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열흘 동안 언니와 함께 멕시코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다. 아마 이 여행이 우리들의 마지막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마지막이란 단어를 쓰고 싶지 않지만 현재 한국에 나가 사시는 언니도 그렇고 나도 당분간 한국에 나갈 계획이 없기 때문에 또 만나서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할 것 같다.
이번 여행은 언니와 둘이만 간 것이 아니고 언니의 딸인 조카와 또 내 맏며느리까지 동행한 말하자면 거창한 여행이 되었다. 우리 네명이 한방을 쓰기로 해서 사실 속으로 은근히 신경이 쓰이고 걱정을 했다. 다행히 방도 크고 창밖이 내다 보이는 오션뷰였기에 그런대로 지낼만 했다.
언니와 조카딸도 미국에서 수십년을 살다가 귀국해서 언니는 아들이 사는 청주에서, 조카 부부는 서울에서 살고 있어서 그들도 몇년 만에 미국을 방문한 것이다. 우리 큰 며늘애도 처음엔 고생을 했지만 지금은 살만해도 함께 열흘 동안 크루즈 여행을 하기는 처음이다.
가족이나 친지들은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먼저 온 가족이 늦게 온 가족들을 챙기게 된다. 그러다 보면 누구나 완벽하지 않아서 서로 오해도 하고 섭섭한 감정들이 쌓일 때가 있다. 나도 그렇고 며늘애도 서로 바쁘다보니 저절로 소원해질 때가 있었는데 이번 여행을 함께 함으로써 서로가 더 상대방을 이해하고 더 사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언니와 나는 나이도 있고 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먼저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고 오면 젊은 애들은 늦잠도 자고 느즈막히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바다에서 보내자니 좀 따분하기도 했지만 배가 멕시코에 닿으면서 부터 날씨까지 따뜻해서 스웨터를 입고 있다가 반팔로 바꿔 입고 외출을 했다.
멕시코 특유의 큰 창이 달린 모자들을 사서 쓰고 '프에트로 바야타'란 도시를 구경했다. 나는 이번이 벌써 서너번째 오는 도시지만 그동안 많이 변한 것 같다. 이 도시는 예술인들이 많이 사는 항구인데 이번엔 화랑도 한번 보지 못하고 부두 주변만 슬슬 돌아다니다 왔다. 목이 말라서 콜라와 병 물을 샀는데 물가가 미국에 절반 밖에 되지 않았다. 옛날 수십년 전 이곳에서 배우 엘리자벳과 그의 연인이었던 리차드 버튼이 함께 살았던 집이 있었는데 이젠 아예 관광 품목에서도 빠져 있어서 약간 서운했다.
이렇듯 한번 유명했던 사람들도 결국은 어느날 사람들에게서 잊쳐지고 그 기억들은 망막의 셰계로 사라지고 만다. 다음 코스는 '만자니아'란 작은 항구 도시였는데 의외로 아담한 산을 중심으로 마을이 동화같이 예쁘고 평화로워서 마음에 들었다. 그 다음은 '마즈랜드'란 섬에서 값싼 아이들의 티셔츠며 선물들을 몇 개 샀다. 젊은 가이드의 말이 이곳에 많은 수의 미국인들이 은퇴해서 살고 있는데 방 두세개와 화장실이 있는 바닷가의 집이 단돈 삼백불이라고 한다. 지금 베이 지역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렌트비 때문에 아우성인데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마지막 기항지는 '카보 루카스'란 곳인데 이곳은 완전히 미국 영토에 하나가 아닌가 할 정도로 미국화 되고 물가도 비싼 편이다. 몇년 전에 딸네 식구와 함께 왔다가 남편이 아픈 탓에 잘 즐기지도 못한 곳이다. 이곳 바닷가의 한 식당에 들러 감자 튀김과 아바카도 딥을 먹고 있는데 오인조 밴드들이 우리를 위해 베사메 무초를 들려주었는데 흥이 난 언니가 함께 그들의 노래에 맞추어 베사메 무쵸를 불러 박수를 받았다. 언니의 나이가 구십이라고 하니까 모두들 놀래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많은 사람들이 늙은 사람에게 관심없다가 백살 가까이 되면 관심들을 가진다. 아마 오래 사는 사람들이 부러운 것일께다. 카보 루카스에서 마지막에 보트를 타고 주변을 돌아다니는데 우리가 빵가루를 뿌리자 금방 많은 고기떼들이 보트 주변에 몰려드는 것이 신기했다. 바위 속에 파진 굴 하나가 보이자 가이드는 이곳에선 두 남녀가 들어갔다가 세명이 되어 나오는 곳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크루즈 여행이 좋은 것은 밤낮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실컷 천하진미를 맛보는 것이라고 하겠다. 한 일주일만 되면 그 음식들이 다 질리고 집에 가서 따뜻한 밥과 김치를 먹고 싶다는 생각만 난다. 양식을 싫어하는 며느리가 샐러드와 살몬만 먹으면서 별 불평 없이 지내는 것이 신통했다. 우리들은 이번 여행에서 실컷 해산물을 먹었다. 언니는 새벽에 배 안을 돌아다니며 묵주를 들고 기도를 하신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아니고 한시간을 돌아다니며 하시는 기도도 그녀의 건강 비결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번에 우리가 모두 깨달은 것은 아무리 좋은 곳을 돌아다녀도 결국은 자기 집이 천국이라는 점을 깨닫는데 있었다. 그래서 여행은 또 다른 자신을 만나고 발견하는데 있다. 언니와 우리 일행 모두가 오랜 시간 함께 자고, 먹고, 수다 떨고 하면서 일생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만들어 간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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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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