상인들은 다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데 유키노조는 원수 중 한 사람의 딸의 사랑마저 받게 된다.
그리고 유키노조는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깊은 회한을 느끼고 무대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진다. 영화는 의적 스타일의 산적 야미타로(하세가와)에 의해 냉철하게 관찰되면서 그의 냉소적인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연극과 영화를 혼성한 듯한 작품으로 검소한 세트에서 연출되는 가부키의 내용을 포착한 촬영이 보기 좋은데 토실토실 살이 찐 하세가와가 변화무쌍하고 화려한 연기를 한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만화영화로 시작해 디즈니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이치가와는 일본 전후의 사회문제 노출을 두려워 않는 사회의식이 강한 감독이었다. 아키라 구로사와와 비견할 만한 감독이었다.
그는 예술영화뿐 아니라 사무라이 영화, 멜로드라마, 풍자 코미디, 기록영화 및 미스터리 등 전 장르의 감독이었다. 그의 걸작 기록영화가 도쿄 올림픽을 생생히 담은 ‘도쿄 올림피아드’(Tokyo Olympiad·1965)이다.
인본주의자인 이치가와는 1964년 도쿄 올림픽에 관한 이 영화에서 일본을 내세우거나 승자의 기쁨에 치중하기보다 3등을 한 선수와 경기를 구경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고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간적 체취가 물씬 풍기는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명작이다. 나치 독일을 찬양한 레니 리펜슈탈의 베를린 올림픽 기록영화 ‘올림피아드’와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작품이다.
이치기와가 진지한 감독으로서 국내외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 영화는 서사 반전극 ‘버마의 하프’(The Burmese Harp·1956)다. 이 영화와 그의 또 다른 반전영화 ‘들불’(Fires on the Plain·1957)은 이치가와의 대표적인 2편의 반전영화로 둘 다 그의 아내 와다가 각본을 썼다. 두 영화는 이치가와의 또 다른 이름과도 같은 것으로 전쟁의 비참함과 함께 다치기 쉽고 지키기 어려운 평화를 숙연히 찬양하고 있다.
‘버마의 하프’는 태평양전쟁 말기 버마전투에서 살아남은 일본군 미주시마가 종전 후 귀국을 거부하고 중이 돼 버마 전장 곳곳에 널려있는 전우들의 사체를 맨손으로 묻어주면서 겪는 영적 변신을 다룬 숭고한 작품이다.
‘들불’은 필리핀 전투에 투입된 패잔 일본군들의 처절한 생존투쟁을 그린 끔찍할 정도로 사실적인 작품이다. 전쟁의 광기와 비인간성을 단죄한 명작인데 살기 위해 인육마저 먹는 군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구토가 인다. 대사가 거의 없는 묵시록적인 반전영화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이치가와의 영화가 색채 영상미가 화사하니 고운 ‘마키오카 자매들’(The Makioka Sisters·1983)이다. 지금도 기모노를 곱게 차려 입은 마키오카네 장성한 아름다운 네 딸이 만개한 벚꽃 구경을 하는 총천연색 장면이 눈에 선하다.
일본의 유명작가 주니치로 다니자키의 소설이 원작으로 눈부시게 아름답고 심오하면서 또 조락의 비감을 함께 섞어 가족을 한데 묶는 가족애를 강조한 영화다. 1938년 2차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오사카에 사는 몰락해 가는 부잣집 마키오카의 네 딸의 눈을 통해 본 일본의 사회와 정치적 변화상을 그린 명화다. 기모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이치가와는 생전 골초였는데 결국 폐의 이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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