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부 20~30% 붉은반점 뒤덮으면‘중증건선’… 방치했다간 뇌졸중 등 합병증 위험 높아져
▶ 중증건선환자 “암보다‘삶 만족도’떨어져”
#최근 심한 감기몸살을 앓은 A씨. 시간이 흘러 감기 증세는 나아진다 싶더니 갑자기 각질을 동반한 붉은 반점이 걷잡을 수 없이 온몸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영문을 몰라 찾은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중증 건선’. 어린 시절 가려움증이 있어 찾았던 피부과에서 건선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이후 아무런 증상도 나타나지 않아 까맣게 잊고 있었던 터였다. A씨는 10여년 만에 다시 찾아온 건선 때문에 잠시 일을 쉬어야 할 정도로 심한 고통을 겪는 중이다.
건선은 환자가 겪는 고통이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 정도에 비해 유독 대수롭지 않게 다뤄지는 질환 중 하나다. 피부 일부가 붉게 변하거나 하얗게 각질이 일어나는 일은 보기에만 나쁠 뿐 생명에는 위협을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선은 단순한 피부 질환이 아니라 신체의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으로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건선은 류머티즘 관절염이나 크론병(만성 염증성 장 질환) 등 다른 자가면역질환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발병 원인을 몰라 아직 완치법이 없다. 지속적인 치료·관리를 통한 조절만이 질환을 악화시키지 않는 길이라는 의미다. 자칫 방치하다가는 갑자기 증상이 악화해 중증 건선으로 악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늘어나는 국내 건선 환자
악화되면 삶의 질 크게 떨어져=건선은 어떤 이유로 몸속 면역세포(T세포)가 과도하게 활성화된 나머지 피부의 교체주기가 보통 피부(28일~40일)에 비해 5~8배 빨라지는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빨라진 피부 교체주기 탓에 미성숙한 피부 표피세포가 바깥으로 계속 밀려 나가며 피부 표면이 두꺼워지고 붉은 발진이 생기며 피부 각질이 두껍게 쌓이는 등의 이상 반응이 나타난다.
의복 등으로 가릴 수 있는 무릎·팔꿈치 정도에만 홍반·발진 등이 나타나는 경증이라면 다행이지만 피부 총면적의 20~30%를 붉은 반점이 뒤덮는 등 중증으로 발전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피부 변색이나 변형으로 환자 자신이 고통받는 것은 물론 합병증의 위험도 높아진다.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중증 건선환자는 일반인 대비 58% 이상 주요 심장질환에 노출될 확률이 높고 뇌졸중 위험 역시 43% 이상 높아지는 것으로 나왔다. 2형 당뇨 발생 위험률도 일반인 대비 46% 높고 그 밖에도 염증성 장 질환 등 여러 면역질환, 고혈압 및 고지혈증, 대사증후군과 비만 등이 발병할 위험도 건선의 중증도가 높아질수록 커진다.
건선은 세계 인구의 3%가량이 앓고 있으며 국내는 지난 2010년부터 매년 2,000여명꼴로 환자가 늘어 현재 16만8,000여명이 병원 진료를 받고 있다. 각 나라의 인구 대비 유병률을 볼 때 한국도 최소 50만명의 환자가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생물학적 제제 관심 증가
비싼 가격은 걸림돌=건선 치료는 △연고 등을 이용한 국소치료법 △먹는 약을 통한 전신 치료법 △자외선을 이용한 광선 치료법 △T세포 활성을 조절하는 생물학적제제(바이오의약품) 사용 등이 있다. 이중 생물학적제제의 경우 3개월에 한 번씩만 병원을 찾아 투약하면 되는 등 효과가 오래 유지되고 기존 먹는 약보다 부작용이 적다는 장점으로 관심이 높다. 하지만 1회에 수백 만원에 달하는 비용이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다행히 올 6월부터 중증 건선이 희귀난치성 질환에 포함되면서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한층 줄었다. 전문의를 통해 기준을 만족할 경우 총 진료비의 10%만 부담하면 된다. 다만 건선의 단계적 치료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진료비 혜택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예컨대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산정특례 등록기준은 △3개월간의 먹는 약 치료 △3개월간의 광선 치료를 연속해 모두 받고도 중증 건선 증상이 지속해 나타날 경우에 한정한다. 이때 먹는 약 치료나 광선치료를 3개월씩 받는 도중 2주(14일) 이상 치료가 중단되지 않아야 하며 만약 치료 중단 기간이 2주를 넘어설 경우 연속적 치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간주돼 진료비 혜택을 받지 못할 수 있다.
김동현 분당차병원 피부과 교수는 “건선은 100% 완치를 장담할 수 없는 질환으로 치료를 통해 상태가 호전됐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치료를 받는 것이 악화나 재발을 방지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며 “지금까지 경제적 부담 등으로 중증건선치료를 중단하거나 고민하던 환자들에게 산정특례 혜택을 통해 더 많은 치료 기회가 주어져 환자들의 삶의 질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모든 건선 환자가 산정 특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전문의와 현재 질환 상태와 치료법 등에 대해 충분한 상담을 거친 후 본인에게 맞는 치료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증 건선환자들의 고통은 신체적인 부분에 국한되지 않는다. 피부 변색이나 수포, 우수수 떨어지는 각질 등도 물론 고통스럽지만 주위의 왜곡된 시선과 반응에서 비롯되는 정신적 고통도 간과할 수 없다.
실제 지난달 29일 ‘세계 건선의 날’을 맞아 대한건선협회가 중증 건선환자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증 건선환자의 삶의 질 만족도 점수는 100점 만점 기준 42점에 불과했다. 김성기 대한건선협회 회장은 “과거 조사를 보면 암 환자의 삶 만족도는 49점, 당뇨 환자는 52점으로 나타나 오히려 중증 건선환자의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 등의 정도가 훨씬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중증 환자들이 꼭 치료되기를 바라는 건선의 신체적 증상 역시 피부 변색과 얼룩덜룩한 피부, 붉은 반점(42%)과 같은 피부 병변이었다. 뒤를 이어 각질이 떨어지는 현상(36%)을 고치고 싶어 했고 가려움(19%)은 오히려 후순위였다.
피부 변색이 심한 환자 열명 중 여덟은 이런 외적 변화 때문에 일상을 살면서도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자신감이 줄어든다고 답했고 응답자의 73%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만남이나 외출을 삼간다고 말했다.
건선협회가 지난해 환자 46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10명 중 8명은 겉으로 드러난 건선 증상 탓에 사회적으로 고립돼 우울감을 느낀다고 답했으며 심지어 43%는 자살 충동을 느껴본 적 있다고 답했다.
미국 국립건선재단이 지난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총 5,604명의 건선 및 건선성 관절염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10명중 9명이 건선 질환으로 삶의 즐거움을 방해받고 있다고 답했다.
건선 환자의 12%는 무직인 상태였으며 11%는 시간제 근로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무직인 건선 환자 92%는 건선 혹은 건선성 관절염 질환으로 인해 무직 상태라고 답했고 직장생활을 하는 건선 환자들 49%도 건선으로 결근한 경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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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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