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2016년의 대통령선거 투표 당일, 일시적 유혹에 빠진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 정치적 감정이 경제적 판단을 왜곡시키도록 내버려 둘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날 ‘나쁜 남자’가 선거인단 대결에서 승리를 거머쥔 직후, 내 머릿속에 첫 번째 떠오른 생각은 선거결과가 신속하게 불황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이었다.
물론 개인적 감정이 개입된 섣부른 판단이었다.
나는 재빨리 잘못된 주장을 거둬들이고 실수를 인정했다. (난 구식이기 때문에 잘못을 시인하고, 실수를 통해 배우려 시도한다.)
선거결과가 제아무리 실망스러웠다 치더라도 정상적인 시기에는 거시경제의 진행방향에 미치는 대통령의 영향력이 연방준비은행장의 영향력에 미치지 못한다는 널리 알려진 속설에 끝까지 매달렸어야 했다.
이 같은 주장은 2009~2010년의 경우처럼 경제가 지나치게 위축돼 통화정책이 힘을 쓰지 못할 때를 제외하곤 언제나 옳다.
당시는 오바마의 재정부양책 채택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였으나 유감스럽게도 이에 대한 공화당의 반대와 오바마의 지나친 신중함이 어우러지면서 실제적인 경기부양 규모는 정상적인 기대수준을 크게 밑돌았다.
하지만 2016년에 이르러 금융위기의 여진이 수그러들면서 극단적인 조치가 아닌 일반적인 규칙이 다시 적용되는 시점에 도달했다.
사실 2016년이 선거의 해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제학자를 찾아내 지난 몇 년간의 경제 데이터를 보여준다면 그는 그 시기에 이렇다 할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그 어떤 실마리도 잡아내지 못할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라면 트럼프 취임 1년간의 미국의 경제 발전은 다른 선진국들과 특이할 정도로 유사하다. 특히 유럽은 최소한 지금으로선 유로 위기의 그림자에서 벗어났고, 낮은 인구성장을 고려하면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약간 능가하는 안정적인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적으로는 불안정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안정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런 시기가 오래 갈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러지 못할 것”이 여기에 대한 내 대답이다. 왜냐하면 정상으로의 복귀는 대단히 취약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무언가 잘못되면 우리는 거기에 대응하기 대단히 힘든 위치에 서 있다.
그러나 그 무언가의 실체와, 언제 그것이 일어날지를 족집게처럼 정확하게 집어낼 능력이 내겐 없다.
선진국 경제가 현재 그럭저럭 잘 나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역사적으로 볼 때 대단히 낮은 금리 덕분이라는 것이 키 포인트다.
이건 전 세계 중앙은행장들이 내놓은 비평이 아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 아마도 낮은 인구성장율과 미미한 생산성 개선이 일부 원인인지 모르겠지만 - 모든 시사점은 각국의 경제는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해 낮고도 낮은 초저금리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는 다시 금리를 역사적인 레벨로 끌어올려 “정상화”하는 것이 경제 불황을 불러오는 끔찍한 실수가 될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고 금리 역시 이미 낮은 수준이라면 무언가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할 경우 각국 중앙은행장들이 효과적인 대응을 하기가 힘들어진다.
중국에서 무언가 일이 꼬인다든지 제 2의 이란 혁명으로 오일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거나 기술주에 1999년 식의 거품이 낀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그것이 터무니없는 허튼소리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 비트코인이 실질적으로 경제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줄만큼 중요성을 갖기 시작한다면 어떨까?
나는 지금 이런 일들을 예언하고 있는 게 아니다. 다음번의 대 충격은 아마도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에서 들이닥칠 것이다.
대 충격이 찾아오면 우리는 세계의 중앙은행을 뛰어넘는 힘 있는 관리들의 효과적이고 일관성 있는 반응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제 이런 상황이 조만간에 닥친다고 상상해보라. 과연 당신은 도널드 트럼프와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 팀을 어느 정도까지 신뢰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이미 힘이 빠진 앙게라 메르켈 독일총리가 분열된 유럽에서 얼마나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이 같은 우려가 이미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투자자들은 현재 ‘만사태평’이라는 식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부디 그들이 맞기를 바란다.
앞으로 큰 충격이 실제로 일어날 때, 지금과 달리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은 지도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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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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