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지난 목요일 오전 뉴욕타임스는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공화당 세제안과 관련해 수개월간 거짓말을 늘어놓았다고 폭로했다.
므누신 장관은 공화당 세제안이 다른 독립적이고 비당파적 기관들이 쏟아낸 보고서의 주장과 달리 감세에 필요한 예산을 자체적으로 충당할 수 있으며, 경제성장률을 높여 세수를 증대함으로써 예산적자 역시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재무부 내부 보고서가 존재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재무부 보고서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아예 작성되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재무부 스탭은 이 문제를 연구해보라는 지시조차 받은 적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같은 날 상원의 ‘정상적 입법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윤리적 우월성을 뽐냈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공화당 상원안에 지지를 선언했다.
여기서 우리는 상원 지도자들이 청문회(hearing)를 열거나 전문가들의 증언조차 구하지 않은 채 서둘러 이 법안을 상원 표결에 부쳤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세금정책은 경제학자들보다 전문가, 변호사와 회계사 등의 주장을 경청해야 한다.)
매케인 의원이 지지를 표명할 당시, 상원 세제안의 일부 핵심조항은 여전히 비밀에 부쳐진 상태였다. 따라서 세제안은 이들 세부조항에 관한 논의를 거칠 겨를도 없이 상원 본회의에 상정됐다. 그런데 매케인은 “심사숙고”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도대체 무엇을 숙고했다는 것일까?
그는 의회의 싱크탱크인 합동조세위원회(Joint Committee on Taxation)가 공화당 상원 세제개편안이 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공개하기도 전에 이 법안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앞서 지적했듯 재무부의 자체 분석결과를 갖고 있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이 거짓말이기 때문에 합동조세위원회의 보고서야말로 세제개편안에 대한 유일한 공식 평가였다.
그날 오후 합동조세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의 내용은 단 한치도 예상에서 빗나가지 않았다. 다른 모든 합리적 연구결과와 마찬가지로 상원 세제안이 미국 경제의 성장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며, 중산층에 속한 미국인 수천만명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는 한편 예산적자를 증폭시키고, 부유층에 감세혜택을 몰아줘 조세회피의 새로운 전선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 골자였다.
그러나 매케인을 비롯한 공화당 원칙주의자들의 도덕적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 칼럼이 게재됐을 때에는 세제개편안이 이미 상원을 통과한 뒤 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이란 늘 시니컬한 게 아닌가?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렇듯 중요한 법안을,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그 누구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처럼 황급하게 법안을 처리한 전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에 비해 오바마의 전국민의료보험법은 볍안이 상원에 상정되기 전에 수개월의 청문회 절차를 거쳤다; 그리고 그 후에도 상원 본회의에서 25일 동안 연일 법안을 토의했다.
세법개편안의 홍보전략 역시 정상적인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치인들은 너나없이 그들이 내건 정책의 장점만을 부각시키려든다. 하지만 감세안의 홍보방식은 철저한 거짓말로 일관됐다.
므누신 장관은 공화당 세제개편안이 엄청난 경제성장 효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재무부 자체 분석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거짓말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내겐 별로 달갑지 않은 법안”이라고 말했다. 역시 거짓말이다. 존 코닌 상원의원은 “부유층에 주된 혜택이 돌아가도록 고안된 법안이 결코 아니다”고 강변했다.
이 또한 거짓말이다. 밥 코커 상원의원은 “예산적자가 단 1센트라도 추가된다면 세제개편안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물론 거짓말이다.
다시 말해 세제개편안의 전체 처리과정에서 노예제 지지자들이 상원 회의장에서 정적들에게 물리적 공격을 가한 이후 최악의 정치사적 부정이 자행된 셈이다. 이 같은 도덕적 부패에 관해 아래의 두 건은 추가로 지적할 가치가 있다.
첫째는 이것이 근본적 차원에서 도널드 트럼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가 썩은 건 맞다. 그러나 부패는 그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공화당 전체에 만연된 상태다. 법안의 일부 세부조항은 트럼프 일가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고안된 듯 보이지만 전체 윤곽과 사기성 짙은 홍보노력은 다른 공화당 출신 대통령 시절에 나왔던 주요 법안들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둘째로 부패 범위가 넓고도 깊다.
세제개편안 논란으로 공화당의 모티브가 지닌 환상의 잔재마저 말끔히 씻겨나가겠지만, 필자는 지금 공화당 정치인들만을 겨냥해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니다. 마치 성인이라도 되는 양 행세하는 매케인을 비롯해 의회 내 모든 공화당 의원들이 원칙보다 당파적 충성심을 앞세워가며 끔찍하고 무책임한 세제개편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불성실(bad faith)이라는 전염병이 선출직 혹은 임명직 관리들 너머로 크게 확대됐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공화당 성향의 유능한 경제학자 그룹이 기적 같은 경제성장이라는 므누신적인 약속을 지지하고 격려하려는 의도로 공개서한을 작성해 내놓은 것은 눈여겨 볼만한 일이다.
물론 공개서한에는 감세를 통해 세제개혁에 따른 소요 예산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것이라는 명시적 주장이 담겨 있지 않다. 그러나 서한 작성자들은 므누신이 그럴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공개서한을 이용해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려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달지 않았다.
애매모호한 단어선택은 논외로 치더라도 공개서한은 작성자들의 주장이 근거한 리서치 결과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불성실이라는 부패는 공화당을 통해 펴져나갔고, 당과 연결된 많은 지식인들까지 감염시켰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일부 안티 트럼프 보수주의자들은 그들의 원칙을 굳건히 지켰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은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부패를 씻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얼까? 기본적으로 선거에서의 완전한 참패다. 선거 완패가 현실로 나타나기 이전까지, 아니면 아예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공화당의 바닥이 어디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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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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