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나는 팔순을 맞아 팔순 잔치와 오십년의 결혼 생활을 기념하는 골든 에니버서리를 함께 치뤘다. 가족들과 많은 지인들이 참석해 우리들을 축하해주었다. 성대한 잔치였다. 나는 이날을 기해 보통때 잘하지 못했던 고백을 많은 지인들 앞에서 했다.
"단! 당신은 지난 오십년의 세월 동안 좋은 남편,좋은 아빠였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었어요. 땡큐! 아이 러브 유!" 박수가 터져 나왔으며 남편은 몰래 눈물을 훔쳤다.
사실 남편도 이날을 위해 하고 싶은 말들을 적어왔으나 식사를 시작하자 주위가 너무 소란스러워 그 글을 낭독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 몇분의 지인들에게 이메일로 띄었다. 글은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자신이 대학을 졸업하고 징집을 당해 군인으로 처음 한국 땅에 떨어졌을때 자신은 하나님을 향해 “와이 미? 와이 미? 하고 부르짖자 나중에 알고보니 그 대답은 옥교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미국에서도 외진 시골인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온 자신을 만나고 결혼까지 하게 된 그 이유가 김옥교라는 여자를 만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당시 이미 결혼에 실패를 하고 아이가 두명이나 딸린 이혼녀였다.
"결국 많은 굴곡 끝에 우리들은 결혼을 했고 아내인 나는 그에게 변화무쌍한 훌륭한 삶을 주었다고, 그래서 자신은 영원히 내게 감사한다고, 제니퍼(미국 이름)는 늘 용감한 방랑자이며 비행기도 한번 타본 적 없는 그녀는 미국 땅에서 결국 삶을 멋지게 해냈다고. 또 옥교이며 제니퍼인 그녀는 예술가며 글쟁이며 교회 권사님이며 교회 개척자이며 암에서 살아난 생존자이며 진실되고 음식을 잘하고 화초도 잘 가꾸며 친구 관계는 친구이거나 적이거나 둘 중에 하나인 사람이죠. 또 강한 성격의 소유자며 네명의 아들을 키워낸(자신까지 포함한) 엄마이고 이 동네에서도 갱단 두목 같은 대단한 인솔력을 가지고 있죠. 그녀는 지금도 가끔 “당신 언제 철들래?하고 말하죠.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그녀는 세 나라 말을 할 수 있는데 한국어, 영어, 또 하나는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 쓰는 욕이죠. 그녀가 내게 화가 났을때 그녀는 두나라 말을 섞어서 스웨어를 하죠. 나는 우리들 인생의 전반부를 함께 살아온 것에 대해 감사하며 지금부터 전개되는 후반부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많은 기대를 합니다.사랑합니다. 단으로 부터---."
글은 이런식으로 끝났다. 남편인 단은 내 두아들을 키웠고 그들이 처음 미국에 왔을때 그의 나이는 고작 29살 밖에 되지 않았었다. 그 나이에 말도 통하지 않던 틴에이저인 외국 아이들을 키우자니 그의 고생도 만만치 않았다. 내 남편은 나보다 일곱살이나 연하요 처음 만났을때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해본 숫기 없던 총각이었다.
만약 그의 부모가 한국인이었다면 나를 죽이겠다고 몽둥이 들고 쫓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부모나 누나는 진심으로 우리 아이들을 다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때 나는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마음씨가 좋은가 하고 감격해 하고 고마워 했다. 자신들의 핏줄만 고집하는 한국인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오십년을 함께 동거동락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 결혼 생활이 행복했던, 아니던 그 숫한 세월을 함께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많은 세월을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고통을 나누었다는 것은 상 받을만 한일이다.
사실 내 남편에게 한가지 흠이 있다면 그건 술을 좋아하는 것이다. 수 십년을 술을 마셔와서 처음엔 그것 때문에 많이 싸웠으나 이제는 포기했다. 결국 알콜 중독자와 싸워봤자 그때 뿐이다. 우리들은 이제 애인이었던 관계는 끝나고 친구가 되었다. 방도 각방을 쓴 지 몇 년이 되었다. 밥도 남편은 양식, 나는 한식을 먹는다. 가끔 그는 내방에 와서 자신을 언제 이 방에 초대할 것이냐고 농담 비슷이 말한다. 그는 상당한 지식인이며 유머러스한 데가 있어 말하자면 좀 귀여운데가 있다. 나는 이 라스모어라는 동네에 와서 매일처럼 친구들과 돌아다니고 그는 늘 혼자 집에 있다.나는 늘 운동도 해야지 걸어야지 극장도 가고 아픈 친구들도 들여다 봐야 하고 해서 매일매일이 바쁘다.매일 매일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겐 늘 베풀면서 내게만 인색해”라고 그는 투덜댄다. 나는 어느편이냐 하면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라는 말을 믿는다. 아무리 남편이라도 걷지도 않고 늘 베란다에서 하루 종일 보내는 사람을 나도 어쩔 수 없다. 이런 명언이 있다.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으나 물을 먹일 수는 없다라고.
우리들이 앞으로 얼마를 더 살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얼마를 살던지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있다. 오래 산다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살아서도 품위를 유지하고 죽을 때도 품위를 가지고 죽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언덕길을 걸으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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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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