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위대한 국가의 최고통치 기구가 연출하는 혼란스런 공포극을 지켜보는 건 진정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기꾼에게 국가 권력의 고삐를 넘겨주었을 때부터 이미 예상했던 결과다.
그의 전체 정치 경력은 탁월한 협상가라는 그럴싸하면서도 실속 없는 근거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 그에게는 어떻게 통치를 해야 하느냐에 관한 아이디어가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아, 잠깐만. 혹시 지금 내가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사람은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다. 그는 확실한 사기꾼이지만 대다수의 언론매체와 정치기구에 자신이 탁월한 재정전문가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우리는 지금 트럼프 대학 졸업생들이 그들이 지불한 돈의 대가로 일부 가치를 회수하려 할 때 발생하는 사태의 정치적 버전에 해당하는 제스처 게임의 끝판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 목요일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다양한 오바마케어 폐기 시도를 선보였던 당시의 순서와 절차를 그대로 밟아 세제 ‘개혁’안을 공개했다.
다시 말해 수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친 후 청문회를 열거나 진지한 분석 작업을 하지 않은 채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갑작스레 법안을 들이밀었다는 뜻이다.
꼼꼼한 세금정책 전문가들은 황급하게 법안을 훑어보며 주요 내용과 함께 입법 효과를 파악하려 노력했지만, 법안을 작성자들도 모르기는 매 한가지라는 점에서 일부 위안을 얻었을 뿐이다.
O.K. 일부 내용은 명확하다. 세제개혁안은 기업과 부유층, 특히 부를 세습할 후계자들에게 엄청난 세금감면 혜택과 함께 새롭고 방대한 조세회피의 기회를 제공한다. 대규모 감세법이 트럼프 가족에게 맞춤형 혜택이 돌아가도록 특별히 고안되었다는 의혹은 과히 틀린 생각이 아니다.
그러나 대규모 감세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예산적자를 가져오기 때문에 공화당은 추가적자를 제한하는 방법을 찾는데 몰두했고, 그 결과 이것저것 주어 담은 잡동사니 대책을 마련했다. 일부 주세와 지방세의 공제 철폐, 모기지 이자에 대한 공제 제한, 부양자녀 세금 크레딧의 단계적 폐지 등등이 그것이다.
대체로 부유층 감세를 상쇄하기 위한 조치로 정의되는 세제개혁안은 수많은 중산층 가정에 대한 세금인상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세금개혁안이 하원을 통과할까? 불투명하다.
건축업체와 중소기업을 위해 로비활동을 펼치는 일부 중요한 이익단체들은 이미 감세안에 반대의사를 공표했다.
어떤 경우건 감세안은 현재와 같은 형태로는 법제화될 수 없다. 장기적인 적자를 불러오는 법안은 상원을 통과하는데 필요한 60표를 끌어 모을 수 없다. 현실적으로 이런 법안은 상원에서 과반득표도 힘들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세금개혁은 의료개혁 재탕처럼 보인다. 수 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은 황금시간대에 맞춰 법안을 처리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이번 주의 참담한 실패는 라이언 의장 ‘미국의 장래를 위한 로드맵’이라는 제목이 붙은 그럴듯한 재정개혁 청사진을 발표함으로써 미디어의 총아로 자리매김한 7년 전 바로 그 순간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결론이다.
이제 막 공개된 세금개혁안처럼 그의 청사진 역시 대기업과 부유층을 겨냥한 대규모 감세를 포함한다; 그러나 라이언은 이에 따른 세수결손이 정당화할 수 없는 세금 우대 조치들을 폐지함으로써 온전히 보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세금 우대 혜택을 제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했다.
그의 답변 기피는 신의 한 수에 해당하는 절묘한 대중홍보 전략이었다. 그가 마련한 감세계획의 진정성을 경고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무시됐다; 라이언은 재정책임을 주창했다는 이유로 상까지 받았다.
그러나 입법과정에서의 애매한 약속만으로는 거대한 재정적자를 매울 수 없다. 대대적 감세를 실시하면서 추가 적자폭을 ‘단(only)’ 1조5,000억달러로 묶어 놓으려면 어디선가 현금을 조달하는 방법 밖에 없으나 이를 실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큰 문제는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이다. 라이언은 자신의 플랜이 예산적자 감소책이라고 주장해왔으나 이제는 그런 허울마저 내던졌다.
그러면 왜 감세안을 테이블 위에 그대로 놓아두어야 하는가? 우리 예산은 흑자가 아니라 적자일뿐더러 아직 충족시키지 않은 미래 지출 필요성이 수없이 많다.
다른 부유한 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미국의 세금은 높은 게 아니라 낮다. 게다가 감세가 신속한 경제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수차례에 걸쳐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유권자들은 기업세와 부유세가 인하되는 게 아니라 인상되길 원한다.
공화당원 의원들 사이에 지속적으로 나도는 지배적인 이론은 중간선거에서 승리해야 오바마케어 폐기 실패를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맞기는 하지만 소수의 엘리트만을 위한 법안들을 우격다짐으로 처리하는 공화당의 능력을 보기 원하는 지지층 유권자들에게는 대단히 모욕적인 이론이다.
하지만 정치는 이것이 놀랍도록 끔찍한 절차를 통해 고안된 놀랍도록 끔찍한 정책임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대단히 형편없는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그들은 트럼프의 정당인 공화당의 의회 지도자들 역시 대단히 끔찍한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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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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