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다음으로는 쿠바나 카리브 크루즈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쿠바는 유명세에 비해 희소성이 매력적이고, 카리브는 저렴한 비용으로 여러 나라를 구경할 수 있는데다 호텔을 옮겨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여의치 못했다. 쿠바는 미국과의 관계가 좋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관계가 소원하여 단체여행의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고, 개인적으로 결행하기에는 내 언어 실력이 못 따르고, 카리브 여행은 일정이 맞지 않았다. 하여 택한 곳이 코스타리카였다. 꿩 대신 닭을 택한 격이다. 게다가 10월에 3박 4일 일본 규슈 올레길 여행을 다녀온 후라 코스타리카 힐링여행에 별 기대를 걸지 않고 떠났다.
-산호세 공항에 도착
첫째 날 11월 23일(목) 오전 10:10. 워싱턴 덜레스 공항 출발에 맞추려면 3시간 전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는 여행사의 안내에 맞추느라 새벽 5시부터 부산을 떨었다. 여행사 직원 2명이 탑승수속을 도와 일행 19명이 출발 3시간 만에 중간 환승지인 산 살바도르(San Salvador) 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1시간 정도 기다린 후 다른 비행기로 교체 탑승하여 이륙 1시간 후인 2시 45분 목적지인 코스타리카 산 호세(San Jose)공항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여기는 미국과 1시간 시차가 있다.
석식은 한식으로 했는데 상추를 곁들인 돼지 불고기와 된장찌개가 푸짐하게 제공되어 모두들 만족해하며 배불리 먹었다. 2인1실의 호텔은 넓고 쾌적했고 따스한 욕탕에 몸을 풀고 나니 금방 잠들 수 있었다.
-열대과일의 맛
둘째 날 11월 24일(금), 날씨는 맑고 쾌청했다. 아침식사는 뷔페식이었는데 식단이 잘 차려졌고 입맛에 맞았다. 특히 파인애플, 파파야, 바나나 등 열대과일 맛이 뛰어났고 양껏 먹고도 한두 개 따로 챙겨 오기도 했는데 그래도 괜찮단다. 식사 후 해발 200m가 넘는 아레날 산에 딸려있는 라빠스 나비공원과 폭포구경을 가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여 현지에서 판초를 사서 입었다.
높은 고도에 위치한 자연 휴양림의 동물원에는 수많은 나비류, 온갖 뱀 종류, 독 개구리, 코뿔새, 앵무새 등의 조류와 재규어 등의 맹수도 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경험은 수많은 종류의 벌새들의 군무를 보면서였다. 작은 것은 손가락 한마디만한 것에서 부터 큰 것은 제법 뱁새만 한 것도 있었는데, 부리는 길고 뾰족하여 씨방 깊숙이 숨겨진 꿀을 빨아 먹기에 적합하도록 진화되었고, 꽃 앞에서 한참이나 정지해 있다가 순식간에 공중으로 치솟는데 마치 UFO를 연상케 했다. 1초에도 수백 번이나 펄럭이는 날개의 원동력으로 그러할 수 있단다. 그러자니 심장은 기관처럼 빠르게 뛰어야하고 그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자기 몸무게 보다 몇 배 더 많은 양의 꿀을 하루에 소비해야 한단다. 얼마나 고단한 삶인가!
-천인단애 절벽
계속 추적이는 비를 맞으며 폭포구경도 했고 웅장한 폭포소리도 들었다. 다시 승차하여 하산했는데 차창 밖이 깎아지른 절벽이다. 천인단애란 말이 이런데서 유래한 말임이 틀림없겠다 싶었다. 차량 두어 대가 교차할 수 없도록 좁은 길을 내려오자니 오금이 저려온다. 잠시 후 차멀미를 느껴 숙였던 고개를 들고 창밖을 보니 대협곡에 영화 아바타 보다 더 장엄한 광경이 펼쳐진다. 온갖 기생식물들과 이끼로 몸을 감싼 거목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대 협곡…. 장관 중의 장관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백미는 뜻밖에도 산을 다 내려와 마을 어귀에 다달아서였다.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이구아나 세 마리가 비를 흠뻑 맞으면서도 도로변 야트막한 나무 위에서 유유히 나뭇잎을 먹고 있던 장면. 이구아나는 모양은 흉측하나 성질은 온순하단다. 울음 원숭이 5-6 마리가 한 나무에서 한가롭게 먹이 활동을 하는 장면. 뾰족하고 긴 주둥이는 멧돼지에 생쥐를 합쳐 놓은 듯하고 긴 꼬리에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여우너구리(?) 가족에 꼬리를 치켜든 채 오만한 자세로 도로를 가로 질러가는 데도 안전하게 다 지나가도록 길을 내어 주는 여유로운 차량들을 보면서 이 나라의 자연 친화적인 정책과 국민성을 엿보게 되었다. 이런 데에 행복지수 세계 1위의 비결이 있는 것인가?
