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서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에 대한 논란이 벌어져서 이 때문에 어느 공과대학의 교수가 중소기업벤처기업부 장관급 자리에 대통령이 임명을 했으나 국회에서 인준을 받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게 되어 결국은 본인이 스스로 사퇴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분이 한국의 창조과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었다. 그러면 창조과학이란 무엇이며 왜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인가?
창조과학이란 간단히 말해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창조이야기를 역사적으로 실제로 이루어진 사실로 인정하고 이것을 과학적으로 증명 하려고 하는 시도를 말한다. 이러한 시도가 생기게 된 원인은 간단하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을 글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극히 보수적인 개신교 기독교인들의 주장에서 그 기원을 볼 수 있다. 즉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과정에 구약성경에 기록된 그대로를 믿기 위해서는 성경의 기록이 진리라는 것이고 이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창조의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증명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창조이야기를 그대로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전제 한다면 이 지구의 역사는 고작해야 약 6000천년 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보면 지구의 역사는 적어도 45억년이 넘는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보면 구약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자명해 진다. 그렇다면 성경이 잘못 되었다는 것인가? 일부 보수적 경향의 기독교인들은 성경말씀은 진리이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 가운데는 절대로 잘못이나 착오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창조신화를 과학적으로 증명해서 이것이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으로 믿는 것이다. 왜 이러한 발상을 하게 되었을까? 구약성서의 창조이야기가 신화라고 하면 이미 이것은 진리가 아니라는 결론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의 창조신화는 신화가 아닌 역사적 사건을 증명되어야 비로소 성서의 권위가 설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그룹의 사람들은 창조설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과학적으로 설명하게 되었던 것이다.
신화는 그것이 꼭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고 설명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 신화는 신화 자체로서 가지는 독특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신화는 인간의 인지 발달하기 전 원시시대의 산물로서 그 때는 과학이 없었고 인간이 이성적으로 합리적 사고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신화라는 것으로 설명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과학과 이성과 합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근대이후에는 신화가 필요 없다고 생각 한다. 간단히 말해서 과학이나 합리적 논리적 사고가 종교를 대체 하였으므로 신화도 당연히 이제는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이야기를 신화라고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당연히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절대성을 믿는 기독교 신자가 창세기 이야기를 역사적사건이 아닌 신화로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성에 대한 도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코 신화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당연성이 여기서 나온다.
서구역사에서 중세까지는 종교가 진리의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가 등장 하면서 점차 과학이 진리를 판단하는 절대적 권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종교가 과학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과학이 종교가 될 수는 없다. 쉽게 말해서 성경은 근본적으로 종교의 경전이지 과학의 교과서가 아니다. 성경에서 과학을 찾는다는 것은 나무에서 생선을 찾는 것과 같이 무모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종교의 경전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와 권위를 가지는 것이지 결코 과학에 의해서 그 진리가 측정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창세기를 과학서적으로 생각하고 이 우주의 근원이나 지구의 생성 과정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또한 창세기 이야기가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고 과학으로 증명 할 수 없는 “신화”라고 인정한다고 해서 성경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종교적 “신화”는 과학이나 합리나 논리가 표현 해 줄 수 없는 인간의 신비한 경험이나 차원을 “신화”라는 특별한 매체를 통해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종교의 차원, 깊이의 차원, 신비의 차원을 이해한다면 신이나 하나님의 차원을 인간의 합리나 논리나 과학으로 구차하게 설명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과학이 종교를 대신 할 수 없듯이 종교의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서 과학에 호소해야 할 필요나 이유가 없다. 또한 과학의 언어로 종교의 경전을 해석 할 필요도 없다.
종교의 언어는 종교적인 경험과 종교적인 관점으로 이해해야 그 본질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종교를 믿는다거나 신앙심이 깊어진다고 해서 과학을 무시하거나 버릴 필요도 없고 과학을 안다고 해서 종교를 버릴 필요도 없다. 종교적 차원과 과학적 차원, 신비적 차원과 합리적 차원, 이 둘이 서로 같이 병존하면서 서로 상호 보충하는 관계를 가져야 인간과 우주와 신을 제대로 종합적으로 이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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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찬 조지메이슨 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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