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춘기의 히말라야 트레킹1
▶ 영봉들과 조우하는 푼힐 전망대 가는 길
-네팔 최고의 휴양지
시간에게 시간을 주라했던가. 히말라야. 그 신의 영역. 트레커들의 로망이며 트레킹의 보고로 알려진 히말라야의 길. 태평양 너머 멀리 산다는 지리적 이유로 등한시 해왔던 이 곳. 마침내 마음을 다잡아먹고 행장을 꾸렸습니다.
그런 내 마음의 그리움. 히말라야로 긴 긴 항공 끝에 카트만두에 내렸습니다. 혼재하는 상반된 요소들을 조화롭게 어루만지며 행복을 지어가는 네팔. 히말라야의 찬바람에 의지하고 신이 빚은 자연과 그 신조차를 닮은 사람들을 만나면 네팔은 그대로 산이 되고 그리움이 된다기에 가난하지만 순수한 나라를 가슴으로 만나려 합니다. 또한 그 작지만 큰 나라 그 거대한 나라의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을 만나러 히말라야로 왔습니다.
카트만두에서 네팔 제 2의 호반 도시 포카라까지 25분간의 비행으로 도착합니다. 포카라는 원주민어로 호수를 뜻하는데 서쪽 히말라야 트레킹 출발의 본거지로서 아열대 지방의 온난한 기후 덕에 네팔 최고의 휴양지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의 품에 안기기 위해 나야풀로 가기 전 잠시 시간의 여유가 있어 페와 호수로 갑니다. 포카라에서 보는 히말라야. 또 다른 경이로 다가옵니다. 신이 산다는 그래서 인간의 등반을 허용치 않는 마차푸차레가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큰 페와 호수에 허리 숙여 얼굴을 씻고 있고 줄지은 설산 고봉들이 길손을 맞아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반겨줍니다.
-우리의 고향 같은 풍경들
안나푸르나를 만나기 위해 에둘러 가는 길에 푼힐 전망대가 있습니다. 히케룬다 계곡을 따라 하염없이 걷는 길은 오랜 옛 기억에서 조차도 가물거리는 우리의 고향 같은 마을들이 향수를 자극합니다.
겨울이 존재하지 않는 이 땅에서는 방풍을 위한 구조물이 필요 없으니 아무렇게나 비나 피할 지붕만 있는 허술한 외양간에서 풍겨 나오는 시골 냄새. 식육으로 가능한 물소들이 싸질러 놓은 배설물. 수 시간 걸어 등하교 하는 교복 입은 어린 학생들. 냇가에선 바위들을 해머로 내려쳐서 기절한 물고기 잡는 아이들. 먼지 뽀얗게 쌓이고 색까지 바랜 과자들과 코카콜라 파는 구멍가게. 그 앞 나무 평상에 누워 배를 드러내고 그냥 자고 있는 촌 할배, 할매들. 타인의 침범을 막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경계의 표식으로 쌓아올린 가지런한 돌담들. 지나는 길손들의 목을 적시고 가게 해둔 가상한 마음의 배려인 약수터. 그 아래서 빨래하는 아낙네.
그 옛날 내 유년의 향리와 너무도 흡사합니다. 우리에게 산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도전의 대상이지만 이들에게는 삶 그 자체며 생계를 이어주는 곳입니다.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과거를 반추하며 걷는 길이기도 합니다.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아주 고약한 냄새가 혐오스럽기 까지 한데 가이드가 아마 사자를 화장하는 것 같다합니다. 누군가 생과 이별을 한 듯, 한 생명이 자연으로 귀의하는 시간. 숱한 기쁨과 슬픔으로 점철된 그만의 세월은 이렇게 자연 속으로 스러집니다. 죽어 영원히 산다고 믿는 이들이기에 지금 이 순간은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그저 두 삶의 경계에 있을 뿐입니다.
옥수수 그루 가지런히 심겨진 다락 논 가득채운 계곡을 오르며 문득 먼저 가신 어머님이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절경에 대한
감탄사 다음에
나의 내면과
만나는 소중한 시간…
- 마을 입구의 마니석
바지런한 아낙이 어둠을 쓸어내며 아침을 여니 한없이 게으른 기지개를 켜면서 히말라야 산들이 하나 둘 일어납니다. 일행들을 깨우고 뜨락으로 내려서니 로지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일과로 분주한데 잊지 않고 ‘나마스테’ 하고 반가운 아침 인사를 건네옵니다. ‘내 안의 신이 당신 마음의 신에게 인사드립니다’ 라는 나마스테. 미소를 잊지 않고 나마스테 인사를 돌려줍니다. 아침 식사 대충하고 세안하고 양치하고 또 쭈그려 앉아 5분도 버틸 수 없는 푸세식 해우소에서 고민을 해결하고 오늘을 준비합니다. 고단한 순례자의 길이 시작됩니다.
싱그러운 히말라야의 아침 기류속으로 흘러들어가는 우리들의 모습. 울레리 마을. 드디어 안나푸르나가 인사를 하더니 연이어 마차푸차레까지도 얼굴을 내밀어 우리들을 환영을 해줍니다.
