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의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후보자로 나온 모 대학 교수의 발언을 인터넷으로 접하고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분은 “지구 나이는 신앙적인 나이와 과학적인 나이가 다르다”며, 본인은 창조론을 믿고 창조과학의 성과를 존중하는 신앙인으로서 신앙적 관점에서 지구의 나이를 6000년으로 본다는 답변을 했다.
후보자는 합리성과 과학적 객관성을 요구하는 공적 영역의 수장인 장관의 자질을 검증하는 자리에서 나름 자신의 신앙적 가치와 확신을 지키려는 신앙적 사명감을 보여주었다. 어찌 보면 정직과 용기를 지닌 신선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후보자의 능력은 물론 정책의 공공성(公共性)과 실현성을 확인하고, 올바른 역사관을 검증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신앙적 입장에 근거한 발언을 한다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다소 불편함이나 의구심을 줄 소지가 있다고 본다.
후보자의 답변 가운데 우려되는 점은 후보자가 지구의 나이를 신앙적 나이와 과학적 나이라는 두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본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러한 구분은 시(詩)를 비롯하여 문학의 세계에서는 가능할 듯싶다. 이런 구분은 또한 사람의 나이를 생물학적 나이와 함께 편의상 정신 나이나 건강 나이로 구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구의 나이가 어떻게 둘 일 수 있는가? 지구의 나이가 신앙인의 종교에 따라 다를 수 있는가?
물론 동서양을 보면 종교에 따라 우주관이나 시간관은 다를 수 있다. 창조론 또한 종교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어떤 종교는 우주의 시작이 억겁(億劫)이라고 하고, 어떤 종교는 세상이 시작과 끝이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종교관이 아닌 물리적 자연 현상은 다를 수 없다. 청문회 자리에서 후보자에게 뜬금없이 초등학생에게나 물을 법한 지구의 나이를 물어 본 것은, 아마도 후보자가 창조과학 모임에 관여하였던 경력에 대한 우려 때문인 듯하다.
‘창조과학’은 지구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과학적으로’ 보기보다는, 기독교와 유대교의 경전인 ‘창세기’의 창조론에 근거한 신앙의 관점으로 자연을 보려고 한다. 지구 나이가 6000년이라는 후보자의 발언은 이런 창조과학적 입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공인(公人)이 현대의 과학적 발견의 결과보다 자신의 신앙적 해석에 따라 지구 나이를 6000년으로 본다는 것은 상당히 우려스럽다. 치열한 국제사회 속에서 국가의 첨단 산업과 과학의 미래가 걸린 중소기업이나 벤처사업의 수장을 맡기기를 주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독교의 ‘창조론’에 뿌리를 두고 있는 창조과학은 일반 과학과 학문적 전제가 다르다. 과학이란 자연 현상 곧 사물에 대한 보편적인 원리나 법칙을 알아내고 해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지식체계를 말한다. 그러나 창조과학은 창세기에 나오는 인류의 나이와 노아의 홍수 등 성경에 근거하여 지구의 역사를 설명하려고 한다. 이 점에서 과학적 객관성이 염려된다. 왜냐하면 성경은 자연 현상을 기술한 과학책이 아니며, 더구나 성경에는 지구는 평평하며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천동설을 지닌 고대인의 우주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창조과학은 고대인의 우주관이 포함된 성경에 대한 문자주의적 해석을 학문의 전제로 삼기에, 약 6000년에서 1만 년 전 지구가 창조되었다는 ‘젊은 지구론’을 주장한다. 창조과학은 현대의 자연 과학적 발견을 통하여 광대한 우주와 생명의 신비로 가득 찬 지구의 자연을 해석하거나, 과학적 사고를 통하여 하느님과 성경에 대하여 그리고 인간 자신에 대하여 이해와 인식의 지평이 확장되는 면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간혹 세간으로부터 반지성주의 혹은 유사(類似)과학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종교의 가르침과 개인의 신앙은 소중하다. 또한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과학적 발견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 둘은 행복한 삶과 우주의 본질을 넘어 ‘영원한 궁극’을 찾아가기 위한 길이다. ‘신앙’과 인간의 지성을 사용하여 자연 속에서 우주의 원리를 찾아가려는 ‘과학’은 함께 가야 한다. 태양을 도는 지구의 공전이나 지구의 나이 같은 자연 현상은 과학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지구의 나이는 종교에 따라 다를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장구한 나이를 지닌 아름다운 지구별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의 정겨운 동인(同人)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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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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