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일전에 내 이발사가 자신의 돈을 몽당 비트코인에 쓸어 넣어도 괜찮을지 넌지시 물어왔다.
사실 그가 1년 전에 비트코인을 구입했다면 지금쯤 제법 짭짤한 재미를 보았을 터였다. 다른 한편으로 1635년 튤립 구근을 매입한 네덜란드의 투지꾼들 역시 한동안 잘 나갔다. 튤립 가격이 폭락한 1637년 초 이전까지는 말이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허망하게 터져나갈 거대한 풍선에 불과한가?
그렇다. 그러나 그 거품은 자유의지 이념(libertarian ideology)이라는 보호막 안쪽에 테크노 신비주의(techno-mysticism)라는 포장으로 싸여있다.
그리고 그 포장을 벗기다 보면 우리가 사는 시대에 관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
비트코인에 관해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동굴 속 거주자에겐 아마 이렇게 설명해주는 것이 가장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가장 많이 그리고 널리 알려진 비트코인의 예는 ‘암호화폐’이다. 다시 말해 컴퓨터에 디지털 기록으로만 저장된, 물리적 실체가 없는 자산이다.
암호 화폐를 역시 실체 없는 디지털 기록인 일반 은행계좌와 구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암호화폐가 어떤 특정한 금융기관의 서버 안에 담겨있지 않다는 점이다. 비트코인의 존재는 여러 곳에서 유통되는 기록들로 문서화된다.
그리고 소유권은 신원을 밝히는 것으로는 입증되지 않는다. 비트코인 소유권은 비밀암호에 의해 확인된다. 암호작성 및 판독기법을 뜻하는 암호화에서 파생된 기술을 이용해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정보를 전혀 밝히지 않은 채 가상화폐에 접근할 수 있다.
깔끔한 방법인긴 한데 어디에 소용이 될까?
원칙적으로, 비트코인은 물건 값을 전자결제 하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데빗카드, 페이팔, 벤모 등도 전자결제수단이다. 게다가 비트코인은 이들에 비해 투박하고 더디며, 비용이 많이 드는 결제 수단이다.
실제로 비트코인 관련 총회에서조차 참석자들이 회비로 낸 비트코인을 종종 받지 않는다.
당신이 사고파는 물건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을 원치 않을 때를 제외하곤 비트코인을 고집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비트코인은 마약거래와 성매매 및 암거래 등에 주로 사용된다.
따라서 비트코인은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현금이 아니다. 비트코인은 100달러짜리 지폐의 디지털 형태에 해당한다.
비트코인과 마찬가지로 100달러짜리 지폐는 일상적인 거래에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점포는 이들을 받지 않으려든다. 그러나 ‘벤자민’은 도둑, 마약딜러와 조세범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우리 중 대다수는 몇 년 간 100달러짜리 지폐를 한 번도 보지 않고 지낼 수도 있지만 현재 유통되는 전체 달러화 가치의 78%에 해당하는 1조 달러 이상이 100달러 지폐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현금이 가득 담긴 무거운 짐 가방을 끌고 다닐 필요 없이 세계 어디서건 비밀거래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비트코인이 100달러 지폐에 비해 훨씬 우월한 대안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현실과의 접목이라는 결정적인 특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달러는 금과 같은 다른 자산의 뒷받침을 받지 않는 불환지폐다. 하지만 달러의 가치는 미국 정부가 세금을 달러화로 납부 받고, 또 달러화 결제를 요구한다는 사실로 인해 보전된다.
달러지폐의 구매력은 연방준비제도에 의해 안정되는데,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인플레이션이 지나치게 높으면 달러 공급을 줄이고, 반대로 디플레이션을 차단하기 위해 공급을 늘린다. 100달러짜리 지폐는 이처럼 안정적인 달러 100개의 가치를 지닌다.
이와 대조적으로 비트코인은 내재적인 가치가 전혀 없다. 이처럼 현실에 매여있지 않은데다 사용정도가 대단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비트코인의 가격은 거의 순수한 투기로 결정되고, 바로 이 때문에 변동성이 대단히 높다.
비트코인은 지난 6주 사이에 가치가 40%나 떨어졌다. 비트코인이 실질적인 통화라면 대략 연간 8,000%에 해당하는 인플레율을 보인다는 얘기다.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비트코인의 특성 탓에 암호화폐는 시장 조작에 대단히 취약하다. 지난 2013년 단 한 명의 트레이더가 저지른 농간으로 인해 비트코인 가격이 단숨에 7배나 상승한 적도 있다.
지금은 누가 비트코인의 가격을 움직이는 않을까?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일부 관측통은 북한이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나 일찌감치 비트코인을 구입한 사람들이 상당한 이득을 보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글쎄, 버니 매도프와 함께 투자한 사삼들은 상당한 돈을 벌었고, 최소한 오랫동안 그랬던 것처럼 보인다. 세계 유수의 거품 전문가인 로버트 쉴러가 지적하듯 자산 거품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폰지 사기다.”
거품의 초기 투자자들은 새로운 투자자들을 끌고 들어오면서 상당한 돈을 챙기고, 이런 이윤이 더 많은 사람들을 잡아당긴다. 이 과정은 구성원들이 현실점검에 나서거나 새로운 투자집단이 소진될 때 갑작스레 끝나면서 고통스런 종말을 맞게 된다.
암호화폐에 관해서는 또 하나의 추가적인 요인이 존재한다: 비트코인은 거품이지만 컬트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컬트의 초기 멤버들은 (현존하는 암호화폐의 상당량을 훔쳐간 민간 해커들이 아니라) 사악한 정부가 그들의 돈을 훔쳐가고 있다는 피해망상적인 환타지에 사로잡혀 있다.
비트코인에 대해 부정적 기사를 쓴 한 언론인은 기사로 인해 그처럼 많은 증오 이메일을 받아보긴 처음이라고 털어놓았다.
따라서 이발사가 물어본 비트코인 구입 질문에 대한 대답은 ‘No’다. 비트코인의 끝은 나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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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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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충고..
한탕주의는 작게먹고 크게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