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th to paradise begins in hell.
천국 가는 길은 지옥에서 시작된다.
사람 사는 세상엔 직업도 가지가지. 하릴없이 길을 헤매는 사람도 딱히 '집시'(gypsy)라 부르던가. 하긴 사람들을 가르는 기준도 천차만별. 성차별(性差別)로 시작해 각종 사회/문화적 지표로 사람을 구별하는 게 어제 오늘 일이랴. 왜 '직업'을 들먹이는가? 귀 순해지는 나이를 훌쩍 넘기도록 이런저런 '직업'으로 사회적 자아를 꾸려왔건만 진짜 딱 하나 멋들어지게 여기는 '직업' 하나는 여즉 꿈길에 아롱거릴 뿐. 방송 프로듀서, 저널리스트, 대학교수, 칼럼니스트(columnist), 영어서당 훈장(訓長), 등등 나름 어러 모자를 쓰며 살아왔건만, 정작 '탐나는' 직업(?)이 하나 있긴 한데 그게 뭘까요? ....... [좀 쑥스럽지만] 시인이랍니다.
What do you do? 머하세여? What do you do for a living? 머하고 사는 분이세여? 흔히 그렇게 "당신 누구요?" 하는 물음에 그저 간단히 "시인." I am a poet. 난 '포~우잇'입니다. 라고 답할 수만 있다면. Who is a poet? A poet is a person who writes poetry. 시인이 누구냐고요? 시 쓰는 사람이 시인(詩人)이죠.
The path to paradise begins in hell.
천국 가는 길은 지옥에서 시작된다.
바로 이렇게 쓸 수 있는 문장가를 시인이라고 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짧고 함축성 짙게, 그리고 왠지 중심을 관통하며 정곡(正鵠)을 찌르는 혜언(惠言)이 자연스러운 글쟁이를 시인이라 하지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렇게 자르는 격언이 나오고, "왜 사냐건 웃지요." 라는 절묘한 함축이 나오는 게 바로 시인의 입.
이현령비현령 진부한 요설(饒舌)은 금물! 수려한 싯말 가운데 진리가 초롱초롱 빚나는 '혼을 위한 시'[Poem for the Soul]를 쓰는 시인을 좋아합니다. 타고르[Tagore]의 시를 음미하고 루미[Rumi]의 애타는 찬가를 음송합니다. 릴케[Rilke]의 시를 흠모하며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감탄합니다. 그렇게 훌륭한 시인들을 접하며 진작 깨달은 것은? 아! ...... 시인은 아무나 하나? 그래서 일찌감치 접은 겁니다.
그리고, 여기에 진짜 시인 중의 시인, 바로 단테[Dante]가 계십니다. 천국 가는 길? 그건 바로 지옥에서 시작하는 거지. The path to paradise begins in hell. 헉! 먼말? 천국이면 천국, 지옥이면 지옥이지, 천국 가는 길이 지옥부터 시작? 그러길래 진짜 시인은 중심을 관통하며 정곡을 찌른다 이미 알려 드렸던가.
The path to paradise begins in hell.
천국 가는 길은 지옥에서 시작된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가방에 넣고 다니며 그저 한두줄 읽다 말았던 책. 오래전 서울 방문 길. 무릎 수술 회복 중이던 모친(母親)과 매일 아침 영성체(領聖體) 하던 중, 마침 성가대 반주를 마친 여동생이 초대하던 '단테의 신곡 독서모임.' 그리고 며칠전, 우연히 들른 책방에서 야무진 장정(裝幀)으로 결국 내 지갑을 열게 한 책 "The Divine Comedy."
여차저차 이번엔 단테의 신곡, 그 얼개를 파지(把持)하고 인상적인 시구(詩句)들을 두루 열람한 뒤, 인터넷을 뒤져 예일대학 강의도 듣고 저명한 한국 교수님들 강의도 경청하며 드디어 사나흘에 걸친 '단테와의 집중적인 만남'을 체험! 평소 늘 어색하게 다가오는 '연옥'[purgatory]이라는 '개념'이 시인 단테의 추상적 구상(具象) 덕분에 다소 기분이 풀리기도.
구체적인 개념 너머의 막연한 진리, 그건 오로지 시인만이 그려낼 수 있는 영역? 죽음이라는 추상(抽象), 그리고 그 후 '내세'(來世)를 순례하는 시인. 지옥/연옥/천국을 각각 33편의 칸토[canto]로 그리며 서시를 포함 도합 100편의 절로 꾸며진 대서사시 신곡(神曲, The Divine Comedy). 한 편의 코미디! '코미디'란 것. 다만 비극이 아닌 희극?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희극이지만, 어쨌든 내용은 '코미디'란 것. 사실 원 제목은 'Divine'이란 거룩한 말도 없는 그저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미디.'
그래서 시인의 서사시에 더욱 고상하게 감전됩니다. 그리고, 재차 확인합니다. 허~참! 시인은 아무나 하나? Shal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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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영어서원 백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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