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세가 미덕만은 아니다
김정섭 부국장·기획취재부장
오랜만에 길에서 만난 지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다가 뜻밖의 말을 들었다. 미국에서 직장생활과 자영업을 합쳐 30년 넘게 일을 했는데도 소셜시큐리티 베니핏(연금)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대신 극빈자들에게 제공되는 SSI, 즉 생활보조금을 받고 연명(?)한다며 한숨을 내 쉬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세금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민 초기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업주가 봉급을 전액 현금으로 주겠다는 말에 혹해 세금을 내지 않았고 한인타운에서 2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할 때는 아예 수입을 줄이거나 마이너스로 보고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다 보니 지인은 연금 혜택에 필요한 근로 크레딧 40점(10년) 조차 채우지 못했다. 소득이 거의 없다고 보고했으니 근로 크레딧을 채울 길이 없었던 것이다.
소셜시큐리티 근로 크레딧은 1년 최대 4크레딧까지 받을 수 있다. 1크레딧을 받으려면 2017년 기준으로 1,300달러 이상을 벌어 세금 보고를 했어야 하고 5,200달러 이상만 벌면 ‘소셜시큐리티&메디케어’에 필요한 1년 근로 크레딧 4점을 채울 수 있다. 지인이 30년 넘게 일을 했으면서도 40크레딧을 채우지 못했다는 말이 충격적이다.
예전에는 한인들 사이에서 CPA들의 능력이 세금을 얼마나 적게 내주느냐에 따라 판단되던 때도 있었다. 수십, 수백만 달러를 버는 사람들에게는 절세가 절실히 필요하겠지만 고만고만하게 벌어먹고 사는 소상인은 다르다.
자영업 한인 중에서 적지 않은 수가 지인처럼 소셜시큐리티 베니핏(연금)을 받지 못하거나 받는다고 해도 평균 이하의 소액을 받는다. 대부분 세금을 충분히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는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자영업자뿐만이 아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일부는 수표로, 나머지는 현금으로 받는 한인들이 적지 않다. 세금은 수표로 받는 것만 내고 나머지는 보고하지 않고 숨긴다. 고용주 입장에서도 종업원 상해보험료와 급여에 따른 페이롤 텍스를 줄일 수 있으니 싫지는 않겠지만 종업원에게는 결과적으로 큰 손해다.
소셜시큐리티 연금은 35년간 일해서 번 돈의 총 합계(인플레이션 비율 감안함)를 420개월(35년)로 나누어 낸 한달 평균 수입으로 계산된다. 예를 들어 35년간 월 평균 3,000달러를 벌었다면 2017년 기준으로 첫 885달러까지의 90%(=796.5달러)와 885달러에서 3,000달러까지의 수입(3,000달러-885달러=2,115달러)의 32%(=676.8달러)를 합친(796.5달러+676.8달러) 1,473.6달러를 받는다. 만일 월 평균 근로 소득이 5,336달러를 넘게 되면 넘는 금액의 15%를 더 받는다.
그런데 3,000달러는 과세 소득으로 받고 1,000달러는 현금으로 받아 세금 보고를 하지 않았다면 4,000달러로 수입을 보고했을 때보다 소셜시큐리티 연금은 320달러 줄어든다. 그렇다고 현금으로 받은 1,000달러를 은퇴를 대비해 모아두는 한인은 거의 없을 것이고 대부분 써버린다. 소셜시큐리티 연금은 평생 보장되는 연방정부의 생활비 보험이다. 매년 생활비 인상 요인(COLA라고 부름)에 따라 조금씩 연금을 올려도 준다. 참고로 2017년 기준으로 66세 만기 은퇴 연령자가 받는 월 최고 연금액은 2,689달러이고 70세까지 받지 않고 미루면 3,538달러다.
세금을 적게 내는 한인들의 말을 들어 보면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다.
현찰은 숨겨 두고 극빈자들에게 제공되는 SSI와 메디케이드(캘리포니아는 메디칼)를 받으면 더 좋다고 생각해서다. 극빈자로 분류되면 싼 가격에 노인아파트에도 들어가 살 수 있다.
하지만 소셜시큐리티 연금은 인플레이션 비율에 따라 매년 올라가지만 장롱 속에 잠자는 현금은 해마다 가치가 떨어질 것이고 오래 가지 않아 모두 고갈돼 버린다. 요즘은 한국으로 빼돌린 현금 구좌나 부동산도 다 보고하게 돼 있다. 극빈 보조금을 받게 되면 한국도 마음대로 못간다. 여행 경비 출처를 대야하고 그만큼 보조금이 줄어들거나 아예 보조금이 끊길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연구 보고서를 인용해 한국 여성의 기대 수명치는 2030년 90세로 세계에서 1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수명이 늘어나면 노년에 쓸 자금도 충분해야 한다. 소셜시큐리티 연금은 죽기 직전까지 나오는 평생 보장 수입이다. 그래서 절대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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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섭 부국장 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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