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나이에 반 은퇴를 결정한 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이뤄졌다.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열정과 성의와 그리고 일이 있다는 기쁨 속에서 파트타임을 했지만, 경제 불황과 사업주의 변경으로 인해 일자리를 그만두게 되었다. 혼자 가장이 되었을 때 부동산 일도 시작했지만, 대부분 안정적인 주급 생활을 더 많이 한 것은 매주 받는 주급은 가장의 입장에선 덜 불안했기 때문이다. 계속된 경제불황으로 주급 받기 힘들어진 건, 비록 나뿐 아니었다. 자존심 상하고 미래도 걱정되어 불안했던 처음과는 달리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 마음을 바꿔 먹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주 사용하진 못했어도 부동산 라이센스가 있다는 건 조금 위안이 되긴 했다. 당분간 휴식은 물질적인 면에서 힘은 들지만, 신체적으로 약해진 상태에서 생기는 병치레는 결국 훗날 나 자신이, 또한 내 자녀가 짊어져야 한다면 조금 쉬었다 가는 것도 현명하지 않겠냐는 생각과 노후에도 자존감 있게 살아가기 위해선 어쩜 지금이 나의 노후를 위해 많은 것들을 배워두면 좋은 시기일지도 모르며 그동안 웰빙하였으니, 이제 웰다잉을 준비하는 적합한 나이가 50대가 아니겠냐는 생각이 들어 나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행동에 옮긴 건 친정 노모와 추억을 쌓고 친정 식구들, 어릴 적 친구들과 수다를 통해 마음의 잔병과 육체의 잔병을 고치려 한국여행을 선택했다. 다소 부담은 되었지만,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투자한 시간은 예전의 여행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비록 치매로 대화 후 바로 많은 부분을 기억 못 하지만, 노모와 두 달 이상을 같이 지내면서 이번이 서로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 죽음과 이별과 병 그리고 먼저 가버린 자식들, 남아서 외로울 자식들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엄마의 쳐진 몸을, 숱 없는 머리를, 얼마 남지 않은 치아를 보노라면 눈시울이 늘 뜨거웠고 가끔 흔들리는 엄마의 눈동자 속에 비추는 나의 모습은 억지로 울음을 참는 불안한 얼굴이었다. 이렇게 나는 엄마와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했으며, 식구들과 친구들과의 여행을 통해 위안도 받으면서 내 몸의 잔병들을 고치려 치료도 받고, 내 마음의 잔병도 가족의 품속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제 조금 쉬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식구들의 응원은 내게 많은 위안이 되었다. 비록 긴 여행으로 부담스러운 지출을 했지만, 그 지출은 내 생에 가장 알찬 금전적 지출이었고, 당분간 휴식이 아니면 하지 못했을 것이었기에 이런 시간이 훗날 위안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어 기뻤다.
긴 여행에서 돌아와 이제 본격적인 우아한 가난을 시작하려면 모든 생활방식을 바꿔야 했다. 우선 최소화한 삶을 위해 집안에 필요치 않은 물건들을 정리했으며 제일 큰 물욕을 내려놓고, 내 마음의 질투와 부질없는 욕망을 내려놓은 대신 삶의 질을 위해 그동안 미뤘던 배움을 준비했다. 경비가 적게 들고 질적인 수업을 받는 건 힘든 현실이지만, 내 자세에 따라 질적인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여기며 연습과 예습과 즐거움으로 열성을 다해 배우다 보니 그로 인해 자존감이 조금씩 높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시니어 클래스에서 서예, 글쓰기 그리고 사진, 성경공부를 택한 건 우선 배우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많은 돈이 안 들어가는 수업 들이라 더 좋았다. 배움의 과정을 통해 참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봉사하시는 분들의 열정과 성의와 그리고 많은 어르신의 열정에 감동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헛된 노후가 되지 않기 위해 삶의 가치를 가르치시며 그로인해 본인들도 행복을 느끼는 그 모습들을 통해 아직은 노후를 불안하게 생각하는 이른 시니어이지만 멘토를 만난 듯, 길잡이를 얻은듯하여 열심히 고마움으로 배우고 있다. 그런데도 문득문득 내게 조금이라도 물질이 더 있다면 자녀에게 도움이 될 터인데 내가 일찍 뒷전으로 물러선 건 아닌가에, 너무 빠른 건 아닌가에 의문도 생기고 자녀에게 미안함도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언젠가 일을 하겠지만 지금은 조금 쉬었다 가는 길이고, 그 길목에서 내 미래를, 내 노후를 상상하며 10여 년 넘게 공부해서 사회에서 가정에서 배움을 사용했듯 또 10여 년 공부해서 늙어가는 미학에 사용하려면 지금이 좋은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벗 삼고 취미에 심취하다 보면 생기가 돌 다 가도, 다 내려놓지 못한 물욕으로 한숨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며, 또한 나는 불안함을 반복적으로 느낄 것이다.
아이들이 어른이 된 지금도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소리, 밥
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와 음식 냄새가 잠결에 들어도 참 좋았다는 말을 한다. 아이들이 추억하는 그 장면은 내가 어릴 적 친정엄마에게 느끼는 감정으로 시니어가 되어가는 지금도 기억나는 보배로운 추억으로 남아 위안이 많이 되듯, 아이들도 그 음식 냄새가, 음식 만드는 소리와 엄마의 잔소리가 훗날 내가 없을 때 추억하며 위안받을 수 있게 하려고, 한 번이라도 더 상을 차릴 수 있는 이 시기에 감사하고 있다. 취업 준비를 하는 자녀, 새집으로 이사가 가정을 꾸민 자녀, 그리고 본인이 가장이길 밝히는 자녀를 위해 기도와 감사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아빠가 떠난 힘든 시기를 지내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슬픔은 각자의 몫으로, 기쁨은 서로의 몫으로 어려움 들을 잘 견뎌주었다.
아이들 덕에 나 또한 잘 버틴 것 같아 고마운데 엄마인 내가 그늘이 되어준 것에 감사하고 있다는 말에 부끄러웠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슬픔을 견뎠고, 서로의 기쁨에서 위안을 받았던 시간 들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되길 나는 늘 기도하고 있다. 아이들은 나의 반 은퇴 같은 긴 휴식에 망설임 없이 축하해 해줬다. 이제 쉬셔도 된다는 그 말이 왜 이리 고마운지….
당분간 휴식을 통해 나는 누구나 되는 노인 보다,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서 응원과 박수를 보내고 있는, 자녀와 가족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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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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