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하늘을 올려다 본다.나무에 반쯤 가려진 북두칠성 위로 구름이 흰 머리를 풀어 헤치고 어두운 하늘을 재빠르게 덮는가싶더니 어느새 땅과 하늘 사이에 두터운 장막을 친다. 스산한 바람이 더불어 언덕 숲으로 몰아치며 수많은 나뭇잎새들을 흔들며 어둠속을 뒤채인다.
바깥 세상, 그 거리 위엔 피부색, 그까짓 살덩어리의 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피가 흐르고, 힘을 가진 자들은 그 힘의 속성에 지배당하여 인간 본연의 모습, 그 본질을 외면한다. 인간이 얼마나 편협할수 있는지 그 끝을 보는 듯하다. 두서없이 머리 속을 어지럽히는 생각들 사이를 오가다 문득 본질, 인간의 본질, 사람이 왜 사람일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사람은 스스로 통제할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의지로 자신을 변화시킬수 있다. 사람은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볼줄 안다. 모든 사람들이 최소의 라인으로만 구성된 몸을 가지고 있다면, 혹은 눈 하나만 있다거나 손만 있다거나 어깨만 있다거나, 모든 사람들이 각자 다른 몸의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어서 도저히 서로 비교할 수 없는 몸을 가졌다면 어떠할까. 외모에 대한 미의 기준을 둘 곳도 없고 인종 따위의 구분도 없어서 편견도 없고 고정관념도 없고 단지 행동, 말 따위의 표현만 있다면… .
걷는 사람에게선 걸음만이, 뛰는 사람에게선 뜀만이, 노래하는 사람에게선 노래만이, 춤추는 사람에게선 춤만이 보여지고 느껴져서 오로지 그 본질만을 주고 받을수 있다면… . 왜 신은 몸을 인간에게 부여한 것일까.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얼굴에 살색 크림을 바른다. 어디 아프냐는 인사를 받기 싫어서이기도 하지만 내 스스로에게도 좀더 밝은 얼굴이 보기 좋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부터 대부분의 시간들을 화장을 하지 않고 지냈었다.
관리를 하지않은 얼굴엔 기미, 주근깨가 유달리 많았었지만 개의치 않는 의연함(?)을 가지고 꿋꿋이 버티었다. 인공적인 덧씌움으로 남의 눈에 맞추는 아름다움이 가짜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나를 상품으로 만드는 어리석음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은 동행인들의 체면 때문에 어쩔수 없이 요란한 화장을 하고 나설 때도 있긴 했다.
요즘엔 소통에 대하여 생각한다. 화장도 하나의 소통 방법이라는걸 깨닫는다.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는 작품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을 즈음, 화장을 하지 않는 이유와 똑같은 이유로 일방적으로 소통의 문을 닫아버렸다. 난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늘자책하였다. 지난 날 설익은 작품들을 기억할 때마다 그만큼의 열정도, 재능도 없다고 늘 억눌러왔다.
고물장수에게 쇠조각, 그저 금속 나부랭이들로 팔려가거나 쓰레기로 버려지는 작품들 앞에서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을만큼 철저하게 내 작품들과 정을 떼고 작별하였다. 그것은 내 삶의 흐름 속에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긴 해도 덕분에 바라보는 자로서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끼리끼리의 잔치,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그저 계속 모르는 평행선으로 가는 길, 나를 알아주길 바라고 내 이름을 유명 예술가 명단에 올려놓길 원하면서 줄곧 달리기만 하던 길에서 내려서서 아주 오랜 시간을 서성거렸다.
내 이름을 버리는 연습을 하면서 작품에서 내가 온통 매진할 수 있는, 그래서 즐거울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으려 두리번거리며 오랜 세월을 걸었다. 아직도 서성이고 두리번거리며 나라는 캔버스에 덕지덕지 묻은 물감들을 매일 뜯어낸다.
하얀 원래의 캔버스가 언제 모습을 드러낼른지…이즈음 나는 소통을 그리워한다. 도깨비 화장이든 자연스런 화장이든 모든 얼굴 화장도 자기표현으로 하나의 소통일진대 내게서 저절로 나오는 그 무언가로 대중과 소통하고 싶다.
화랑이나 미술관에 별로 관심도 없을뿐더러 심지어 전시회조차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대중과의 소통을 생각한다. 비록 일방적일지라도 나는 그들에게 말을 걸고싶다. 나를 보여주고 그들의 관심, 무관심, 칭찬 또는 혹평, 모두를 담담히 바라보고 그 과정을 통하여 그들을 알아나가고 전문적이거나 특별한 부류가 아닌 그들의 이해를 구하기보다 내가 그들을 이해하게 되기를 바란다. 또한 작품을 만들고 보여주는 전 과정이 전혀 심각하지 않고 일상에 흔한 단순한 놀이처럼 그 과정으로 즐겁고싶다.
<
어수자 조각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