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황제’ 페더러와 내일 새벽 꿈의 한판승부
▶ 호주오픈 남자단식 준결승 “역대 최고를 넘어라”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왼쪽)는 호주오픈에서 지난 15년동안 14번이나 호주오픈 4강에 올랐고 지난해까지 6차례 결승에 진출, 5번 우승했다. 정현은 이번 대회를 통해 세계 테니스 차세대 최고스타 후보로 부상했다. [AP]
한국 테니스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정현(21)이 LA시간으로 오늘 밤(내일 새벽) 역사적인 일전에 나선다. 정현은 26일(금) 오전 0시30분(LA시간)부터 호주 멜버른의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펼쳐지는 2018 호주오픈 테니스 남자단식 준결승전에서 세계랭킹 2위이자 대회 디펜딩 챔피언, 그리고 커리어 메이저 19승에 빛나는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와 격돌한다. 페더러는 24일 펼쳐진 8강전 마지막 경기에서 토마스 베르디히(체코)를 7-6, 6-3, 6-4로 일축하고 4강에 올랐다.
정현과 페더러의 경기는 케이블채널 ESPN2로 중계되는데 자정을 넘긴 시간에 시작되는데다 자칫 5세트까지 가는 접전으로 전개될 경우 새벽시간 4~5시가 돼야 끝날 가능성도 있다. 역사적인 순간을 끝까지 다 지켜보려면 밤을 꼬박 새는, 말 그대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야 할 판이다.
호주오픈 결승 티켓이 걸려있는 운명의 일전이지만 이 경기의 중요성은 심지어 그랜드슬램 4강전의 의미도 뛰어넘는다. 한국 선수로 사상 첫 메이저 대회 4강전인데다 상대가 페더러라는 중량감이 그 의미를 한층 더하고 있다. 한국 테니스의 세계무대 도약을 선언하는 역사적인 출사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더러는 세계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인정받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가 이룩한 통산 메이저 타이틀 19승은 이 부문 2위인 나달(15승)보다 4승이 많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테니스 황제’다.
페더러는 이미 만 36세로 전성기를 훌쩍 넘긴 나이지만 지난해 이번 대회와 윔블던 등 메이저 2승을 거두고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그의 전성기는 지난 2004년부터 2009년으로 그는 이 6년 동안 메이저 타이틀만 14개를 쓸어 담았다. 하지만 지난 2012년 윔블던에서 자신의 커리어 메이저 17승을 올린 이후 4년간은 메이저 우승 타이틀을 추가하지 못해 그의 시대는 그대로 막을 내리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호주오픈과 윔블던을 휩쓸며 불사조처럼 화려하게 부활했다. 완료형으로 생각됐던 그의 전설적 커리어는 놀랍게도 다시 진행형으로 돌아섰고 곤두박질쳤던 세계랭킹도 다시 2위까지 올라갔다. 페더러는 이번 대회에서도 세계랭킹 1위 라파엘 나달(스페인)에 이어 우승후보 순위 2위에 꼽혔다가 나달이 8강전에서 부상으로 기권하면서 단연 최고 우승후보로 올라섰다. 이번 대회에서 페더러는 4강까지 오면서 5경기에서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았고 남자선수론 사상 초유의 메이저 20승 고지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그런 페더러도 정현에 대해 결코 가볍게 보지 않고 있다. 그는 베르디히와의 8강전이 끝난 뒤 인터뷰에서 “정현과 플레이하게 돼 매우 흥분된다”면서 “그는 정말 뛰어난 기량을 지녔고 특히 수비적으로는 노박을 연상시키는 선수”라고 치켜세워 정현을 결코 가볍게 생각하고 있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페더러는 “여기(호주오픈)서 노박(조코비치)을 꺾는 것은 테니스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인데 그(정현)는 정말 믿기 어려운 경기를 했다“면서 “노박이 110%의 컨디션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괜찮았고 끝까지 싸웠는대 그런 노박을 상대로 승부를 (3세트에서) 마무리하는 것은 정말 놀랍게 인상적이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정현을 상대로 어떻게 플레이해야 할지를 연구해야 한다. 내게 정말 흥미로운 경기가 될 것”이라면서 “지금 당장은 어떻게 경기할지 말하기 힘들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공격적으로 나서겠다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역대 최고의 선수인 페더러를 상대로 정현이 유리한 것이 있다면 체력이다. 문제는 정현은 과연 체력을 승부의 변수로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페더러는 이번 대회에서 5경기를 치르면서 상대에게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모두 3-0 승리를 거뒀고 그로 인해 평균 경기시간이 1시간58분에 불과하다. 이는 페더러의 ‘속전속결’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다. 체력을 아끼기 위해 3구, 5구 정도에 승부를 걸고, 일단 상대 서브게임을 브레이크해 우위를 점하면 그 이후엔 버릴 게임은 확실히 버리고 가는 경기 운영을 한다.
따라서 정현으로선 최대한 랠리를 길게 끌고 가면서 자신의 서브게임을 지켜내 승부를 길게 끌고 갈 필요가 있다. 페더러의 전략에 말린다면 속절없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지만 이번 대회서 보여준 기량으로 자신감을 갖고 맞서 승부를 마라톤 레이스로 만든다면 역사적인 이변을 터뜨리는 것도 꿈만은 아니다.
2000년과 2007년 US오픈 16강까지 올랐던 한국 테니스의 전설 이형택(42)은 “지금 정현의 기세가 워낙 좋기 때문에 페더러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제 기량을 발휘하면 정현으로서도 해볼 만한 경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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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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