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라이’ ‘붉은 서클’ ‘두 번째 호흡’ 등
▶ 100주년 회고전 오늘부터 이집션극장 상영
프랑스의 명장 장-피에르 멜빌.
과묵한 터프 가이들의 운명적이요 어두운 범죄세계에 집착하던 프랑스의 명장 장-피에르 멜빌(1917.10.20~1973.8.2)의 영화를 회고하는 시리즈 ‘장-피에르 멜빌 100주년’(Jean-Pierre Melville at 100)이 아메리칸 시네마텍 제공으로 4일부터 13일까지 이집션극장(6712 Hollywood Blvd.)에서 진행된다.
오직 배신만을 믿었던 불치의 로맨티스트인 멜빌은 범죄영화에 시적인 분위기를 가미한 사람으로 특히 미국의 갱스터 소설과 필름 느와르에 깊은 영향을 받아 멋진 갱스터 영화를 여러 편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범죄영화에는 미 필름 느와르에 잘 쓰이던 거울과 바와 무대의 스트리퍼들이 자주 나온다.
멜빌의 원래 성은 그룸박인데 이를 그가 2차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활약할 때 자기가 좋아하는 미국 작가 허만 멜빌의 성을 따 고쳤다.
‘사무라이’의 고독한 킬러 알랑 들롱.
멜빌의 갱스터들은 제스처 하나만으로도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고독자들로 그 대표적 인물이 ‘사무라이’(Le Samourai·1967년작, 5일 오후 7시30분과 13일 오후 5시 상영)에서 킬러로 나오는 알랑 들롱이다. 차갑고 낯선 아름다음을 지닌 들롱은 중절모에 트렌치코트를 입고 자기를 배신한 자들을 찾아 파리의 뒷골목을 헤집고 다닌다.
들롱은 멜빌이 애용한 배우로 이 영화 외에도 역시 범죄영화인 ‘붉은 서클’(Le Cercle Rouge·1970, 6일 오후 7시30분)과 ‘형사’(Un Flic·1971, 12일 오후 10시)에도 나왔다. ‘붉은 서클’은 최근에 가석방으로 출소한 들롱과 교도소에서 탈출한 지안 마리아 볼론테(이탈리아 배우로 ‘황야의 무법자’에 출연) 그리고 전직 형사 이브 몽탕이 함께 경찰과 갱스터들에 쫓기면서 파리의 보석상을 터는 긴장감 팽팽한 스릴러다.
‘형사’(미국명 ‘더러운 돈’)에서 들롱은 보기 드물게 우울한 형사로 나온다. 은행 강도와 마약 거래가 있는 멜로드라마로 들롱이 쫓는 치밀한 범죄자로는 미국 배우 리처드 크렌나가 나오고 두 남자의 연모의 대상으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카트린 드뇌브가 나온다.
‘도박사 밥’(Bob Le Flambeur·1956, 13일 오후 7시30분)의 밥도 들롱처럼 과묵하고 아름다운 고독자다. 이 영화는 존 휴스턴의 경마장 금고털이 영화 ‘아스팔트 정글’에서 영향을 받은 멜빌의 첫 필름 느와르다. 몽마르트의 카지노를 털려고 노리는 도박 중독자 밥(로제 드세스네)과 부정한 여인이 나오는 로맨틱한 범죄영화로 멜빌은 “풍속 희극”이라고 말했다.
멜빌의 스타일 멋진 극히 간소한 범죄영화에 자주 나온 또 다른 배우들로는 장-폴 벨몽도와 리노 벤투라가 있다. 벨몽도는 ‘밀고자’(Le Doulos·1962, 12일 오후 7시30분)에서 경찰과 자신의 오랜 친구인 범죄자(세르지 레지아니) 사이에서 고뇌하는 두 얼굴의 밀고자로 나온다. 그리고 ‘신부, 레옹 모랑’(Leon Morin, Priest·1961, 10일 오후 7시30분)에서는 2차대전 때 프랑스 알프스 마을의 젊은 신부로 나와 딸을 둔 무신론자인 여인(에마뉘엘 리바)과 교회 밖에서 철학적 대화를 나누는데 이 과정에서 여인이 서서히 신부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 믿음과 그에 대한 도전에 관한 사려 깊은 탐구로 촬영이 아름답다.
묵직한 모습의 과묵한 벤투라는 ‘두 번째의 호흡’(Le Deuxieme Souffle·1966, 4일 오후 7시30분)에서 중년의 범죄자로 나와 교도소를 탈출해 아직도 자신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새 갱을 조직한다. 구세대의 갱스터들과 신세대 갱스터들 간의 충돌이 삼빡하게 그려진 걸작이다. 역시 벤투라가 주연한 ‘그림자 군대’(Army of Shadows·1969, 11일 오후 7시30분)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초기 활동을 그린 어둡고 운명적인 스릴러로 멜빌 자신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시몬 시뇨레가 공연한다.
멜빌의 갱스터들은 목숨보다 우정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멜빌은 그들의 우정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것은 친구가 밤에 전화를 걸어와 ‘너 내 친구지. 총을 집어 들고 빨리 이리로 와’라고 말할 때 ‘오케이, 곧 갈께’라는 대답을 들려주는 것”이라고. 그 것은 순결한 감정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는 사나이들의 약속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죽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범죄자들을 사랑하던 멜빌의 데뷔작은 범죄와는 거리가 먼 시적 아름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찬 ‘바다의 침묵’(Le Silence de la Mer·1949, 5일 오후 10시)이다. 이 영화는 프랑스의 작가 베르코르가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에서 몰래 출판해 큰 인기를 모았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을 관할하는 음악가 출신의 독일군 장교와 그가 묵는 집의 나이 먹은 주인인 노신사 그리고 이 주인의 아름다운 질녀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거의 독일장교 혼자의 독백으로 이어진다. 마치 시를 읽는 듯한 독일장교의 독백과 점령군에 대한 저항으로 행사는 노신사와 그의 질녀의 침묵이 만나면서 이름답고 묘한 화음을 이룬다.
책과 영화에서 읽고 들은 이런 독백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프랑스하면 몽테뉴, 라신느, 몰리에르 그리고 위고 같은 문인들로 유명하지만 독일하면 음악가들이지요. 바하,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바그너..”
‘바다의 침묵’ 상영 전에 멜빌의 최초의 영화로 그가 해설하는 18분짜리 단편 ‘어릿광대의 삶의 24시간’(24 heures de la vie d‘un clown)이 상영된다. 파리 서커스 메드라노의 어릿광대 베비의 삶의 단편을 담았다. 시리즈의 일부 영화는 멜빌의 조카 레미 그룸박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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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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