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짧은 역사임에도 미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거대도시로 발전해 있는 LA지역에 처음 백인들이 정착한 것은, 오늘의 Whittier Narrows지역에 Misson San Gabriel Arcangel이 들어선 1771년을 그 연원으로 본다. 그래서 이 지역 (약200평방마일)은 그 미션(가톨릭 선교본부)의 이름을 따서 San Gabriel Valley가 되었고, 이 지역의 중심인 Azusa 쪽으로 흘러드는 큰 강의 이름도 San Gabriel River 가 되고, 이 강의 양쪽 연안은 San Gabriel Canyon 이 되었으며, 이 지역을 뒤에서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큰 산줄기의 이름 또한 San Gabriel Mountains(샌 게브리얼 산맥)가 되었다. (City of Los Angeles 는 이 보다 10년이 늦은 1781년에 44명의 정착민이 이주한 것을 그 시원으로 친다.)
그런데 San Gabriel 산맥에는 해발 10,064’에 이르는 Mt. San Antonio(흔히 Mt. Baldy라고 부름)를 비롯하여 8,000’이상의 고봉만해도 줄잡아 수십개는 되는데, 왜 그다지 높다고는 할 수 없는 해발고도 6,163’의 봉우리에, 큰 산맥 전체를 대표하는 San Gabriel 이라는이름이 붙여졌을까? 이 산의 이름이 붙여질 당시에는 San Gabriel Valley 지역에만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 주민들이 비교적 쉽게 볼 수 있고, 갈 수 있는 산들 중에서는 그래도 제일 높은 곳이었기에 그리됐나보다고 다소 막연히 짐작해 본다.
정착 초기에만 해도, 동서로 68마일, 남북으로 23마일에 걸친 광대하고 험준한 San Gabriel 산맥 전체는 샌게브리얼 밸리의 주민들이 일상적인 관심을 가지기에는 너무 크고 멀어, 하나의 미지의 또 하나의 세계이고 ‘별유천지비인간’이었을 것이다.
오늘은 200여년 전의 소박한 농촌마을이었던 시절의 LA로 시간을 거슬러, 마차를 타고 원족에 나서는 Angelino의 정서를 가지고, 그 당시는 그들의 일상의 삶의 무대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었을 San Gabriel Peak 을 찾아가 보기로 하자.
다행히 그때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자동차와 포장도로(Hwy 2)’ 덕분에, 하루 온종일이 아닌 불과 1시간 이내에 산밑에 도착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신기한 매직인가!▶가는길
Fwy 210에서 Hwy 2 East의 Exit으로 나와 계속 동쪽으로 14마일을 달리면 Red Box Station 이라고 불리는 휴게소를 겸하는 주차장이 오른쪽으로 나온다. Hwy의 길변에 때때로 세워져 있는 Mile Marker로는 38.62 지점이다. 여기에 주차를 하고 Mt. Wilson으로 가는 아스팔트 찻길을 따라 500m 정도를 걸어가면, 길이 갈라지며 오른쪽으로 오르막의 넓은 포장도로가 나온다.
이 넓은 길을 따라가도 되지만, 다행히도 1988년에 Pasadena에 있는 JPL( Jet Propulsion Laboratory의 이니셜로서 Caltech 이 주도하는 NASA 의 큰 연구소)의 산악회에서 만든 운치있는 등산로가, 갈라지는 길의 초입에서 20m쯤 안으로 들어와 왼쪽의 숲으로 나 있으니, 이 San Gabriel Peak Trail을 찾아 오르면 된다.
왕복 5마일에 순등반고도는 1,450’이며, 약 5시간을 잡으면 충분하다. 조금이라도 덜 걷고 싶은 분이라면, JPL등산로의 입구까지 차를 타고 와서 이곳 길섶에 주차해도 무방하다.▶ 등산코스
오른쪽으로 뻗어오르는 포장도로는 San Gabriel Peak과는 바로 지호지간인 Mt. Disappointment의 정상(5,960’)까지 이어지는데, 이는 이 산 정상에 1955년부터 10년동안 Nike Missile이 설치되어 있었던데서 조성된 것으로, 현재는 정부와 민간의 통신용 안테나들의 기지로 활용되고 있다. 포장도로라서 걷기가 수월하고 서북쪽으로의 전망을 즐길 수 있으나, 그늘이 없고 거리가 길며 아무래도 숲길의 운치가 결여되어 있다.
우리는, 어쩌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을 우주과학자들이 직접 육체노동으로 만든 왼쪽의 숲속길로 간다. 등산로는 Oak Tree들이 터널을 이루듯 잘 어우러진 숲속으로, 처음엔 다소 가파르게 지그재그로 오르며 이어져 나간다. 참나무들 사이사이로 잠시잠시 북동쪽의 먼 산들이 눈에 담긴다. 잘 살피면 Mt. Waterman, Twin Peaks, Mt. Baden Powell, Mt. Baldy 등을 구별해 낼 수 있다.