예쁜 지붕들 색칠하고 히말라야의 산자락에 고즈넉이 누워있는 이 산간마을 입구에는 수많은 경전을 새긴 마니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후손들이 세워둔 탑 같은 것인데 대개 2층으로 쌓았고 낮은 곳은 이 길을 지나는 나그네들이 쉬어가거나 셀파들이 무거운 짐을 내리고 쉬어가도록 높이까지도 배려해 두었습니다. 서로 돕고 이해하며 살아가는 삶. 참 아름답습니다. 마니석이 있는 길은 두 갈래인데 반드시 오른쪽으로 가야한다는 것은 종교적 기본 예의랍니다.
-말죽거리 마을 고레파니
천년의 바람을 이겨내고 살아온 돌집들 돌 지붕 위에 섬섬옥수 부처님의 자비처럼 햇살이 잠시 쉬어갑니다. 달콤한 오수가 그리운 한 나절입니다. 지나치는 문도 담도 없는 한 촌가엔 할머니부터 강보에 싸여 칭얼대는 어린 아이까지 3대가 함께 봄 햇살 아래 푸성귀를 돌에 대고 찢고 있습니다. 네팔 식 김치를 담는 중이랍니다. 자연이 주는 그대로를 받으며 살아온 이들. 행복은 마음의 속도에 반비례한다고 했던가! 조급하게 살면 늘 부족하지만 느긋하게 살면 늘 풍요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오늘의 종착지. 삼천에 가까운 고지 고레파니는 푼힐 전망대로 가는 거점이기도 하거니와 삼각지 로타리의 고개입니다. 비에탄티. 간드록 등 세 곳에서 열심히 달려와 목적하는 길로 갈라지는 곳으로 그 높은 고갯길을 힘들게 올라와 지쳐버린 사람도 말과 나귀도 잠시 목을 적시며 쉬어가는 곳입니다. 고레는 말을 뜻하고 파니는 물이라는 뜻이니 그 옛날 우리네의 말죽거리에 해당하는 마을입니다.
-푼힐 오르는 순례자들의 전등불
산길에 긴 등불행렬이 이어집니다. 어디서 머물다 나왔는지 푼힐을 오르는 순례자들의 전등불 행렬이 장관입니다. 등불이 길을 열고 차갑게 맺힌 이슬이 내 발길에 채여 영롱하게 빛납니다. 푼힐 일출은 우리네 인생살이처럼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운도 따라야 볼 수 있다는 그래서 3대 적선을 한 사람에게만 열어 보여준다는 곳입니다.
천하제일경이 있는 3,193미터 고도의 푼힐 전망대로 가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고 가슴이 터지기 직전까지 이어지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오기 같은 각오도 생깁니다. 몇 백킬로미터의 전 여정에 이 푼힐 오르는 구간이야 겨우 조족지혈인데 창연한 히말라야의 고산 준봉을 비추며 차오르는 일출의 장관을 보기 위해서는 일각이라도 늦출 수 없다는. 가슴에 산을 품은 사람들에게는 신의 나라 네팔에서 신들의 산책로 히말라야 트레일의 백미가 이 푼힐 전망대의 일출이 아닐는지.
짊어지고 간 침낭을 안나푸르나 연봉들과 마주하는 전망대 난간에 깔고 줄지어 앉아 해가 뜨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산들이 구름 뒤에 숨어서 자태 보여주기를 아끼는데 거스릴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멀리 여명이 걷히고 햇살도 도톰해집니다. 어둠속의 한 선이었던 설산들의 윤곽이 서서히 분리되고 하늘이 서서히 열리는 순간. 태양은 기다리는 사람들은 외면하고 7, 8 천의 고봉 성산들과 먼저 두루두루 입맞춤을 하고 그때서야 우리와 눈맞춤을 하잡니다. 뒤이어 해가 홍조 띤 부끄러운 얼굴로 솟는데 숨을 죽이고 기다리던 만년설의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가 마침내 잠에서 깨어나고 물고기 꼬리 모양의 마차푸차레가 덩달아 기지개를 켭니다.
-금빛 화관을 쓴 하얀 산
산스크리트어로 ‘하얀 산’이라는 다울라기니가 금빛 화관을 쓰고 출연을 하니 이윽고 붉은 해가 얼굴 내밉니다. 남봉을 시작으로 차례로 세례를 받는데 빛의 파노라마가 빚어내는 휘황한 풍경. 생을 막아서던 온갖 내 삶의 도전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온 것처럼 저 일출의 산고 끝에 이루어 낸 태양의 솟구침이 더욱 장렬합니다. 여느 나라와 다른 일출. 푼힐에서만 볼 수 있는 비경입니다.
산. 언제부터인가 내 삶 깊숙이 자리한, 미주 트레킹을 운영하면서 지구촌 오지의 아름다운 길을 찾아다니기를 10년. 처음엔 그저 경탄을 금할 수 없는 풍광들에 압도되어 그런 비경만을 쫓는 것이 최고 목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시간이 더욱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번씩 내가 사는 환경에서 온전히 벗어나 전혀 다른 환경 속에 나를 던져버리면 주관적이었던 내 삶의 진행을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게 됩니다. 모호했던 나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고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야말로 이런 낯선 길에서 얻는 가장 소중한 경험입니다. 내 삶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마지막이 아름다울까 이런 나 자신과의 대화 속에서도 귀한 시간들을 공유할 수 있답니다.
www.mijutrekking.com
<
글, 사진/ 박춘기 (미주 트레킹 대표>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