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전식당 전통복장을 입은 종업원과 함께(왼쪽). 성 바실리 성당.
러시아를 비롯하여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을 13박14일 동안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중에서 우리가 잘 아는 듯하지만 잘 모르는 나라, 러시아에 대해 느낀 점과 볼거리 등을 소개해 볼까한다
항구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이태리 베니스와 흡사
모든 건물이 유적 같아…“위대한 나라였구나” 탄성
니콜라이 궁전에서 일생 최고의 식사 잊을수 없어
처음 향한 곳은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Moscow)였다. 인구 1,150만이지만 서울보다 4배나 크다. 세계 인구 순위는 5위, 규모로는 4위라 한다.
서울에 한강이 흐르는 것처럼 모스크바 강이 도심을 관통한다. 크레믈린 궁을 비롯하여 붉은 광장, 바실리 성당 등이 모스크바 강 언덕 북쪽에 위치해 있다.
우리 일행은 미국에서 11시간 비행을 한 후 모스크바 동쪽의 데모데도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모스크바하면 무언가 모르게 음침하고, 사납고, 음식 먹을 것 없고, 치안부재라는 선입관이 있었다.
그렇지만 처음 대하는 낯선 곳 치고는 매우 깨끗하고 평화롭고 광활함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호텔에 들어가니 정문에서 부터 모든 출입자에 대한 보안검색을 철저히 한다. 이런 고급 호텔 투숙객들에게조차 보안검사를 하는 것을 보니 사회주의 국가라서 그런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미국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저녁 식사는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전통 러시아식으로 하였다. 식당 분위기며 음식이며 이게 러시아인가 할 정도로 훌륭했다.
-성 바실리 성당의 위용
저녁에 보는 크레믈린 궁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전시해 놓은 것과 같았으며, 곳곳의 건물의 웅대함은 프랑스 파리나 이태리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했다. 파리가 섬세하고 화려하다면 러시아는 웅장하며 화려했다.
낮에 보는 대통령 궁은 그냥 평범한 건물 같았다. 대통령 집무실이라고 보기엔 너무 경비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모든 관광객들은 대통령 궁을 대략 70m 거리에 두고 자유롭게 사진 찍고, 마음껏 즐기는 모습이다. 과거 한국의 청와대와 비교하면 상상이 가지 않았다.
가는 곳곳이 유적 같고 곳곳에 세워진 교회들이 마치 예루살렘 같다면 좀 과장된 표현일까? 그 옛날 카드에서나 보았던 성 바실리 성당은 붉은 광장에 있는데 러시아 정교회 성당으로 모스크바 대공화국의 황제였던 이반 4세가 카잔의 타타르 칸 국(kan 國)을 정벌한 일을 기념하여 봉헌한 성당이다. 1555년 건축을 시작하여 1560년 완공하였다 한다. 건물은 비잔틴 양식과 러시아 양식이 혼합되어 지어졌으며, 47m나 되는 8각형의 첨탑을 중앙으로 주변에 8개의 양파모양의 지붕들이 배열되어 있다. 예배당을 형성하는 4개의 다각탑과 그 사이 4개의 원형 탑이 솟아 있어 총 9개의 탑으로 되어 있다. 세계에서 온 수많은 여행객에게 그 아름다운 자태를 한껏 드러내 놓고 있는 모습은 마치 러시아 그 자체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 같았다.
모스크바 국립대학은 240m로 스탈린의 7자매로 불리는 웨딩 케이크 모양의 스탈린식 건물 중 제일 높다. 그 웅장함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압도당했다. 이 대학에서 배출된 노벨상 수상자만도 11명이나 된다고 한다.
-황금 성당, 까만 색칠한 이유는
모스크바의 고창한 모습에 완전히 러시아에 대한 인식을 새로 하면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일행은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레닌그라드)로 이동했다. 이 도시는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640km 떨어져 있으며, 제정 러시아 2세기 동안 러시아의 수도로서 러시아 역사와 공업, 문화도시 및 항구도시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곳도 모스크바 못지않다. 거리는 깨끗하고 사람들은 평화스럽게 보이고 젊은이들이 정답게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은 우리가 상상한 무서운 나라, 러시아가 절대 아니었다.
