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여름이었다. 인류가 최초로 달 착륙을 한 순간 동네의 한 전파상에서 흑백 TV로 그것을 목격한 7억 명의 지구인 속에 나도 있었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만들어 천체를 관측한 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확인한 지 대략 300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당시 TWA와 Pan Am등 민간 항공사들은 서둘러 달나라 여행 예약을 받았으리만큼 때로 터무니없는 인류의 낙관과 집요한 상혼이 결합된 특이한 경우였으나 이제는 그 진취적인 항공사들도 치열한 경쟁으로부터 살아남지를 못했고 물론 달 여행도 실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의 비행기 여행이 예사 아닌 호사였음을 가늠하기에는 충분한 것 같다.
일이 있어 시애틀을 다녀오느라 요즈음의 추세대로 인터넷으로 항공티켓을 샀다. 이왕이면 절약한답시고 저가를 골라 샀는데 설마 그 정도인줄은 몰랐다. e-ticket을 프린트 하지 않았다고 해서 35달러, 온라인으로 탑승수속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45달러, 종전에는 당연시되던 수하물 하나 수속하는데 또 다시 65달러, 심지어 기내용 휴대 가방까지 별도로 요금을 매겨 왕복으로 계산을 해보니 원래의 티켓 가격보다 벌금이 더 많이 나왔다. 아무리 저가를 강조하는 마케팅 전략과 세분화된 수수료도 좋지만 막상 당하고보니 두손 두발을 다 들었다는 표현이 딱 내 꼴이었다.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과 혹 내가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으로 사뭇 심란하기까지 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야구경기를 보는데 티켓 가격보다 주차료가 더 비싼 경우를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워싱턴의 케네디 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티켓을 살 때도 워낙 ‘겸손한’ 좌석을 고수한 탓도 있겠지만 중간 에이전트가 가져가는 비용이 본 티켓 가격보다 많았던 것이 또 그러했다.
이 뿐만 아니다. 비즈니스로 주유소를 찾는 손님에게 매매를 성사시켜 드리는데 고객은 전 재산을 쏟아 붓고 두 부부가 꼬박 주 7일을 하여 가져가는 월수입보다 비자 매스터 카드의 월수수료 총액이 더 많은 그런 허파가 뒤집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도 눈물겨운 현실이다.
또 다른 예로 HOA(주민자치회) 경비와 재산세, 그리고 PMI의 총액이 모기지 자체 경비보다 높은 경우가 드물지 않다.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밭농사를 짓고 통째로 중간 상인에게 넘기는데 일년내내 농사지은 농부보다 잠시 와서 둘러보고 가격을 매기는 중간상인이 더 많이 이윤을 남기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부가가치와 시장논리로만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기가 차다. 버젓이 U-Haul트럭을 렌트하는데 19달러95센트로 선전하지만 아무리 짧은 로컬 근교를 운행해도 잘 막아야 100달러로 마감되는 현실에서 언제까지나 작은 글씨를 잘 읽어야한다고 일반 소비자들에게만 그 탓을 돌려야만 하는지 씁쓸하기가 그지없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원래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이나 왜곡이나 다름없는 주객전도가 일어나 나중에는 꼬리가 몸통인 개를 흔들어 버리는 현상,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 정착돼 끊임없이 우리에게 부당함을 요구하는 시대의 역전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가 유독 나만은 아니었던지 그걸 풍자하여 ‘Wag the dog’이라는 영화가 있었던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되고 보니 외롭지만 그것 또한 시대와의 불화일 것이다. 그 기묘한 주객의 전도와 전도된 가치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상의 모든 관행들을 보면 참으로 그렇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려 피눈물 속에서 태어난 노조가 어느덧 비정규직에게 또 다른 폭행이 되어버린 경우 역시 예외가 아니다. 허리가 휘어지는 노동자의 하루 급여가 잘난 변호사, 의사와의 10분 상담료보다 적은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후대에게 전하고 설명해야 할까. 그렇다고 해서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공급받는 공산을 말하는 것도 아니지만 의사가 왕진을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자는 말도 아닐 것이다. 애써 찾아보면 있을 수 있는 그 개선의 여지를 미리 포기하지는 말자는 말일 것이다.
추석 때 역상경하는 그 묘한 역전현상, 이혼자가 더 많아 이제는 천연기념물이 되어버린 조강지처의 개념이며 볼모로 뒤집혀진 효의 개념이 그러하다. 그러니까 권력화 된 자식의 횡포에 노예가 되어 결국 시집 장가간 자식들의 뒷바라지로 노년을 권태롭게 보내는 세대들 역시 인류 최초쯤 될 것이니 참으로 별일이다 싶다. 이 모두 세태를 반영하는건 맞는데 쓸쓸하기 그지 없다.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며 듣기 좋은 말로 입안에 혀처럼 굴더니 당선되고 나면 그 국민위에 군림하는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세상일이 모두 다 그렇지 하면서도 받아들이자니 허무하고 뱉자니 혼자만 별종이되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말을 수레 뒤에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더욱 그렇다. 나이들어 가면서 이 기묘한 역전을 그대로 적당히 비겁하게 인내하고 뒷사람들한테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이 새삼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살았던 날들의 능사가 아니어서 더욱 그렇다.
<
김준혜 부동산인 엘리콧시티, MD>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