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쇼트트랙 임효준(22·한국체대) 선수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첫 번째 금메달을 선물했다. 10일 오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임효준 선수가 2분10초485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네덜란드의 싱키 크네흐트(2분10초555)를 따돌리고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7번의 수술과 8번째 도전 끝에 금메달을 목에 건 ‘부활의 아이콘’ 임효준.

그는 앳된 얼굴과 달리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지금까지 수술대에 오른 것만 일곱 번. 빙판에 스케이트 날이 박히면서 한 번은 발목이, 한 번은 정강이가 부러졌고 넘어지면서 펜스에 세게 부딪치는 바람에 허리 골절상을 입기도 했다. 임효준은 “수술을 받고 나서 겨우 복귀하면 다시 다치는 일이 반복됐다”면서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많았는데 정말 평창올림픽 하나만 바라보고 이겨내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했다.

임효준을 최근 서울 한남동의 소속사(브리온컴퍼니) 사무실에서 만났다. 평창올림픽 출전 선수 중 최고 오뚝이를 꼽을 때 해외에 여자 알파인 스키의 린지 본(미국)이 있다면 국내에서는 단연 임효준을 먼저 떠올릴 만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6학년 선배들을 제치고 종별선수권에서 우승하는 등 될성부른 떡잎으로 주목받던 임효준은 이후로 지독한 부상 악령에 시달렸다. 중학교 1학년 때 정강이뼈가 부러져 1년 반 동안 링크를 떠나야 했다. 임효준은 대구에서 혼자 서울로 올라와 코치와 2년 동안 원룸에서 생활하며 재기를 별렀고 중3 때 인스브루크 동계유스대회에서 금·은메달을 따기도 했다. 그러나 고2 때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입어 또 6개월을 쉬어야 했고 복귀하자마자 이번에는 발목 인대가 끊어졌다. 이후 재활을 거쳐 나선 대회에서는 앞서 넘어져 있던 선수에게 걸려 허리와 손목이 부러졌다.

그렇게 서서히 잊혀가던 임효준은 지난해 4월 대표선발전에서 당당히 1위로 태극마크를 달아 체육계 전체를 술렁이게 했다. 안방 올림픽을 앞두고 성인 대표팀에 처음으로 발탁된 것이다. 불운의 아이콘으로 통하던 임효준은 지금은 ‘쇼트트랙 괴물’ ‘남자 대표팀 에이스’로 불리며 올림픽 금메달 희망을 부풀리고 있다. 올림픽 시즌인 2017-2018시즌 두 차례 출전한 월드컵에서 1,000·1,500m 금메달, 500m 은메달을 땄고 5,000m 계주 금메달에도 힘을 보탰다.

가장 최근 다친 허리가 아직 안 좋지만 임효준은 “올림픽 전까지는 컨디션을 100%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서울에서 열렸던 4차 월드컵 때는 현장을 찾은 가족을 의식하는 바람에 조금 흔들렸는데 한 번 경험을 했으니 올림픽 때는 제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침착하게 제 스타일대로만 경기하면 좋은 성적이 따라올 것”이라고도 했다.





임효준의 경기 스타일은 2006 토리노·2014 소치올림픽 3관왕인 빅토르 안(러시아·안현수)과 비교된다. 단거리와 장거리를 가리지 않는 폭발적인 스피드로 ‘제2 안현수’라는 별명도 얻었다. 임효준은 “현수형이 토리노 때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본격적으로 쇼트트랙 선수의 꿈을 키웠다. 제 롤모델이고 멘토”라며 “저도 국가대표를 목표로 하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임효준은 올림픽 첫 출전 경기인 2월10일 1,500m 종목을 특히 신경 쓰고 있다. 이 경기는 한국 선수단의 첫 금메달이 나올 종목으로 기대된다. 한국 최초 동계올림픽의 첫 금메달리스트라는 상징성 외에도 임효준이 1,500m 대권에 집중하는 이유는 또 있다. “역대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보면 1,500m를 잘 마치면 다른 종목들도 잘 치렀다”는 설명. 그는 “쇼트트랙은 흐름이다. 그래서 첫 경기에 승부수를 던질 것”이라며 “대표팀 3명이 모두 결선에 올라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덧붙여 “첫 경기가 금메달이면 좋겠다. 잘 풀리면 500·1,000m도 메달을 딸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로 다관왕 의지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쇼트트랙 대표팀은 이달 말일을 전후해 결전지인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마지막 담금질에 들어간다.

쇼트트랙은 전통의 효자종목이지만 4년 전 소치올림픽에서 남자 대표팀은 노메달 수모를 겪었다. 임효준은 “여자팀 못지않게 남자팀 분위기도 정말 좋다”며 “남자의 경우 전력 평준화로 오히려 우리가 외국팀을 따라가야 하는 입장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더 노력하고 있다. 저희끼리도 ‘더 분발해서 올림픽이 끝나도 관심이 끊기지 않게 한 번 해보자’는 얘기로 서로 격려한다”고 대표팀 분위기를 전했다.

“저는 ‘의심하지 마라’는 말을 소셜미디어에도 적어놓고 늘 되뇌면서 훈련합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하는 의심이 드는 순간 꼭 실수가 나오더라고요. 평창올림픽 스타트 라인에서도 저 자신을 믿고 후회 없는 레이스를 펼쳐보겠습니다.”

평창올림픽 개막 전 출전 각오를 다졌던 임효준은 그동안의 설움을 떨치듯 후회 없는 레이스로 국민에게 첫 금메달을 안겨주었다./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서울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