이삭 성당을 둘러보았다. 이삭이란 명칭은 성 이삭 가우스의 이름을 성당의 기념일인 5월30일이 성 이삭 가우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기 때문이라 했다. 성당의 규모는 높이 101.52m, 성당의 둥근 천장이 21.8m, 길이가 11.2m, 폭이 97.6m이다. 이 성당은 64~114톤에 이르는 72개의 거대한 원형의 돌들로 둘러싸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지붕의 황금빛이 공습 타깃이 되기 쉬어 까만 색칠을 해서 화를 면했다고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그 안은 웅장함의 극치였다.
➊ 여름궁전 전경 ➋ 왕비궁 ➌ 여름궁전 정원 ➍ 대통령 궁
-니콜라이 궁전에서의 식사
이 도시에는 네바 강이 흐르고 있었다. 분위기는 꼭 프랑스의 센 강과 비슷하였으나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을 하자면 이태리 베니스와도 매우 흡사한 이 도시는 그 나름대로 묘한 특색이 있었는데 딱히 꼬집어 말하기는 그렇다. 여하튼 모든 건물 하나하나가 다 유적이고 유물 같았다. 나뿐 아니라 모두들에게서 절로 “위대한 나라였구나” 하는 탄성이 나왔다.
이 도시에서 내 일생 최고의 식사를 했다. 이는 나만이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니콜라이 궁전(The Nikolaevsky Palace), 그야말로 궁전에서의 식사였다. 이 궁전의 주인인 니콜라이가 문화예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많은 돈을 기부하는 바람에 이 궁전까지 팔게 되었고 현재는 전통식당으로 사용되는 약간은 슬픈 사연이 있는 궁전이었다. 식사는 철저히 예약제이며 식단도 사전 맞춤형이다. 일하시는 분들도 전통 복장을 입었다.
러시아 피아니스트는 ‘그리운 금강산’을 연주해주었다. 우리의 친숙한 가곡을 감상하면서 준비해 준 샴페인을 마셨다. 우리 가이드는 성악 전공을 한 사람인데 유학생으로 왔다 17년째 이곳에서 머물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요청에 가곡도 한곡 불러주어 오감의 만족을 느끼며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이는 한스여행사만이 할 수 있는 손님에 대한 배려가 아닌가한다.
-피터 대제의 여름 궁전
여름궁전에 들어서는 순간 애국가가 들려온다. 다시 아리랑이 연주된다. 이곳에 한국인들이 많이 오니까 동네 사람들이 연주해주고 돈을 받는 진풍경이다.
여름궁전은 1709년 피터(표트르) 대제가 스웨덴과의 포르타바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만든 베르사이유 궁전을 의식해서 그보다 더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한다. 완공은 피터 대제가 사망한 후라서 그는 이 궁을 보지 못했다 한다.
300만평의 지형을 따라 위 공원과 아래공원으로 나뉘어 만들었으며 물의 낙차를 이용해 분수를 만들었는데 모두 144개의 분수와 7개의 소공원이 여러 궁전들에 배치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에 의해 거의 전소 되었으나 1958년 그 동네 사람들의 복원사업에 힘입어 지금처럼 복구되었다 한다.
여름궁전 정원은 러시아 정원예술의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다. 내 소감을 말하라면 한마디로 경악스러웠고 러시아 사람들이 정말 위대하게 느껴졌다. 18세기에 이런 공법으로 분수를 만들고 현재까지도 이렇게 건재하다니, 치수를 이리 잘했으면 정치 또한 잘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았다. 아름다운 여름궁전을 뒤로 한 채 우리 일행은 핀란드 행 국경열차를 타러 가면서 죽기 전에 꼭 한번 다시 와보고 싶은 나라 러시아를 마음 깊이 새기며 열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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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문병권(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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