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xiety is the dizziness of freedom.
불안이란 자유의 현기증이다.
요즘 젊은이들, "불안(不安)”이란 병(病)을 꽤 혹독하게 앓고 있습니다. 옛날보다 더 그런걸까?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세월이 세월이니만치 당연지사? 사방에서 끙끙 앓는 청소년들의 “불안 장애”[anxiety disorder] 모습에 안쓰러워하는 어른들 또한 불안증에 함께 시달립니다.
알고보면, 불안은 지극히 당연한 인간의 질곡(桎梏)! 이 세상 그 누군들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우랴. 사람은 본래 불안할 수 밖에 없는 존재! 어차피 죽는 인생. 그리고, 만물의 영장이라 죽음을 자각하는 인간. 영리한 직관 때문에라도 불안감은 나날이 가중될 수 밖에?
물론, 명백한 사실인 죽음은 불을 보듯 뻔하지만, 그래도 오늘/내일 당장 벌어지는 일은 아닐 거라는 공연(空然)한 기대라도 있기에 그런대로 잊으며 사는 게 인생. 이른바 오락(娛樂)이라는 게 모두 ‘죽음!’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잊기 위한 얄팍한 수작들에 불과하지 않던가. 한마디로, 불안하니까 그저 잊고 보자는 것.
Anxiety is the dizziness of freedom.
불안이란 자유의 현기증이다.
그런데, 여기 불안을 꽤나 좋은 친구로 여기는 철학자(?) 한분이 계십니다. 아주 오래전 까까머리 중학생 때 처음 만났는데 여즉 해후(邂逅)의 감동이 늘 여전한 분.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책 제목에 마치 벼락맞는 기분으로 만났던 분.
요약컨대, 사람을 진짜 죽음으로 이끄는 병은 다름아닌 "실존적 절망." 이그지스텐~셜 디스페~어[existential despair]. 그럴듯한 표현 아닌가요? 아리송한 두 단어가 서로 엉켜 왠지 그럴듯한 뉘앙스를 자아냅니다. 실존적(實存的) 절망(絶望)이라! …… 커~!
안간힘을 써본들 종착역은 늘 그곳! 파국적 종말인 "절망"[despair]으로 가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바로 "불안"(不安)이라는 복병! 그렇다면, 인생 여정 도처에 즐비하게 깔린 불안의 그림자를 피해 갈 최선의 방법은? 제목부터 아찔한 "죽음에 이르는 병"[The Sickness Unto Death]의 저자에 의하면, 그저 끌어 안는 수 밖에!
Anxiety is the dizziness of freedom.
불안이란 자유의 현기증이다.
불안을 이기는, 아니 불안을 해소하는, 아니 불안과 더불어 사는 지혜란 곧 불안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 적을 알아야 적을 이기든 적과 화해하든 뭔가 해결책을 강구할 터.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Kierkegaard)는 불안의 정체를 '자유의 현기증'이라 풀고 있네요.
선택의 여지가 많기에, 이것저것 둘러 볼 게 많기에, 진짜 중요한 것 외에 한눈팔 게 많기에, 인생은 여러가지 불안 요소로 가득하다는 것. 괜히 분주하게 쳇바퀴를 돌며 오만가지 어지럼증을 호소하지만, 그래도 늘 자유가 주는 현기증을 은근히 즐기는 게 인생?
키르케고르는 사실 철학자를 넘는 기독교 사상가. 기독교 실존주의[Christian existentialism]를 천명하는 책이 바로 "The Sickness Unto Death"[죽음에 이르는 병]. 제목 자체 또한 "요한복음" 11장 4절에서 따왔더라는 것. 병든 나사로의 누이들이 예수님께 전갈함에,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This sickness is not unto death.]” 하신 말씀에서 나온 제목.
Anxiety is the dizziness of freedom.
불안이란 자유의 현기증이다.
지금 21세기 새천년 도입부를 사는 요즘 젊은이들의 필독서가 "The Sickness Unto Death"라 확신합니다. 불안은 불가피하며 결코 질병이 아니란 것. 불안이란, 괜스레 병치레하며 기이한 이름의 약물에 의지해서 나음을 구할 일이 아니요, 장차 "절망"으로까지 치닫게 될 이 괴물의 정체를 확실히 알고 친해짐으로서 화해할 상대임을 꿰뚫어 알아채야 할 터!
"Life is not a problem to be solved, but a reality to be experienced." 인생이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다. 다만 체험되어질 실체인 것이다. "Life can only be understood backwards; but it must be lived forwards." 인생이란 다만 돌이켜 이해될 뿐이다. 그럼에도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며 살 일이다. 이런 말씀을 전하는 키르케고르 지혜의 중심엔 바로 불안의 정체가 다만 자유의 현기증이라는 사실 또한 숨어 있군요.
Shal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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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영어서원 백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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