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시카고 심포니, 과연 리카르도 무티다.
지난 주말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카고 심포니(CSO)의 공연은 드높았던 기대를 충만하게 채워준 연주회였다. 본보가 공식 미디어 스폰서로 후원한 이날 콘서트는 입추의 여지없는 만석이었고, 객석에는 LA 필하모닉 단원들도 여럿 눈에 띌 정도로 이곳 음악계의 호기심과 기대가 가득했다.
CSO는 현재 미국에서 최정상으로 인정받는 교향악단이다. 근년 뉴욕 필하모닉이 헤매고 있는 동안 CSO는 2010년 부임한 시대의 명장 리카르도 무티의 리더십 아래 잘 조련된 명마처럼 눈부시게 부상해왔다.
지난 2008년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매거진 그라모폰은 ‘월드 베스트 20 오케스트라’를 선정해 발표한 적이 있는데, 여기에 미국 관현악단이 무려 7개나 포함돼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 중에서 CSO가 5위, LA 필 8위, 뉴욕 필 12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13위였다.(참고로 1~3위는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베를린 필, 빈 필)
그 시카고 심포니가 온다니 기대가 하늘을 찔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공연 프로그램을 보는 순간 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브람스 교향곡 2번과 3번.
좀이 아니라 많이 놀랐고, 적잖이 실망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브람스가 어떻다는 게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고많은 레퍼토리 중에서 같은 작곡가의 교향곡만 2개나 할게 뭐란 말인가.
보통 오케스트라가 순회공연을 떠날 때는 그들의 사운드를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여러개 준비해서 방문 도시마다 조금씩 프로그램을 바꿔가며 연주하곤 한다. 이때 전통 클래식과 함께 자기네 상임작곡가의 신곡을 들고 가서 소개하는 일이 보편적이다.
예를 들어 구스타보 두다멜과 LA 필은 2011년과 2013년 두번의 유럽과 미동부 투어 때 존 애덤스의 새로운 작품을 프로그램에 포함시켰다. 5년전 이곳을 찾아온 뉴욕 필은 당시 상임작곡가 매그너스 린드버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고 와 서부지역 초연을 했다.
그해 북미주를 순회했던 서울시향도 프로그램 중에 진은숙의 생황협주곡이 있었다. LA에서는 빠졌지만 밴쿠버, 시애틀, 샌타바바라에서 우 웨이의 협연으로 연주해 호평 받았다.
그런데 굴지의 CSO가 100명도 넘는 단원을 이끌고 서부 투어를 하면서, 더구나 디즈니 콘서트홀에서의 데뷔 무대인데 달랑 브람스 교향곡 2개라니… 그러나 이런 실망은 연주가 시작되면서 곧 경이와 찬탄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알던, 그동안 들었던 브람스 교향곡이 아니었다. 황제 같은 포스로 포디움에 오른 마에스트로 무티는 76세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꼿꼿한 자세와 작열하는 카리스마로 지휘봉을 휘두르며 미국 최강의 준마들을 일사불란하게 지휘, 물 흐르듯 유려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CSO 사운드’라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었다. 따뜻하면서도 강렬한 파워가 넘쳐흘렀고, 때론 거칠게, 때론 아주 세련되게 음을 다루었다. 악기 하나하나 소리가 들렸고, 악보 구석구석이 들릴 만큼 디테일을 충분히 살리는 한편 마치 거대한 드라마를 연출하듯 명암이 뚜렷한 감정의 파고에 듣는 이의 호흡도 함께 오르내렸던 위대한 연주였다.
남가주에는 세계적 명성을 가진 유수 오케스트라들이 자주 찾아온다. 디즈니 홀 외에도 밸리 퍼포밍 아츠 센터, OC의 시거스트롬 센터, 어바인의 소카 퍼포밍 아츠 센터에서 정기적으로 좋은 오케스트라들을 초청하고 있다. 작년 한해에만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 에사 페카 살로넨과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유리 테미르카노프와 세인트 피터스버그 필하모닉이 남가주를 방문했었다.
LA 필하모닉은 한 시즌에 3~4개 오케스트라를 초청하고 있다. 2017-18 시즌에는 CSO를 필두로 주빈 메타가 이끄는 이스라엘 필하모닉(10월30일),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11월1일), 마이클 틸슨 토마스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내년 3월27일)가 차례로 찾아온다. 또 바로 다음 주 밸리에서는 모스크바 국립 심포니(11월2일)의 공연이 있다.
LA에 가만히 앉아서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를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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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부국장·특집 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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