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ert S. Mueller Ⅲ.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시킬지도 모르는 변수인 2016년 미국 대선 때의 러시아 개입과 트럼프 진영과의 협조 여부를 조사 중인 특별검사의 이름이다.
한국의 모든 신문들은 그의 성씨를 뮬러로 표기한다. 하긴 나 자신도 전에 몇 차례 그렇게 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신경을 쓰고 들어보니까 미국 미디어들은 “멀러”라고 발음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사람들처럼 행동하라는 격언처럼 그의 이름을 “멀러”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적어도 미주한국일보에서 그렇게 한다면 독자들인 부모들이 자녀들과의 대화에서 그의 이름의 정확한 발음에 관해 설왕설래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왕 내친김에 한국이민 1세대의 영어발음이나 기타 문제에 대해 평소부터 느껴왔던 것을 나 자신의 실수들을 포함하여 털어놓아야겠다.
원어민 영어교사들이 흔한 현시절과는 달리 나 자신의 학창시절을 회고해 보면 영어 선생님들의 발음이 수준미달이었다. 더 근본적으로는 L과 R 두 영어자음이 한국식 발음으로는 ‘ㄹ’로 표기되며 P와 F 발음도 ‘ㅍ’으로 쓰이는데 따르는 문제가 있다.
쌀이나 밥을 의미하는 Rice와 몸을 근질근질하게 물어대는 이를 의미하는 Lice가 함께 “라이스”라고 발음되니까 문제꺼리다. 어떤 한국인이 미국사람에게 저녁을 대접하면서 “Rice is a staple for Koreans(한국사람들에게 밥은 주식입니다)”라고 그럴듯한 설명을 할 때 R 발음을 잘못하면 “한국사람들에게는 이가 주식입니다”라고 들리는 황당한 결과를 가져온다. 실제로 어떤 한국식당의 메뉴에 볶음밥이 ‘Fried lice’라고 적혀있었던 사례도 있다. 적어도 Rice를 의미할 때는 어색하더라도 “롸이스”라고 발음해야 우스꽝스러운 오해를 피하게 된다.
Sofa도 소파라 표기가 되기 때문에 미국인 직장동료들에게 “지난 주말에 Sofa를 사러 갔다”라고 한다는 것이 P 발음으로 나와 몇 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제대로 의사가 전달되는 경우도 있다. Shopping도 쇼핑이라고 사전에서 보던 것을 그대로 미국인 직장동료들과의 대화에서 쓰면 두어차례 이상 확인절차가 뒤따르는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최근 발음문제로 신경을 쓴 예로는 치매를 의미하는 ‘Alzheimer’s disease‘가 있다.
한국사전이나 신문들은 일관되게 알츠하이머병이라고 표기한다. 그리고 영어사전의 발음부호에서도 그와 같은 발음이 정확함을 확인할 수 있다. 왜냐면 그 단어가 노인성 치매증세를 처음으로 묘사한 19세기 말엽의 독일인 의사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미국인 동료들에게 “나의 친척 한 명이 알츠하이머 병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라고 말해주면 첫마디로 알아들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영국은 몰라도 미국에서는 “알자이머”라고 해야 금세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내가 자라던 시절에는 “병원에 갔었다”라는 표현이 일반적이었다. 우리가 미국에 이민 온 다음 그 식대로 “지난주에는 병원에 다녀왔다”라고 미국인 친구들에게 말하니 “큰일이 생겼었느냐”고 근심스럽게 반문하는 경험을 했다. 가벼운 증세로 의사를 방문하는 것은 Doctor’s Office나 Clinic에 다녀오는 것이며, 응급실을 찾는다든지 수술 때문에 입원해야 Hospital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것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남편을 박사(Ph.D)로 만들기 위해 Ph.T(Pushing husband through) 학위를 땄다고 할 수 있는 아내가 미국에 와서 자기 전공과는 전혀 관계가 없이 어느 작은 회사의 경리일을 보고 있을 때 나는 정말 한국적 아니 양반 근성적 배경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실수나 실언을 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 미국인들이 “당신의 아내가 일을 합니까?” “Is your wife working?”이라고 질문을 할 때마다 “일 한다”라는 표현을 안 쓰고 사무실(Office)이란 말을 강조하는 어색함을 노출시켰다. ‘일’은 소작인, 상노, 식모, 찬모 등 하인들이나 하는 것이라서 양반 신분을 가진 사람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전근대적인 봉건주의 골수분자의 졸렬한 작태였음에 틀림없다. 내가 교편을 잡았던 세 대학에서의 별 볼일 없었던 경력이 그 같은 터무니없는 사고방식의 당연한 귀결이었다는 자책감마저 든다.
생각해보면 영어를 둘러싼 나의 실수는 미국인과의 첫 대면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선친의 주선으로 중학교 2학년 때 미 원조부대 교육관으로부터 영어회화를 배우게 된 첫 날, 그의 친구가 나에게 “담배 피우겠냐”고 했을 때 “I cannot smoke” 했더니 그 대답이 틀렸다고 한 기억이 있다. 사람들은 모두 담배를 피울 수는 있지만 피우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라서 “I don’t smoke”라고 해야 정확하다는 설명이었던 것 같다. 1959년 동아일보 문화부 수습기자 시절에는 미국인 피아니스트를 인터뷰했을 때 한국인들의 친절한 환대(Hospitality)를 빨리 말하는 중 적대감(Hostility)이라고 잘못 말해서 지적당했던 생각도 난다. 영어만이 아니라 미국 문화의 적응에 있어서 나는 정말 실수가 많은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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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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