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방문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4월18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개정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6월 30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자유무역 재협상을 거론했다. 그리고 미 무역대표부는 7월 1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개정·수정(amendments and modifications)을 논의할 특별공동위원회 회의를 30일 이내에 워싱턴에서 갖자고 공식 요청했다.
한·미FTA 재협상의 명분은 두 가지로 요약되고 있다. 한·미 FTA 발효 이후 미국의 무역적자가 두 배로 늘었고, 무역적자로 인해 미국의 고용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지난 5년 동안 미국의 무역적자는 중국과 516억 달러, 독일과 152억 달러에 이어 세번째 한국과 139억 달러이다. 2016년 전 세계 GDP의 24.32%인 18.03조 달러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시장이다. 사업을 벌여 놓고 부실이 생겼으면 구조조정을 통해 해결해야 옳은 처방이지 남 탓을 하고 있다.
고용악화도 5대호 지역을 중심으로 번창했던 미국 철강산업은 2000년대 초반에는 세계 철강생산의 12%를 차지했으나 2015년 4.9%로 크게 축소되었다. 이는 세계경제의 저성장 기조로 철강 등 일부 산업의 세계적 공급과잉과 전반적인 수요 증가세 둔화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다. 무역적자가 원인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남이 잘 먹고 있는 떡에 욕심을 내고 있다.
이번 개정협상에 미국이 들고 나올 의제(議題)를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예상해 본다. 첫 번째로, 상품 교역에서의 농산물 시장 특히, 쌀 개방 압력이다. 총 상품 수출 22% 중 9.5 %를 차지하는 농업 수출을 통상무역의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지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시아 국가에서의 쌀은 무역 분쟁을 일으키는 민감한 이슈이다. 사실, 농산물 산업은 서비스 산업에 비해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산업이다. 농산물 시장의 확장은 교역 상대국의 경제의 자립성과 자주성을 줄이면서 무역 의존성을 유리한 방향으로 제도화 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해석된다. 미국의 접근 방식은 상당히 전략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먹거리 문제는 경제의 기초이면서 안보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서비스 교역에서의 시장개방 압력이다. 미국은 서비스 산업 강국이다. 서비스 산업은 미국 국내총생산의 78%를 점유하고 있다. 전 세계 서비스 수출은 2015년 기준 4.8조 달러 인데 미국은 7천 1백억 달러를 기록하여 14.7%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액은 약 4천억 달러로 전체 서비스 수출의 50%를 상회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2011년 한·미FTA 협정 체결 당시 한국은 이 분야에서 제한적으로 시장을 개방했는데도 미국은 한국 을 상대로 100억 달러 정도의 수출 흑자를 보고 있다. 특히 우려되는 부문은 의료·금융서비스 개방으로 한국의 ‘국민의료보험제도’와 ‘국민연금제도’가 타격을 입지 않을까 생각된다. 의료 민영화는 공공 보건 의료를 침식할 것이며, 금융시장 개방은 자본통제가 불가능하게 되어 회사의 주주권과 주식시장의 불안정성을 가속화 시킬 것이다. 서비스 분야는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해 한국으로서는 마땅히 할 수 있는 대책이 없어 보인다. 최소한 공공복지 분야만이라도 그나마 지켜낸다면 성공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미국은 이번 재협상을 통해 한국에 완전개방을 요구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이에 맞서는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산업의 피해를 최소화 하면서 무역 보복을 피하는 지혜와 지략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이다.
기술과 힘을 가진 플레이어는 어김없이 규칙을 들고 나온다. 그러나 현실은 원칙과 다르게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 보호 관세와 보조금 정책을 쓰는 나라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사용하지 않고 성공한 나라는 거의 없다. 미국은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높은 관세와 국내 산업에 광범위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외국 기업과 투자자 규제를 통해 전 세계 시장점유율을 확보해 놓고, 정작 다른 나라들에게는 무장 해제를 강요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상품은 관세 부과 또는 물량 제한을 통해 수·출입 규제를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는 관세를 물리적으로 부과할 수가 없으므로 시장접근 방식에 대한 제한을 통해 수·출입 규제로 이번 재협상에 임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미국이 정한 규칙과 다르다. 그러나 경제 주권을 지키고 다국적 기업에 회사주권을 강탈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 최악의 경우에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을 파기 하는 길이 경제 식민지로 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 ‘파리기후 협정’의 미국 탈퇴, 영국의 브렉시트는 모두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이다. 시장잠식과 괴멸이 예상되는데 강압적이고 불공정한 한·미FTA를 굳이 고수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낚시를 즐기다 그물로 싹쓸이 당할 염려가 있어 보인다. 낚시 미끼에 빠지는 우(愚) 를 범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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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정치 철학자,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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