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 이어령 선생의 소원시가 유투브로 들어왔다. “벼랑 끝에서 새해를 맞습니다. 덕담 대신 날개를 주소서..”로 시작하는 기도문에 천인단애에 선 나라에 대한 절박감이 묻어있다.
대학 신입생 때, 그가 쓴 걸작,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감격 속에 읽고 문학회 강사로 모셨었다. 그의 날카로운 안광과 반항적 지성의 모습에 살을 베일듯 했다. 그러나 이제 그도 인생 역경을 겪고 존경받는 나라의 노스승으로 쓴 이 시엔 참회론 적 메세지가 담겨있다.
“삶에 지친 서민에게는 독수리의 날개를, 진흙 바닥의 지식인들에게는 구름보다 높이 나는 종달새의 날개를 주소서… 이 사회가 갈등으로 더 이상 찢기기 전에 기러기처럼 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라는 대목에서 멈춰 섰다.
왜 우리 민족은 함께 날지 못할까? 왜 근대 한국엔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추앙하는 지도자의 표상이 없을까? 이를테면 미국의 링컨이나 영국의 처칠, 중국의 손문처럼 민족 전체가 숭앙하는 알바트로스 (Albatross)와 같은 상징적 위인을 세우지못할까?
몇년 전에 ‘터어키의 아버지’ 케말 파샤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는 육군 장교로 1923년, 오스만 제국을 쿠데타로 타도했다. 그리고 대통령에 취임, 회교 칼리프제를 과감하게 폐지하고 종교와 정치를 분리, 근대 터어키를 세웠다. 그가 독재자의 오류와 인간적 약점이 많았음에도 국민들은 그의 업적을 높이 기리며 국부로 추앙해오고 있었다.
한국의 근대화를 이끈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했다. 그는 케말 파샤와 유사한 길을 걸었지만, 우리는 극심한 국론 분열로 그의 100주년 기념우표 조차 찍지못하고 있다. 김구나 안창호같은 지도자들 조차 국부들로 세우는 데 인색하고, 전쟁 때 우리를 도운 터어키를 지금 우리보다 못산다고 깔보는 한국인들이 과연 고결한 선비의 후예들일까? 사색 당파의 일족들일까?
알바트로스는 세상에서 제일 크고, 가장 멀리 나는 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란 격언은 이 바닷새를 묘사한 말이다.
‘방랑자(wanderer) 알바트로스’는 양 날개를 펴면 폭이 3 - 4 미터나 된다고 한다. 몸무게도 20여 파운드. 황금 독수리도 곁에 서면 왜소해 보인다. 눈부시도록 흰 몸체에 길고 유연한 날개로 활공하는 알바트로스의 모습은 당당하고 장엄하기까지 하다.
알바트로스는 먹이를 찾아 지구 반 바퀴의 거리도 거뜬히 돈다고 한다. 하루 평균 5-6백마일을 시속 50마일로 난다고 알려져 있다. 알바트로스가 상상을 초월하는 거리를 날수 있는 것은 바람 타기의 명수이기 때문이다. 큰 날개로 바람과 파도를 이용한 역동적 활공법을 구사한다.
알바트로스가 바람을 거슬려 날 땐 풍속이 낮은 바다표면으로 접근한다. 거긴 거센 파도가 강한 상승기류를 일으킴으로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부상한다. 바람을 뒤에서 받을 땐, 날개를 고정시킨 채 글라이더처럼 활공한다. 날면서 오히려 에너지를 축적하는 것이다.
초능력을 가진 알바트로스를 옛 사람들은 영물로 보았다. 죽은 뱃사람들의 넋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새를 죽이면 평생 목에 재앙을 두르고 살아야한다고 믿었다.
동양에서는 알바트로스를 신천옹(信天翁)이라 불렀다. 사람만큼 50년 이상 장수하는 새를 ‘하늘의 뜻을 믿는 노익장’이라고 부른 것이다. 가장 크고 강하면서도 영력을 가진 새 족장의 상징인 것이다.
그런데 알바트로스를 죽이는 천적이 사람이다. 어부들이 바다 한가운데 쳐 놓은 긴 낚싯줄에 수없이 죽어간다. 낚시 끝에 달린 미끼를 덥석 물었다가 걸려 익사하는 알바트로스들의 모습이 처참하다.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이로 삼켰다가 질식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토해놓은 먹이를 먹은 새끼들까지 죽어간다.
알바트로스는 객지를 떠돌다가도 새끼를 낳을 무렵이면 꼭 옛집을 찾는다고 한다. 인간들처럼 귀소본능의 영물인 것이다. 그런데 알파트로스는 점점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죽어간다.
우리는 누구인가? 시대와 하늘이 낸 지도자들조차 활공하지 못하게 긴 낚싯줄로 얽매는 눈먼 민족인가? 새해에는 모두 알바트로스처럼 날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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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봉 수필가/ Enviro Engineering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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