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 간다. 숲에는 형형색색의 단풍이 곱고 아름답다. 초저녁 하늘, 무리 지어 이동하는 기러기들의 울음소리가 가을을 알려 준다. 낙엽을 밝으며 문득 세월의 흐름을 느끼고 인생과 삶의 의미를 사색함은 아마도 연부년 가을을 맞는 모든 이들의 통과의례가 아닌가 한다. 유독 가을철에 ‘광음여전(光陰如箭)’을 실감하고,‘나이 듦’에 대하여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나 혼자만의 가을맞이는 아닐 지 싶다.
우리 겨레는 춘추, 곧 봄과 가을을 얼마나 맞이했느냐를 나이의 기준으로 삼았으니, 가을에 ‘나이 듦’을 생각하는 것이 그리 생뚱스럽지는 않아 보인다. 다른 민족에 대하여는 미처 살펴보지 못했으나 우리 한민족의 경우를 보면 나이에 매우 민감한 편이다.
나이 많은 연장자에 대한 경로사상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나이에 대한 특별한 배려를 담은 연장자 우대 문화는 아직도 한국 사회의 독특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문화는 어른을 배려하고 공경하는 아름다운 사회에 기여한 바도 있지만, 연령주의 같은 부정적 요소가 있음을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부지불식간에 나이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조직적으로 정형화하여, ‘나이든 사람이 어떻게!’ 혹은 ‘젊은 사람이 감히!’하며 나이로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하는 연령주의자의 모습을 보일 때가 적지 않다. 나이 든 사람은 모두 무기력하고, 무능하며 사회에 부담을 주는 비생산적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나 노인은 모두 생각과 태도가 완고하고, 기술과 유행에서 뒤쳐진 사람으로 분류하는 것 등이 연령주의의 병폐이다.
그런가 하면 아직도 연장자가 나이로 젊은 사람을 차별하는 경향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이를 내세워 초면에 하대를 하거나, 시비가 일어나면 옳고 그름 이전에 먼저 나이를 따지는 자세, 나이로 상대방의 주장을 억누르거나 무시하는 것 등이 그렇다.
나이가 벼슬이니, 유세(有勢)이니 하는 말이 아마도 이런 데서 나온 듯하다. 이는 모두 나이에 대한 편견에서 나온 말들이다. 스스로 나이에 대한 편견이나 연령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연스레 ‘나이 듦’을 사색하는 가을이다. 가을 길 낙엽 벗하며 ‘나이 듦’에 대하여 생각해 볼 때이다. 물론 아직은 어떻게든 동안을 유지하여 젊어 보인다는 인사말을 듣고 싶을 수도 있다.
노년임에도 젊은이 못지않게 주름 없는 얼굴이나, 왕(王)자 모양의 식스팩 배 근육을 자랑하는 TV의 모델들이 부러울 수도 있다. 각종 영양제, 약품, 화장품, 운동, 건강식품 등등 노화거부에 마음이 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건강관리나 ‘젊음 유지’에 대한 것이지 ‘나이 듦’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나이 듦’을 향한 노력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이가 내 안에 들어와 내 몸과 인격과 삶에 자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는 몸과 마음에 든다. 몸은 청장년까지는 나이가 들면 저절로 성장하지만, 마음은 저절로 성숙해 지지 않는다.
대개 나이가 들면서 지식과 경험이 늘어나지만 지식과 경험이 저절로 마음의 성숙을 이루어 내지는 않는다. 나이 듦은 자신의 공력이 필요하다.‘나이 듦’이란 일생을 살며 경험한 희로애락, 겸손과 배움, 그리고 인내와 성찰을 통하여 인격 위에 쌓아 올린 마음의 그릇이다.
나이가 많다고 누구도 세상을 바라보고, 사리를 판단하고, 사람을 대하는 일에 완벽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누구나 자기 나이는 최초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의 현재 나이에는 초년병이다. 7세 어린이가 모든 일에 서툴고 새롭듯이, 80세 어른도 자기 나이가 서툴고 새로운 것은 매한가지다. 그런 면에서 나이 듦이란‘익숙해짐’보다는 어쩌면 늘 새로운 ‘경이로움’과의 만남이다.
경이를 맞이하는 길을 놀람이요, 배움이요, 즐거움이요 감동이다.‘나이 듦’은 맥없이 고루해 가거나 늙어 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나이에서 경이로움을 맛보고 감동하며, 평생 학인(學人)의 마음으로 겸손히 배우며 나아가는 인생의 완성을 향한 즐거운 여정이다.
<
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you pay respect then you will earn some
늙어가면 뒷줄로 나와서 젊은이들이 활동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돈과 지위로 젊은이들과 경쟁 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그들을 지원하고 멘토링할때 비로서 그들의 존경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