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개월 이상 지속되면 만성통증, 성인 10명 중 1명이 해당
‘참는 게 미덕’은 옛말이 있다. 의학적으로는 아주 잘못된 말이다. 통증을 참다가 만성화되면 혈압ㆍ혈당 상승, 집중ㆍ기억력 감소, 수면장애, 우울증, 면역력 저하 등 다양한 건강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특정 질환이 없는데도 통증이 3개월 이상 지속되면 만성통증으로 진단한다. 교통사고 후 상처는 아물었지만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수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된다.
대한통증학회가 통증클리닉을 찾은 통증 환자 1,060명을 조사한 결과, 만성통증으로 31%가 직장생활을 할 수 없고, 수면장애(60%), 우울(44%), 집중ㆍ기억력 저하(40%), 불안(37%), 자살충동(35%)을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대현 대한통증학회 회장(대전성모병원 통증센터 교수)은 “조금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통증을 참다가 치료시기도 놓치고 난치성으로 악화된다”고 안타까워했다.
통증, 몸의 중요한 방어 수단?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어딘가 아프게 된다. 대개 호전되지만 통증이 점점 더 심해져 ‘병원에 가 봐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프기도 한다. 이 때문에 우리가 병원을 찾게 되는 첫 번째 이유가 된다.
통증은 사실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방어수단이다. 통증이 생겨야 우리가 몸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 손이 불에 타고 있는데 아픈 통증을 느끼지 못하면 우리 몸이 다 타도 그 위험에서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당뇨병을 오래 앓았거나 한센병 환자, 통증전달신경에 문제가 있다면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한다. 못에 찔려도 잘 모르고 세균이 침투해 팔다리가 썩어도 느끼지 못하기에 신체 일부를 잃기도 한다. 이처럼 통증은 우리 몸이 손상되고 있다는 경고를 보내는 신호다. 이렇게 발생하는 통증을 ‘조직 침해성 통증’이라고 한다.
이 통증은 조직이 손상되며 생기는 염증이 원인이다. 때로는 내장이나 뼈나 관절, 인대 등 심부(深部) 근골격계에서 생기기도 하고 피부ㆍ점막 등 표면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부위에 따라 통증 위치를 모호하게 느끼기도 하고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 짚을 수도 한다. 이우용 상계백병원 통증클리닉 교수는 “그러나 조직 침해성 통증이 오랫동안 지속되거나 통증 전달 신경에 손상이 발생하면 신경병증성 통증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 통증은 염증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닌데 염증이 소멸된 뒤에도 신경계의 복잡한 변성과 이상이 생겨 발생한다. 초기 원인은 염증이지만 시간이 지나 통증을 설명할 원인이 없는데도 통증을 호소해 꾀병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통증이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다. 이런 통증 질환은 초기 염증 시기일 때 염증을 치료하면 만성 신경병증성 통증으로 이행되지 않거나 진행되더라도 훨씬 참을만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특정 질환 없이 3개월 이상 아프다면?
그런데 특정 질환이 없는데도 통증이 3개월 이상 지속되면 그 자체로 질병인 ‘만성통증’을 의심해야 한다. 조 대한통증학회 회장은 “국내 성인 10명 가운데 1명이 만성통증을 앓고 있다”며 “만성통증이 생기면 신호체계인 신경계가 고장나서 치료하기 힘들 수 있다”고 했다. 통증은 대개 염증이나 신경계 질환 등 다양한 질환으로 인해 생기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면 통증 자체가 질병이 된다. 통증을 조절하는 신경계가 망가지면서 원인 질환을 치료해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서다.
급성통증이 3개월 이상 반복되면 신경세포에 통증을 전달하는 전기신호가 많아져 통증이 심해지고 오래 지속된다. 이때 신경세포 안에 자극을 받아들이는 수용체도 늘어나기에 통증에 예민해지고 자극을 하지 않아도 통증을 느낄 수 있다.
만성통증은 스트레스를 늘려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 몸을 흥분시키는 교감신경계가 활성화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해 혈압과 혈당이 올라간다. 이로 인해 고혈압과 당뇨병 등에 걸릴 위험성도 커진다. 또 아픈 부위 대신 다른 신체만 사용하면서 근골격계가 약해질 수 있다.
정확한 통증 치료를 받으려면 환자 자신의 통증점수를 가능한 한 정확히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홍성준 대한통증학회 홍보이사(강동성심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통증을 참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라며 “통증은 몸이 이상신호를 보내는 것인데 이를 참으면 결국 병이 깊어지므로 상처보다 통증이 심하거나 통증과 함께 약물 중독징후가 있다면 반드시 전문의를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조 학회 회장은 “통증을 찾아가는 가장 첫 단계인 자신의 통증점수(학회에서 제시한 점수표에서 21점 이상이면 전문의 진료 필요)를 정확히 알고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진단과 빠른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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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익 의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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