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 코스타 지역에 "좋은 나무 문학회"란 새로운 문학 모임이 생겨서 회원이 된 나는 언제나 다음 모임이 기다려 지곤 한다. 이 모임에 참석을 하면 정신적으로 풍요로움을 더욱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를 맞아 각자의 후반 인생을 위한 버켓 리스트를 적어오라는 과제에 모처럼 나 자신을 다시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주위의 어르신들이 60세 환갑잔치 하는 걸 보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 건강하게 오래 사셨네 하던 내가 이제 그 나이를 훌쩍 넘어 벌써 68세라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몇 년 전만 해도 누가 할머니라고 부르기라도 하면 그 소리가 무척 부담스러웠는데 이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걸 보면 조금씩 포기하면서 나이를 받아들여지는 자신에 저절로 씁쓸한 미소가 지어진다. 허긴 이젠 80세 시대를 넘어 100세 시대라고 한다니 68세의 나이도 창창한 나이라 생각하며 남은 나의 후반인생을 위한 버켓 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나의 건강을 위해 체중조절을 해야겠다.
재작년 12월부터 2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다리수술을 했다. 잦은 수술로 인해 올 5월 중순까지는 걷기가 무척 불편하고 다리가 아프다는 아주 타당한 이유로 그저 먹고 눕거나 앉아 컴퓨터에 붙어있는 시간이 대 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늘 하던 운동도 안하고 맘껏 게으름 피운 결과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 몸무게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체형이 바뀌니 맞는 옷도 없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다. 정말 큰일이 아닌가.. 자신을 추스려 체중조절에 도전하려고 한다.
두 번째로는 사랑하는 내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야겠다.
공인이 되어 지난 35년간 지역사회에 봉사한답시고 여기저기 공적인 행사에는 우선 순위로 참석하였다. 그렇게 늘 바쁘게 살다 보니 가족모임과 가족여행은 물론이고 두 아들 식구들 얼굴 볼 시간도 별로 없이 살아왔다. 그 결과 이제는 가족들은 엄마는 당연히 바쁜 줄 알고 시간이 있느냐고 아예 물어보지도 않는다.
몇 주전에 아들 가족과 아주 오랜만에 모처럼 시간을 내어 짧은 여행을 했다. 아들, 며느리, 손주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누구를 위해 소중한 가족과의 시간을 소홀히 했는지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행복해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미안한 마음에 한동안 마음이 시려왔다.
사랑하는 아들들, 며느리들, 손주들에게 최대한으로 많은 시간을 내어 같이 보내는 것도 중요한 버켓 리스트가 되었다.
세 번째로는 맡고 있는 여러 단체의 일들을 하나하나 내려놓을 때가 된 것 같다.
여러 군데의 단체에 가입이 되어있다 보니 단톡으로 오는 카톡들이 쉴새 없이 "카톡","카톡"하며 울려댄다. 전화기를 열어보면 여기저기 단체들이 골프대회를 한다고 초청장을 보내오거나 행사에 참석해 달라 혹은 광고 부탁이나 행사의 축사를 해 달라는 부탁등 끊임없는 메시지에 내 전화가 조용할 때가 없다. 한 동안 연락 없던 단체장들도 행사 때면 문자메시지나 전화를 걸어온다.
물론 다 교포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기 위한 행사들이고 모두 다 감사할 일이다. 보통 한 달에 두 세 군데의 행사가 있는데 모든 행사마다 후원금이 필요하고 기다리는 곳들이다. 후원금을 부탁하면 나는 마음이 약해 단 얼마라도 보내야만 편한 마음이 들고 만약에 후원금을 보내지 못하며 죄라도 든 기분이 들으니 이것도 천성인가보다. 단 한 푼이라도 아끼고 모으려고 열심히 일하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솔직히 가끔은 '노'라고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노'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조차 내 버켓 리스트에 들어가 있는 마음 약한 나 자신이다.
네 번째로는 가족 사진을 꼭 찍어야겠다.
지인의 장례식에서 지인 가족들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과연 나는 가족사진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30여 년 동안 각 행사와 모임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혹은 단체로 수도 없이 많은 사진을 찍어왔다. 앨범을 보면서 그 많은 사진 중에 가족사진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는 게 참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에 가족들이 많고 많은 내 사진을 보며 낯선 사람들 속에 엄마는 항상 있구나 하며 얼마나 섭섭해할까 생각하니 미안하다 못해 가슴이 아파온다. 두 아들 가족 모두의 사진을 꼭 만들어야겠다.
다섯 번째로는 요즘 들어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한동안 못 읽은 책도 읽고 음악회나 연극도 보러 가고 싶다. 미술을 전공한 만큼 예전에는 그림을 자주 그렸었는데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붓을 들지 못했다. 이제는 큼지막한 화폭에 붓으로 마음도 달래보고 소통하는 친구들과 여행도 하고, 늦지 않았다면 서먹해하는 아들들과 며느리, 손주들과도 시간을 자주해야겠다.
언젠가 내가 저 먼 곳으로 떠난 후 좋은 친구, 든든한 엄마, 다정한 시어머니, 늘 편이 되어준 할머니등 나를 기억하면 미소가 저절로 떠 오를 수 있게.......... 10/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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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욱순/전 샌프란시스코 한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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