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의 자유찾아 1620년 청교도 미국으로 건너와 필그림 조상돼
▶ 찬송가 아버지 아이작 와츠 “나의 평생 소원은 신자의 기쁨되는 것”
솔즈베리 평원에 있는 선사시대 거석 기념물 스톤헨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돼있다.
오늘은 런던 동남쪽에 위치한 항구도시 사우샘프턴(Southampton)을 향하여 영국교회 유산을 만나는 여행을 떠난다. 영국은 종교유적 외에도 수많은 문화유산과 유적들이 존재하는 나라이기에 기독교유산을 찾아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다른 문화유산도 만날 수 있다.
런던에서 사우샘프턴으로 향하는 길목인 윌트셔 주 솔즈베리 평원에는 기원전 3천년경 선사시대의 거석기념물인 스톤헨지(Stonehenge, 고대 앵글로색슨어로 ‘공중에 매달린 바윗돌’이란 의미, 주소: Off A334 Road, Amesbury, Wilshire SP4 7DE)가 있다. 아직까지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스톤헨지는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으로 높이 8미터, 무게 50톤에 달하는 거석 여든여개가 세워져 있다.
영국 와츠공원 중앙에 있는 찬송가의 아버지 아이작와츠 동상
사우샘프턴은 영국 찬송가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이작 와츠(Isaac Watts, 1674-1748)의 고향이다. 그는 비국교도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비상한 학문적 재능을 보여 수준 높은 시를 많이 지었다.
하지만 단지 비국교도라는 이유로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로부터 입학을 거부당했다.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나의 소원은 시인으로서 명예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종이 되어 낮은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위하여 그들을 돕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와츠의 젊은 시절, 당시의 교회는 지루한 시편 찬송만을 사용했다.
그의 아버지는 와츠에게 회중들을 위해 좀 더 좋은 찬송가를 지어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 제안을 받아들여 매주 새로운 찬송가를 하나씩 작사하여 세상의 핍박을 받으며 사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힘을 북돋우어 주었다.
오늘날 새찬송가에는 ‘주 사랑하는 자 다 찬송할 때에’(249장), ‘나는 예수 따라가는’(3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149장) 등이 있다. 그를 기념하여 중앙역 근처에 만든 와츠 공원(Watts Park), 일명 웨스트 파크(West Park)라고도 불리우는 공원 중앙에 와츠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사우샘프턴 항구는 대조되는 두 운명의 선박이 출항한 곳이다. 두 배에 승선했던 승객들의 마음도 정반대였으리라 생각된다. 한 배의 승객들은 세계 최고의 호화유람선을 타며 많은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한 배의 승객들은 사회적 지위와 생활 터전을 포기하고 서글픈 심정으로 배에 오른 망명자들이었으니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를 생각해 본다.
한 배는 다름 아닌 1912년 4월 10일에 사우샘프턴 항구를 떠난 그 어떤 부연 설명도 필요 없는 타이타닉호이다. 다른 한 배는 청교도들이 망명하기 위해 1620년에 출항한 메이플라워호이다. 메이플라워호에 승선했던 망명자들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듣는 자들이 되었다. 그들은 왜 메이플라워호에 운명을 걸고 미국을 향하여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날 수 밖에 없었을까?
항구입구 잔디밭 바닥에 있는 타이타닉 출항증명과 추모자 명단
지난 주 기사를 통해 마틴루터의 종교개혁 바람은 섬나라 영국 땅에도 불어왔고 엘리자베스 여왕(Elizabeth I)과 제임스 1세왕(King JamesⅠ)이 영국국교회 지도자들과 손을 잡고 종교개혁을 부르짖는 분파들에 대해 핍박을 가하였음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핍박의 시기에 로마카톨릭교회의 의식으로부터 영국교회의 순결(purify)을 추구하며 16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 발생한 영국 개혁주의 프로테스탄트들이 청교도(淸敎徒, Puritan)이다.
청교도라는 호칭은 원형적이고 전통적인 복음주의를 지향했던 기독교인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청교도들은 영국 종교 개혁이 불완전한 개혁이었다고 평가하여, 영국 성공회의 정부 중심적인 성향과 로마 가톨릭교회의 잔재들을 철폐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도덕적인 순수성을 추구하여 낭비와 사치를 배격하고 근면 성실하였으며 인위적 권위와 전통을 인정하지 않고, 전통 복음주의인 성서주의적 입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국교회가 이들을 핍박하자 네덜란드와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영국국교회와의 분리를 주장했던 존 스마이드(John Smyth) 목사가 시무하던 게인즈보로(Gainsborough) 교회는 1607년 핍박을 피해 네덜란드로 집단 이주를 하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교회가 분열되었다. 이때 분열되어 나온 그룹을 존 로빈슨(John Robinson, 1576-1625)이 이끌었는데, 게인즈보로 서쪽 스크루비(Scrooby)에 있던 윌리엄 브루스트(Elder William Brewster, 1560년경 또는 1566-1643)의 저택에서 모임을 가졌기 때문에 ‘스크루비파’로 불리게 되었다.
이들이 영국국교회의 정치적, 종교적 부패함과 핍박을 피하여 1620년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가 필그림 조상(Pilgrim Fathers)이 되었던 것이다(게인즈보로 교회로부터 분열된 또 다른 한 그룹에서 영국 일반침례교회가 시작됨). 사우샘프턴 항구의 웨스턴 독(Western Dock)은 바로 1620년 청교도를 태운 메이플라워호가 출항한 곳이다. 비록 선체 결함으로 인해 플리머스에 정박했다 다시 출항했지만 사우샘프턴이 오리지널 출항지인 것이다.
웨스턴 독과 이어지는 이스턴 독(Eastern Dock)의 43번 부두는 초호화유람선 타이타닉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항했던 곳이다. 현 시대 이 두 배에 대한 평가를 사우샘프턴 항구 앞에 있는 기념비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타이타닉호의 출항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저 항구 앞 잔디 바닥에 배의 침몰로 생명을 잃은 1500명이 넘는 이들을 추모하여 만든 작은 명패로 남아 있다. 반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 항구를 떠난 메이플라워호의 출항은 항구 옆에 메이플라워 공원(Mayflower Park, 우편번호: SO14 2AQ)을 조성하여 기념하고 있다.
청교도를 태운 메이플라워호 출항을 기념한 메이플라워 공원
공원 길건너에는 메이플라워 기념비가 높이 서 있다. 이 기념비에는 메이플라워에 승선했던 이들의 이름이 견고한 돌에 새겨져 있다. 사우샘프턴 항구에 있는 타이타닉 추모명패와 메이플라워호 기념비가 우리가 지향하는 인생이 타이타닉인가 메이플라워인가를 묻는 것 같았다.
예수 믿어 부자가 되고 잘 살겠다라는 마음으로 신앙생활해서는 타이타닉의 운명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같은 사우샘프턴 항구에서 출항했지만 운명이 달랐던 두 선박을 통해 세상의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잘 알 수 있었다.<계속>
사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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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환 목사 (세계선교침례교회 담임, 게이트웨이신대원 초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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