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월드시리즈 매치업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LA 다저스의 대결로 결정되자 전문가들은 모두 오클랜드의 완승을 예상했다. 그해 정규시즌에서 무려 104승을 올렸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오클랜드는 약점이 전혀 없다는 평을 들었던 막강한 팀이었다. 타선엔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40홈런-40도루를 기록한 거포 호세 캔세코와 마크 맥과이어라는 핵탄두 미사일급 원투펀치가 버티고 있었고 마운드엔 그해 21승을 올린 에이스 데이브 스튜어트와 45세이브를 기록한 철벽 클로저 데니스 엑커슬러가 포진한, 마치 ‘야구 머신’같은 팀이었다.
그에 비해 내셔널리그 챔피언 다저스는 94승을 올렸지만 오럴 허샤이저라는 걸출한 에이스를 제외하면 투타에서 모두 오클랜드에 비해 한 수 아래라는 평을 들었다. 특히 타선 비교는 절대 열세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에이스 드와이트 구든과 거포 대릴 스트로베리를 앞세워 그해 100승을 올린 뉴욕 메츠를 NL 최고의 팀으로 꼽으며 메츠-오클랜드의 월드시리즈를 예상했다가 다저스가 올라오자 실망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다저스는 그해 NL MVP로 뽑힌 주포 커크 깁슨이 NLCS서 왼쪽 햄스트링과 오른쪽 무릎 부상을 당해 월드시리즈에서 뛰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고 에이스 허샤이저는 메츠와의 NLCS에서 1, 3, 4, 7차전에 나섰을 뿐 아니라 최종 7차전에서 5안타 완봉승을 던진 탓에 월드시리즈 1차전엔 나설 수도 없었다. 깁슨이 빠지고 허샤이저의 ‘혹사’ 논란이 불거진 상황에서 상당수 전문가들은 오클랜드의 싹쓸이 또는 4승1패 정도의 압승을 점쳤다.
하지만 스포츠의 묘미는 예측 불허성에 있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였다. 그해 10월15일 LA 다저스테디엄에서 벌어진 1차전에서 다저스는 아직도 월드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기적의 드라마를 썼다. 3-4로 끌려가던 9회말 엑커슬리를 상대로 일찌감치 투아웃 상황에 몰려 패배가 임박한 상황에서 마이크 데이비스가 볼넷을 골라 출루하자 다저스의 타미 라소다 감독은 양쪽 다리를 모두 다쳐 덕아웃에서 타석까지도 절뚝거리면서 나가야 했던 깁슨을 대타로 내보냈고 깁슨은 풀카운트 승부에서 엑커슬리의 전매특허 ‘백도어 슬라이더’를 잡아당겨 오른쪽 펜스를 넘어가는 기적의 역전 결승 투런포를 쏘아 올렸다. 당시 경기를 중계한 CBS 라디오의 캐스터 잭 벅은 이 순간 “방금 본 장면을 믿지 못하겠다”(I don‘t believe what I just saw!”)라는 유명한 멘트를 남겼다.
역대 최강팀 중 하나라던 오클랜드는 결국 이 극적인 KO펀치 한 방으로 입은 충격의 대미지에서 회복하지 못한 채 침몰했고 깁슨의 홈런은 1차전 뿐 아니라 사실상 월드시리즈 타이틀을 다저스에 안겨준 일격으로 기록됐다. 깁슨은 그 한 타석 외엔 전혀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다저스는 허샤이저가 2차전에서 3안타 완봉승, 5차전에서 4안타 2실점 완투승 등 눈부신 역투를 한 데 힘입어 시리즈를 4승1패로 끝내고 월드시리즈 정상에 등극했다.
그리고 29년이 지난 올해 다저스는 또 하나의 역사와 드라마를 향해 진군하고 있다. 다저스는 그 극적인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29년째 월드시리즈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4년 연속 지구 우승을 포함, 지난 28년 중 10회나 포스트시즌에 나갔지만 우승은커녕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아보지도 못했다. 28년간 월드시리즈 무대에 나가지 못한 것은 다저스 역사상 최장 기록이다.
하지만 올해 다저스는 마침내 지긋지긋한 가뭄을 끝낼 것이라는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현재 85승34패(승률 .714)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올리고 있는 다저스는 시즌 115승을 올리는 페이스로 이미 포스트시즌 진출을 예약했을 뿐 아니라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승 기록(116승)도 사정권에 두고 있다. 16일 경기에서 9회말 3점을 뽑아 극적인 끝내기 승리를 거둔 것이 올해 벌써 10번째일 만큼 질기고 강인한 승부욕을 보여주고 있어 더욱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물론 최고의 팀이라고 월드시리즈 타이틀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29년 전 최강팀 오클랜드가 월드시리즈 우승에 실패했던 사실을 기억하면 된다. 하지만 올해 다저스는 뭔가 특별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과연 다저스는 29년 만에 다시 ‘월드시리즈 매직’을 펼칠 수 있을까. 다저스 팬들은 지금 올해 다저스가 1988년 팀의 매직에 응답해주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기다리고 있다.
<
김동우 / 부국장·스포츠부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