20여분을 오르다보면 가끔씩 Bigberry Manzanita들이 Oak Tree들 사이사이에 적잖이 섞여 있는 수목지대가 나온다. 좀더 가면 왼편으로, 창날같이 예리한 잎들로 누구도 접근치 못하게 둥글게 둘러싼 가운데, 때가 되면 우람한 꽃대를 하늘높이 세우고 거기에 대추크기의 씨방울을 수백개나 다닥다닥 달게 되는 Chaparral Yucca -‘Our Lord’s Candle’ 군락지에 이른다.
척박한 산비탈에서 묵묵히 자라나다가, 6년동안 아무도 모르게 부지런히 뿌리쪽에 비축해둔 생명의 정수를, 마치 동물이 사정하듯 최후의 한방울까지 단번에 하늘높이 용출하여 눈부시게 풍성한 꽃과 씨를 맺고는 아무런 미련없이 시들어버리는 그들의 최후가 참으로 장렬하고도 처연하다.
아마도 이것이 뭇 생명체들에게 부여된 삶과 죽음의 원형질이며 순리가 아닌가 싶다. 생각해보면 거의 모든 식물들의 삶이 꽃 피우고 열매 맺는 데에만 그 존재이유가 있는 것같다.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 내 삶의 의미와 본질도 여기에 대입하여 좌표를 설정해 봄직한 일인데, 자녀들이 다 자라 성인이 되어있는 작금의 내 위치를 돌아보면, 지금 내가 의욕하고 꿈꾸는 대부분의 일들이라는게 마땅히 버려야 할 군더더기 욕심이거나, 지금 내가 맞고있는 하루 하루의 세월이라는게 무조건 크게 감사해야 할 우주적인 보너스라는 결론이 나올 법하다.
이윽고 숲길이 다하고 우측에서 나타나는 포장도로에 합류된다. 1.7마일 정도를 온 셈이다. 오른쪽 바로 위에 Mt. Disappointment를 두고 포도를 따라 0.2마일쯤 나아가면 포장도로가 두줄기로 갈라진다. 앞으로 0.1마일쯤을 가면 정면에 1 Acre쯤은 될듯한 평지가 있다. 헬리콥터 이착륙장이다. 이 부근은 전체가 San Gabriel Peak과 Mt. Disappointment 의 중간에 있는 Saddle인데, 5~6월경에는 우리 등산인들이 흔히 미국 개나리라고 통칭하는 Spanish Broom이 주변에 온통 샛노랑 꽃을 피워내 실로 화려한 꽃동네를 이룬다.
San Gabriel Peak 으로의 등산로는 이 헬기장 끝지점에서 동쪽으로 나 있다. 등산로를 따라 30m쯤을 내려가듯 나아가면, 길이 오른쪽으로 갈라진다. Markham Saddle로 이어져서, 그곳에서 동쪽으로는 Eaton Saddle로 나가 Mt. Wilson 으로 갈 수 있고, 서쪽으로는 Mt. Markham, Mt. Lowe, Inspiration Point, Mt. Echo, Brown Mountain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그러나 우리는 직진한다. 먼저 앞쪽의 좀 작은 피라밋 모양의 봉우리를 오르다 보면, 등산로가 자연스럽게 뒷쪽의 피라밋 봉의 상단부에 이어진다.
몇 년전의 산불로 주변의 큰나무들이 검게 탄 숯이 되어 서있는 가운데, 산불이 난 자리에 무성하게 번진다는 Poodle-dog Bush가 키를 넘을 만큼의 높이로 길섶에 자라있어 때때로 길을 막는다. 피부가 민감힌 사람은 가려움 증세를 며칠간 겪을 수 있으니 잘 비껴 가도록 한다.
드디어 정상이다. 30여평쯤 됨직한 정상은, 피라밋처럼 뾰쪽한 산꼭대기이고 보니, 사방팔방으로 막힘없는 아름다운 전망을 두루 잘 볼 수 있다. 특히 Eaton Canyon에 면한 남쪽면은 거의 수직으로 1000’에 달하는 함몰된 절벽을 이루고 있어 실로 아슬아슬한 느낌을 준다. 넓지 않은 정상의 공간이지만, 3m는 족히 될 만큼 길쭉한 벤치가 놓여져 있어 동서남북을 천천히 관망하면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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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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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즐겨 읽어왔던 글의 저자가 옆집으로 이사를오셨네요!저는 101호에 지난 9월부터 살기 시작했고...아직도 Helendale 호숫가 집에서 짐을 옮겨오고 있는 중이라서 살림이 엉망으로 흩어져 있어 지금은 아니지만 정리 되는 대로 한 잔...차 던 소주 던 초대하고 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일흔 다섯살이나 되어서도 산길을 걸을 수 있으려는지 큰 자신은 없으면서도 항상 산을 타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며 삽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