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인타운의 한 칼국수 전문점을 찾았다가 잠시 추억에 빠졌다. 메인 메뉴가 나오기 전 조그만 공기에 100% 꽁보리밥이 담겨져 나왔다.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꽁보리밥이 애피타이저로 등장한 것이다. 오랜 만에 마주한 꽁보리밥을 게 눈 감추듯 먹었다. ‘예전에도 내가 이렇게 꽁보리밥을 좋아 했었나’ 싶을 정도였다.
내게는 꽁보리밥하면 꼭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내 짝이다. 그 친구는 일 년 열두 달 거의 매일 똑같은 도시락을 싸왔다. 완전 꽁보리밥에 반찬은 고추장 마늘장아찌가 전부였다. 1970년대 초중반이라 나라의 경제 사정이 어렵기는 했지만 서울 한복판 초등학교에서 꽁보리밥 도시락을 보는 것은 흔치 않았던 것 같다. 진수성찬도 매일 먹으면 질리게 마련일 텐데, 그런 도시락을 매일 싹싹 비웠던 친구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런 이야기를 어르신들에게 하면 “그래도 꽁보리밥 도시락이라도 먹었으니 다행”이라며 “우리 때는 먹을 것이 없어 도시락을 못 싸오는 학생이 태반 이었다”며 춥고 배고팠던 시절을 회상했다. ‘결식’ 하면 보통 가난한 나라에서만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의 경우 1960~1970년대는 말할 필요도 없고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지금까지 결식 아동문제를 겪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끼니를 거르는 아동 숫자는 67만 명으로 추산된다.
최근 미 언론의 ‘굶주리는 대학생들 많다’라는 기사도 마찬가지. 헤드라인만 보면 북한이나 아프리카 빈국의 이야기이겠거니 라고 생각하겠지만 대부분의 미국인이 상상하지 못했던 결식 대학생 문제가 미국의 새로운 사회·교육적 문제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세계 최강국, 풍요의 나라 미국에서, 그것도 어린이가 아닌 대학생들이 다이어트나 시험공부 때문이 아니라 돈이 없어 일상적으로 끼니를 때우지 못하거나 굶주린다니….
템플대학교 사라 골드릭-랍 교수 연구에 따르면 뉴욕의 경우 커뮤니티 칼리지 학생의 30%, 4년제 대학생의 22%가 결식으로 고통 받는다. 결식 대학생 문제는 UC 버클리나 노스웨스턴대 같은 명문대학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뉴스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20년 전 대학시절 캠퍼스내 카페테리아마다 넘쳐나던 음식, 쓰레기통마다 수북이 쌓인 음식쓰레기들을 생각하면 상상이 가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하는가 하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청춘시절 공부하면서 조금 고생하는 것이 어때”라고 하기도 한다.
사실 많은 미국 대학생들은 재학 기간 소요되는 여러 지출에 대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모 의존도가 낮은 편이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중산층 부모라도 모기지, 은행과 카드 부채 등에 시달리다 보면 넉넉히 지원해 줄 수 없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진행한 골드릭-랍 교수는 오늘날 대학생 결식 문제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대학등록금은 사상최고로 치솟고 있지만 가구 소득과 재산은 쪼그라들고 있는 실정”이라며 “특히 대학생들의 굶주림과 주거문제는 학업 능력 자체를 훼손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 대학 동창회 운영사이트에 올라온 결식 대학생의 고백을 들어보자. “제때 졸업해야 한다거나, 학자금을 갚아야 한다거나, 좋은 학점을 받아야 하는 것 이상으로 정말 지치게 하는 것은 너무 배가 고프다는 것이고 그것은 정말 큰 스트레스다.”
끼니를 자주 거른 대학생들 중에는 만성 피로와 주의력 산만 등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결식이 단순한 굶주림이 아니라 학업 성적이나 졸업율과도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미국에서 결식은 대학생만의 문제는 아니다. 구호단체 ‘피딩 아메리카’(Feeding America)에 따르면 미국 내 4,100만명이 굶주림에 시달리며 이중 1,300만명이 어린이다.
학업에 매진해야 하고 예민한 시기에 마음껏 먹지 못한다는 것은 고통이며 수치심과 좌절감을 안겨준다. 정부차원의 지원확대도 시급하겠지만 이들을 배려하고 돕는 따뜻한 온정의 손길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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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광 부국장·특집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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