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일 일요일 밤 라스베이가스에서 대형 사고가 터졌다. 단 한 사람의 악한 행위로 58명이 죽고 수백 명이 심하게 다쳤다. 흥겨운 컨츄리 음악이 시원한 바람을 타고 휴일 밤에 울려퍼지고 있을때 갑자기 32층의 고층 호텔 방에서 소나기 빗발 치듯이 총알이 뿜어나왔다. 수많은 관객들은 영문도 모른채 혼비백산하며 바닥에 엎드려 몸을 숨겼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범인은 호텔 방에서 자살했다. 그는 마약에 빠진 경력도 없고 가난에 찌들어 인생을 비관한 사람도 아니었다. 적어도 그 자신은 정신질환의 경력도 없다고 한다. 테러단체의 배후도 없고 그저 외로운 늑대라고 추정할 뿐이다. 그의 끔찍한 범행 동기는 현재까지 미스테리이다.
이번 총기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사상자를 기록했다. 그것도 단 한 사람에 의해서다. 그는 금요일부터 숙박하며 복도와 방에 CCTV를 설치해 놓고 주변을 감시하며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했다. 보도에 의하면 그는 그전에도 여러 야외공연장을 탐색하며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단번에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를 연구했다는 것이다.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는 범행 후에도 도주하려고 했으나 포기하고 자살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는 어마어마한 살인 행위를 계획했지만 자기의 죽음을 준비하지 않은 듯 하다. 그런 대형 사고를 계획했다면 자기 행동에 관한 역사적 대의 명분이나 분명한 소신을 밝히고 죽었어야 했다. 그런데 이유가 없다. 무엇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그는 우발적이 아닌 치밀한 계획 속에서 무고한 생명들을 학살했단 말인가.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자기의 죽음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공연장이나 극장과 같이 사람들이 운집한 곳에도 가기가 무섭다. 극도로 분노에 가득찬 사람, 마약에 빠져 정신을 잃은 사람,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이 총기를 휴대하면서 점점 큰 사고가 터지는 것 같다. 이럴 때마다 너나없이 총기 규제가 해답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미국 대통령은 대답을 회피한다. 오히려 참사 직후 총기 판매는 증가하고 총기업체의 주가는 급등했다고 하니 허탈한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심리를 예리하게 묘사했던 작가로 유명하다. 그가 남긴 <죄와 벌>은 잘 알려진 소설이다. 주인공 라스콜리니프는 가난 때문에 대학을 중퇴한 젊은 청년이다. 그는 인정머리라고는 손털만큼도 없는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죽인다. 그는 살아있을 가치도 없고 오히려 해만 끼치는 저런 고리대금업자는 죽어도 마땅하다는 자신의 결정을 근거로 노파를 살해했다. 자신이 순간 하나님이 된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 살인 현장을 목격한 노파의 누이동생마저 뜻하지 않게 죽이고 만다.
그는 매일 공포와 악몽에 시달리며 괴로워 하다가 어느날 알고 지내던 한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창녀였다. 그런데 그녀의 마음과 영혼은 너무나 맑았다. 그녀는 틈나는대로 라스콜리니프에게 성경을 읽어주곤 한다. 그는 그녀로부터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며 살인자가 바로 자신임을 고백한다. 결국 그녀의 설득으로 자수하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게 된다. 그는 죄의 대가를 치루겠다고 결단한 것이다. 이 소설은 150년 전에 쓰인 글이다. 그래도 한 생명을 귀하게 여겼는지 주인공은 공포와 악몽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번 라스베이가스 참사의 범인은 그런 흔적조차 없다. 단호히 선언하건대 어떤 살인에도 결코 정당성이 부여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생명을 끊을 권리가 없다.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나도 할아버지가 될 모양이다. 아직 나는 할아버지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3년전에 결혼한 딸아이가 귀한 아기를 가졌다. 손주를 끌어안고 재롱을 받아보는 재미가 어떨까. 새생명의 출현은 항상 아름답고 귀하다. 한편으로 세월은 자꾸 나를 세상 끝으로 밀어낸다. 그것이 인생의 순환이다. 언젠가 나도 나의 생명줄을 놓아야한다. 풍요롭고 편리한 세상 속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라 여기며 지금 이시각 어느 곳에서 또 남의 피와 함께 자기의 생명을 버리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믿는 하나님의 얼굴에서 작은 섬광과 같은 소망의 빛줄기가 그에게 비추어지기를 간절히 원한다. 길지 않은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또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생각해 본다. 한 점 부끄럼 없고 후회없는 삶은 어렵겠지만 생명을 사랑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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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식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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