버스로 닿은 곳은 Los Lagos 방갈로. 넓은 개활지에 폭넓게 자리한 방갈로 방은 크고 넓고 깨끗해서 가슴이 확 트이는 듯 편안했다. 스파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 셔틀버스를 이용했는데 노천형 온천은 여러 개로 연결되어 있어 입맛에 맞게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편안한 잠을 잤다.
-아레날 호수와 유람선
셋째 날 11월 25일(토). 밤새 빗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물소리도 제법 크게 울렸다. 주위에 계곡이 있나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악어농장을 구경한 일행도 있었나 본데 우리 부부는 그러질 못해 아쉬웠다. 오늘은 카누피 투어가 예정되어 있어 긴장 속에서도 은근히 기대가 되었는데 비 때문에 취소되고 여행사의 배려로 행인브리지 투어만 실시됐다. 10여개의 브릿지 중에서 3-4개는 밀림 계곡위로 높고 길게 매달려 있어 건널 때 몹시 출렁거렸고 현기증이 나고 무서웠다. 더구나 거추장스러운 판초 탓에 더 그렇기도 했다. 비를 피하려 판초를 걸쳤는데 비는 피했으나 속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이 반장의 말 그대로다. 이곳은 비옷을 입으나 안 입으나 젖는 것은 매한가지다. 안 입으면 비에 젖고 입으면 땀에 젖는다라는.
땀이 식으니 몸이 으슬으슬 추워왔다. 감기가 올까 걱정 되었다. 다시 버스로 이동한 곳이 인공호수인 아레날(?)호수, 유람선을 타고 30-60분간을 즐겼는데 맑은 날에는 볼 수 있다는 화산연기를 볼 수 없어 약간 아쉬웠다.
이태리 식당에서 맛있는 피자와 스테이크를 먹고 나서 Tabacon Grand Spa로 향했다. 따바꽁 온천은 계곡전체가 자연온천인 데다 크고 작은 폭포가 취향에 맞게 잘 갖춰져 있어 입맛대로 이용할 수 있었다. 노천 온천이라면 일찍이 일본이나 뉴질랜드 등에서도 경험을 했는데 규모나 분위기에서 비교가 안 된다. 세계 제일의 노천온천장이란 말이 과언이 아니다. 폭포에서 쏟아지는 온천물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짜릿함이 노구에도 황홀했다. 가히 이번 여행의 백미라 해도 좋을 듯하다.
산호세로 돌아와서 첫날 머물렀던 Wyndham Herradura Hotel에 짐을 풀었다. 내일을 준비하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커피농장에서
넷째 날 11월 26일(일). 여행 마지막 날이다. 귀국하는 날이기도 하다. 탑승 전 커피 공장을 방문했다. 사실 여행 둘째날에 커피 농장을 방문했는데 커피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함께 언급하고자 한다. 커피 농장은 전남 보성의 차밭처럼 약간 경사진 곳에 나무를 촘촘히 식재해 놓았는데 지금 한창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볶지 않은 커피 열매 맛은 달착지근했다. 현지 안내원 이반장의 해박한 커피 지식은 깊고 유익했으나 너무 방대하여 지면상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하고 대신 커피와 관련하여 바나나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커피 농장에는 근처에 바나나를 심는다고 한다. 커피가 익을 무렵 커피를 먹으러 오는 벌레가 바나나의 달콤한 향기에 이끌려 중도에 외도를 하는 틈에 커피가 보호된단다. 곁들여 바나나에도 씨가 있다고 한다. 금시초문이다. 실제로 바나나 나무는 오직 한 다발의 열매만 맺는데 이를 수확하고 나면 바로 원둥치를 베어 버리는데 그러면 원둥치 옆에서 새로운 싹이 돋아 다시 열매를 맺고, 그래서 바나나 밭은 살아 움직인단다. 마치 바람따라 변하는 사막의 모래 언덕처럼. 그런데 수확한 바나나 둥치를 그냥 두면 다시 열매가 열리는데 그 열매에는 씨가 들어있어 상품가치가 없어진단다. 자연의 조화가 참 신비롭다. 바나나 씨를 구경하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해 아쉬웠다.
여행의 즐거움은 낯선 자연과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즐기는데 있지만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 각기 다른 인생체험을 나누는 거도 이에 못지않게 유익한 일이라 생각된다. 이번 여행에서도 사랑이 충만한 따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코스타리카. 해안이 아름답고 풍요한 나라라 해서 붙여진 그 이름. 오른 쪽으로는 태평양, 왼쪽으로는 대서양과 맞닿아 있는 나라. 그 해안을 못 봐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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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윤한종(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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