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로 떠나는 ‘국민타자’ 이승엽
그가 뽑은 생애 최고 홈런 탑5는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국민타자’ 이승엽이 역사적인 커리어를 끝내고 전설로 떠나간다. <연합>
‘국민타자’로 불리는 이승엽(41·삼성 라이온즈)이 영원한 전설 속으로 떠난다.
23년간 그라운드를 누비며 한국 야구사에 숱한 이정표를 세운 이승엽은 3일(한국시간)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리는 넥센 히어로즈와 2017년 타이어뱅크 KBO리그 홈경기를 끝으로 현역생활을 마감한다. 이승엽은 KBO리그에서 15시즌 동안 뛰며 통산 홈런 1위(465개), 타점 1위(1,495개), 득점 1위(1,353개), 2루타 1위(464개) 등 켜켜이 금자탑을 쌓았다. 일본에서 8년 동안 활약한 기록까지 포함하면 이승엽이 프로 무대에서 터뜨린 통산 홈런은 무려 624개나 된다.
또 한국 포스트시즌에서 64경기를 뛰며 14개의 홈런을 쳤다. 태극마크를 달고 나선 국제대회에서는 48경기 11홈런을 기록했다.
그 모든 홈런의 순간들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중 이승엽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홈런 5개가 있다.
■2002년 한국시리즈 동점포- “나를 살린 홈런”
2002년 11월10일 대구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한국시리즈 6차전. 3 2패로 앞서던 삼성은 6-9로 뒤진 채 9회말을 맞이했다. 1사 1, 2루 타석에 들어선 이승엽은 한국시리즈에서 당시 20타수 2안타의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었으나 엄청난 부담감 속에도 LG의 클로저인 특급 좌완 이상훈을 상대로 극적인 동점 3점 홈런을 터뜨렸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대구구장 관중이 모두 일어섰고 홈런을 확신한 이승엽은 보기 드물게 양팔을 들고 포효하며 1루로 향했다. LG 쪽으로 기울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고, 삼성은 곧바로 마해영이 끝내기 홈런을 날려 구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승엽은 “정말 가슴에서 응어리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개인 타이틀을 몇 차례 따냈지만, 팀 우승은 한 번도 못 했던 시기였다. 그때 우승하지 못했다면 해외 진출 시기가 늦어졌을 수도 있었다”고 털어놓은 이승엽은 “그만큼 나에게는 우승이 절실했다. 나를 살린 홈런”이라고 2002년 화려했던 가을을 추억했다.
■2003년 아시아 한 시즌 최다홈런
2003년은 팀 순위보다 이승엽의 최종 홈런 수가 더 큰 관심을 받은 해였다. 이승엽 주위로 취재진이 몰렸고, ‘이승엽 홈런존’인 우익수 뒤 관중석에는 이승엽의 홈런공을 잡기 위한 잠자리채도 등장했다.
133경기를 치르는 정규시즌 마지막 날, 이승엽은 당시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에 도전했다. 대구 시민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와 만난 이승엽은 0-2로 뒤진 2회 말 선두 타자로 나서 이정민의 3구째 직구를 받아쳐 시즌 56호 아치를 그렸다. 오 사다하루(왕정치)의 55홈런을 넘어서는 신기록이었다.
이승엽은 “솔직히 너무 기대하셔서 부담이 컸다.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치지 않았으면 남은 타석을 버티기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떠올렸다. ‘승부사’ 이승엽은 첫 타석에 승부를 걸었고, 아시아 홈런왕으로 우뚝 섰다.
지난 2003년 당시 아시아 최고기록인 56호 홈런을 치고 축하를 받는 이승엽. <연합>
■2008년 베이징올림픽 역전포
이승엽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시울이 붉어지려고 한다”고 2008년 8월22일 중국 베이징 우커송구장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야구 준결승전을 떠올렸다.
올림픽 준결승전, 더구나 상대는 숙적 일본이었다. 이승엽은 2-2 동점이던 8회 말 1사 1루에서 일본 마무리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역전 결승 투런포를 쳐냈다. 그리고 그는 경기 후 인터뷰 도중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이승엽은 “예선리그에서 너무 부진했다. 일본과의 준결승에서도 삼진-병살타-삼진으로 세 타석을 보냈다”며 “정말 미칠 것 같은데 절박한 순간에 홈런이 나왔다. 그래서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포문이 열리자 거칠 것이 없었다. 이승엽은 다음날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1회초 결승 투런포를 쳐냈고, 한국은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6년 제1회 WBC 한일전 역전 결승포
“홈런을 치고 다이아몬드를 도는데 한국 관중 300∼400명만 함성을 지르고, 나머지 4만명은 정말 조용하더라. 정말 이상한 침묵이었다.”
이승엽의 한 방에 일본 야구의 심장 도쿄돔이 침묵에 빠졌던 순간이었다. 2006년 3월 5일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경기였다. 1-2로 뒤진 8회 초 1사 1루, 이승엽은 이시이 히로토시에게서 우월 역전 투런포를 쳤다. 일본 야구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승엽은 “그때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1회 WBC에서 이승엽의 이름은 전 세계 야구팬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는 5홈런으로 WBC 초대 홈런왕에 올랐다.
■KBO 450홈런…커리어 마지막 홈런 기록
이승엽이 달성한 ‘홈런 기록’은 수도 없이 많다. 세계 최연소 300홈런, 한일통산 600홈런, KBO리그 최다 홈런 경신(352개), KBO리그 최초 400홈런 등 기념할 장면이 많다.
하지만 이승엽은 의외로 ‘450홈런’을 기억하고 싶은 홈런으로 꼽았다.
이승엽은 지난 5월21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서 6-2로 앞서 7회초 송창식의 포크볼을 걷어오려 우중간 담을 넘어가는 대형 아치를 그렸다. KBO리그 450번째 홈런이었다.
이승엽은 “KBO리그 500홈런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450홈런이 내가 현역 시절에 만들 수 있는 마지막 홈런 기록”이라고 말했다. 전성기에 수없이 친 홈런만큼이나 은퇴를 결심하고 만든 홈런에 애착이 생긴다. 이승엽은 “전성기 때는 야구가 잘 풀려서 즐거웠다. 그런데 정말 행복하게 야구한 건, 올해 2017년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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