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7년 전인 2010년 여름에 우리 부부는 이곳 라스모어라는 은퇴촌에 이사를 왔다. 처음 이곳에 올 때까지 나는 별로 이곳의 삶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차츰 살아보니까 이곳만큼 노인의 삶에 대해 그 행복을 추구하며 노력하는 곳도 없다는 생각을 하며 ‘참 이사를 잘왔구나’ 하고 만족한 생활을 해왔다.
말하자면 우선 이곳은 숲으로 쌓여있는 동네라서 공기가 좋고, 도시 한가운데 있는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물도 요세미티에 있는 히치하치라는 곳에서 끌어와 최상의 물을 먹고 산다.
처음 이곳에 왔을때 한국인이 60여명이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150명을 육박하고 있다.
이곳에 사는 우리 한국인들은 아침 일곱시 경, 십여명이 함께 모여 육통권이라는 아침 체조를 한 후 커피와 간단한 아침 식사를 같이 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산다. 이런저런 수다도 함께 떨면서 재미있게, 지루하게 살지 않아서 좋다고 모두들 이곳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이곳이 천국이야!’ 이렇게 말하며 사는 우리들은 이제 친구며 이웃이며 함께 마지막 삶을 향해 가는 정다운 동지들이다. 나이들이 모두 칠십대 아니면 팔십대 초반들이어서 같은 시대를 살았고, 또 마지막 삶을 함께 산다고 생각하니까 모두 너무 소중하고 귀한 사람들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어느날 이런 분들이 한명씩 한명씩 우리 곁을 떠난다면 얼마나 슬플까? 그런 생각에 미치면 지금부터 눈물이 난다. 세월은 유수같아서 벌써 칠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우리들의 건강도 예전 같지 않아서 이제 빨간 불이 켜진 사람도 생기고 있다.
가벼운 스트록이나 약한 심장 발작이 일어나 응급실의 신세를 며칠 동안 진 사람도 생겼다. 또한 당뇨 환자들은 주위에 수두룩하고 귀가 나빠져 먹통이 된 사람이나 눈이 문제가 생겨 수술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또 무릎 아픈 사람, 허리가 아픈 사람들은 걷기조차 불편해지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런 현상들이 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오히려 완벽한 건강을 가진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다. 인생은 한번 태어났으면 어느날 부터 병이 생기고 어느날인가 모두들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이 지구상에 살아있는 모든 동물들은 다 한번은 죽음을 맞이한다. 이것이 운명이다.
오늘 아침도 잘 사는 삶에 대해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우리들이 좋다는 음식들을 먹고, 매일 운동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즐겁게 살려는 이 모든 노력들이 잘 사는 삶을 살기 위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주위에는 돈은 많아도 건강을 잃고 한푼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이십여년 전에 이웃으로 살면서 돈도 많고 믿음도 좋고 우아하게 살던 한 친구가 이제는 치매로 인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며 사는 사람이있다. 치매는 무엇보다 한 인간의 존엄성을 잃게 하는 병이다. 인간이 품위를 잃고 산다면 그것보다 치욕은 없다. 한 인간이 그 영혼을 잃는다면 그것보다 슬픈 일은 없다.
또 가장 어그리한 병이 중풍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남의 손을 빌려야만 살 수 있다면, 화장실도 혼자 못간다면 그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품위를 포기한 삶이다.
우리 이웃에 거의 구십을 바라보는 여자 노인이 한분 계시다. 그분은 아직도 하루 오천보의 걸음 걷기를 실천하면서 과일이나 야채를 깍아서 말리시고, 김치도 손수 담가 먹을 정도로 삶을 긍정적으로 살고 계시다.
‘정말 못말려!’라고 사람들은 수근대지만 그분의 적극적인 삶의 자세는 본받을 만하다.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 마지막까지 내 발로 걷고, 내 손으로 밥해 먹고, 내 입으로 떠들고 혼자 운전까지 한다면 그 사람은 잘 사는 사람이다. 복 받은 사람이다. 나이가 어떻게 되든 나는 마지막 날까지 내 입술에 립스틱을 칠하며 살고싶다. 내 자신에게 예쁘게 보이면 남에게도 그렇게 보인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길 신경쓴다면 그 사람은 아직 인생의 흥미를 가진 사람이다. 어떤 사물에 흥미를 가진다면 그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다. 건강한 사람은 건강하게 마지막 날까지 살 수 있다.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니 나무 잎새들이 언제부터인가 형형색깔로 바뀌고 있다. 계절은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내 곁에 다가오고 또 슬그머니 떠나려 하고 있다. 우리 인생도 도둑처럼 살그머니 왔다가 또 언젠가 그렇게 떠날 것이 아닌가.
마음은 울적해지지만 나는 오늘 이 순간을 위해 살고 싶다. 그래서 죽는 날까지 우리 모두 ‘잘살아보세!’라고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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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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