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만해도 ‘롭 포터’는 대부분 미국인들에겐 생소한 이름이었을 것이다. 요즘 백악관을 뒤흔들고 있는 가정폭력 스캔들의 장본인으로 뉴스의 중심에 서게 된 그는 ‘트럼프의 가장 중요한 막후 참모’ 중 하나로 꼽혀왔다. 정책 결정 메모에서 뉴스 요약까지 대통령에게 가는 모든 문건을 관리하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트럼프 곁을 가장 가까이 지켜온 참모에 속한다.
출범 1년여에 다른 행정부들보다 2~3배나 높은 이직률 34%를 기록할 만큼 인재난을 겪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그의 프로필은 뛰어나다. 하버드대, 로즈장학생으로 옥스퍼드, 다시 하버드 법대를 거친 학력은 말할 것도 없고 포드-레이건-아버지 부시 등 세 공화당 대통령의 백악관 참모를 지낸 하버드대 교수 아버지의 아들로 공화당 중진 상원의원들의 보좌관도 역임, 정계 인맥도 탄탄해 트럼프 참모로는 드물게 공화당 기성정계와 유대도 깊었다.
훤칠한 외모까지 갖춘 유능한 40세 젊은 비서관 포터는 대통령 출장 수행과 연설문 작성 등으로 역할을 늘려가면서 트럼프의 이너서클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직속상관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의 신임을 받으며 켈리의 백악관 쇄신을 최측근에서 도와온 이 ‘유능하고 성실한 인재’ 포터의 화려한 프로필 이면엔, 그러나 가정폭력 혐의에 휩싸인 어두운 모습이 있었다. 그에게 구타당했다는 2명의 전 부인들의 가정폭력 주장이 지난 주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고 다음 날 포터는 사임했다.
어느 조직에서나 있을 수 있는 개인의 스캔들인 롭 포터 드라마는 순식간에 정치적 스캔들로 비화했다. 수명 짧은 여타 트럼프 스캔들과는 다르게, 가라앉기는커녕 연일 증폭되어 왔다.
초반부터 허술했던(정확히 표현하자면 정직하지 못했던) 백악관의 대응이 주요 원인이다.
가정폭력의 심각성과 트럼프 행정부의 인재난 등 포터 스캔들에는 몇 가지 뇌관이 묻혀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것은 백악관 신원 검증시스템의 허점이었다. 가정폭력이라는 치명적 의혹을 받는 포터에게 어떻게 1년 넘게 국가기밀 정보를 접하는 직책을 담당하게 할 수 있는가 - 이 상식적 의문에 대한 백악관의 첫 대답은 그런 줄 몰랐다, 였다.
인사결정권을 가진 고위 참모들은 그의 가정폭력 의혹을 언론보도 후 알았으며 아직은 ‘혐의’에 불과하니 조처를 유보한다는 식으로 하루를 넘겼고 곧 대통령까지 가세해 오히려 포터의 ‘능력과 인품’에 대한 찬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전부인의 구타사진이 공개되고 포터가 사임한 전후 “충격을 받았다”는 켈리는 그 사진을 본 후 40분 만에 포터의 사임을 종용했다고 보좌관들에게 말했다. 이미 이때부터 웨스트 윙 스탭들 사이에선 켈리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불신과 함께 내분이 일기 시작했다.
FBI가 담당하는 백악관 참모들에 대한 검증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그가 타인으로부터 협박 당할만한 과거 스캔들 등 약점을 가졌는지 여부다. 협박을 당해 정부기밀이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터의 첫 부인은 지난해 1월 FBI가 자신에게 포터가 협박당할 가능성에 대해 물었으며 가정폭력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 ‘있다’고 대답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포터 사임 후에도 백악관 고문 단 맥건과 켈리가 이미 몇 달 전부터 가정폭력 의혹 사실을 알면서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언론보도를 통해 잇달았으나 백악관은 이들의 사전 인지를 인정하지 않은 채 포터에 대한 신원조회는 아직 진행 중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번 주 들어 트럼프의 예산안 발표 등의 뉴스가 이어지면서 가라앉는 듯했던 스캔들 파문은 13일 크리스토퍼 레이 FBI국장의 의회증언 ‘폭탄’으로 다시 뉴스의 중심으로 밀려들었다. 지난해 1월, 3월, 7월, 11월, 올해 1월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타임라인을 따라 레이국장은 포터에 대한 검증이 이미 완료되어 그 최종보고서를 백악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정황상 켈리 등 고위 참모들이 포터의 가정폭력 의혹을 몰랐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FBI가 아닌, “백악관 자체 내 검증이 진행 중”이라는 백악관의 궁색한 변명이 나왔지만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또 거짓말을 낳으니”의 전형적 해명이 설득력을 가질 리 없다. 급기야 의회가 조사에 나섰다. 하원 감독위가 서로 주장이 엇갈리는 켈리실장과 레이국장에게 언제부터 누가 무엇을 알았는가에 대한 답변을 2월말까지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그나마 이번 스캔들에서 백악관에 다행인 것은 트럼프가 직접적인 책임은 피해갈 듯싶어서다. 대통령 자신도 별 관심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사실 개입하고 싶다 해도 해결을 위한 신통한 옵션이 없다. 끊임없이 성추문에 휩싸여온 트럼프 자신에겐 ‘가정폭력’이라는 이슈자체가 불편한데다 타이밍도 좋지 않다. 로버트 뮬러 특검의 조사가 가속화되고 있는 한편, 의회주도권이 달린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스캔들의 파문을 속히 가리 앉힐 해결책으로 트럼프 측근 일각에서 켈리 해임 권고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그것 역시 양날의 칼이다. 이번 스캔들을 ‘위기’로 보고 켈리 해임의 강수를 쓸 것인지, 잠깐의 ‘헛소동’으로 보고 켈리의 백악관 안정 체제를 지속시킬 것인지, 트럼프 측근의 의견도 양분되고 있다.
트럼프 백악관 출범 초기, 궁중암투를 벌이던 스티브 배넌이 밀려나고 사위 재럿 쿠슈너가 조용해졌어도 백악관의 막장 드라마는 주연들이 바뀐 시즌 2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다. 만약 사면초가에 몰린 켈리가 해임된다면 그 이후 백악관에 몰아칠 격변은 또 다른 차원의 드라마를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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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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