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 전에 고등학교 졸업 동기 모임에 다녀왔다. 나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 마치지 못하고 미국으로 이민 온 후에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 시에 위치한 T.C. Williams (티씨)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인종적 배경에 따라 나뉘어져 있던 알렉산드리아 시의 공립학교들을 통합했을 때 학교 풋볼팀에 있었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Remember the Titans (타이탄을 기억하라)” 에서 나오는 고등학교가 바로 그 학교이다. 그 영화 배경은 1971년이니 내가 그 학교에 들어가기 불과 4년 전의 일이다. 내가 다닐 당시 티씨는 11학년과 12학년 두 학년만 다니는 씨니어 고등학교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고등학교들과 마찬가지로 9학년부터 12학년까지 4년 과정이 모두 있다.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 온 나는 대학에 들어 가기 전에 영어 공부를 조금이라도 더 하기 위해 1년 반 정도 늦추어 10학년부터 다시 시작했다. 덕분에 티씨에서는 동급생들보다 그 만큼 나이가 더 많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영어 발음이나 점심으로 싸가는 양파와 마늘을 많이 다져 넣어 냄새가 지독하게 나던 햄버거 때문인지 몰라도, 나이가 많다고 놀리는 급우들은 없었다.
이번에 다녀온 모임은 졸업 40주년 기념 모임이었다. 보통 5년에 한 번 정도 모이는 reunion이라고 부르는 이 모임에 내가 참석해 본게 25주년 때인지 30주년 때인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단 한차례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졸업한지 40년이 되었으니 더 늦을 수록 옛 친구들을 만날 기회도 많지 않겠다 싶어 이번에는 꼭 참석하기로 했다. 다행히 우리 기수 졸업생 수가 꽤 많았기에 이번 모임에 온 동기생들 숫자가 거의 100명은 되었던 것 같다. 그 사이에 제법 모습이 변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으로부터 옛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모임 장소 입구에 세워 놓은 포스터 한 장이 나의 시선을 확 끌었다. 그 포스터에 55명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그 중에는 고등학교 졸업학년 당시 앨범에 실렸던 사진들이 함께 올려져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냥 이름들만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 55명이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만나 볼 수 없는 동기생들이라고 했다.
가끔 먼저 세상을 떠난 동기생이 있다는 소식들을 들었으나 실제로 그러한 사망자 이름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것을 보자 가슴이 그대로 답답해짐을 느꼈다. 명단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 가운데 내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을 먼저 떠난 동기생 이름 하나가 빠져 있었다. 그러니 실제로 사망한 동기생들 숫자는 55명보다도 훨씬 많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들이 모두 58-9세가 되기 전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나도 오래 전에 심각한 건강 문제로 수술과 치료도 받으며 죽음에 대해 나름대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지만, 주위에 암 등의 병으로 젊은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나 가는 이들을 본다. 그리고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라스베가스 총격사건처럼 정말 어이 없는 사건으로 가족과 친지들을 뒤로하고 먼저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 동기 모임에 가기 한 주 전에도 또 다른 동기 친구로부터 자신이 모임에 참석하지 못해 유감이라며 바로 그 며칠 전에 암 4기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다.
이런 소식과 젊은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난 다른이들의 얘기들을 들으면서 우리 생명이 언제 거두어질지 모르는 나약한 것이라는 아픈 생각이 새삼 찾아든다. 올해 환갑의 나이를 맞이한 내 나름대로는 그래도 앞으로 15년부터 20년 정도는 지금처럼 계속 활발히 활동하고 싶다는 욕심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하루하루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생명이 내가 생각했던 시점보다 훨씬 일찍 거두어질 경우 나는 무엇을 가장 아쉬워하게 될까 자문해 본다. 나의 삶에 있어 소중한 것들을 과연 우선 순위대로 챙기며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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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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