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봉희의‘클래식 톡톡(Classic Talk Talk)’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는 정치 이념의 차이에 따라 급속하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체제로 개편되었다. 특히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미국과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소련 사이에 정치, 국방뿐만 아니라 예술, 문화, 과학 분야에서도 끊임없는 다툼이 이어졌다. 이때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직후 소련은 문화적 우위 또한 과시하고자 모스크바에서 1958년 제1회 차이코프스키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개최하였다. ‘차이코프스키’란 이름이 주는 러시아 음악과 최고라는 상징성을 가진 이 콩쿠르는 정치적 의도에서 시작된 콩쿠르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당연히 러시아 피아니스트의 우승을 예상하였다.
하지만 미국의 23세 청년 반 클라이번(Van Cliburn, 1934~2013)이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며 우승을 거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세계 음악계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당시 콩쿠르 심사위원들은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 1906~1975), 리히터(Sviatoslav Richter 1915~1997), 길레스(Emil Gilels, 1916~1985) 등 최고의 작곡가, 연주가들로 이루어졌다. 클라이번의 연주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콩쿠르를 마치고 소련에서 귀국한 클라이번은 당시 치열했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급부상한다. 온 국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화려하게 미국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러시아를 정복한 텍사스 청년(the Texan who conquered Russia)’이란 문구와 함께 그는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지의 표지 인물로 실리기도 하였다. 그의 연주회는 물론이고 그가 가는 곳마다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동행해 화제가 되었다.
또한 1959년 클라이번은 그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음반으로 그래미상(Grammy Award)을 수상하였고, 클래식 음반으로 100만장 이상 판매된 유래 없는 기록을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클라이번의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을 기념해 1962년에는 그의 고향인 텍사스 포트워스에서 그의 이름을 딴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창설됐다. 당시 그의 나이 28세였다. 하지만 대중의 끝없는 기대가 부담으로 이어진 탓인지 그는 깊은 슬럼프에 빠져 괴로워하였고, 1978년 아버지 사망 이후 사실상 무대에서 은퇴한다.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는 차이코프스키, 쇼팽, 퀸엘리자베스와 함께 명성을 떨치는 세계적 피아노 콩쿠르가 되었다.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는 4년마다 열리며 엄청난 상금, 장기적인 공연과 녹음후원 등으로 유명하다.
최고의 피아니스트들을 배출해냈으며 2009년 13회 콩쿠르 때는 한국인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2위에 올랐다.
지난달 텍사스에서 열린 제15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인 피아니스트들의 역량을 다시 한번 알렸다.
올해는 15개국의 30명의 30세 이하 피아니스트들이 예선에 통과하였다. 그 중 한국인 참가자가 5명이었다. 한국인 5명 중 3명이 준결선에 진출하였고, 선우예권이 결선까지 올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해 우승하는 쾌거를 얻었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우승 이후 세계 각지에서 많은 연주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데, 그의 버지니아 연주는 내년 3월에 잡혀있다.
선우예권은 한 명의 피아니스트에게만 주어지는 라흐마니노프 상을 받으며 커티스 음악원을 졸업하였고, 2009년 인터라켄 클래식 국제 음악 콩쿠르를 시작으로 ‘콩쿠르 부자’라고 불리며 많은 콩쿠르에서 입상하였다.
그가 결선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3 in D Minor, Op. 30)을 어떻게 소화해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또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반 클라이번 콩쿠르’를 만들어냈던 반 클라이번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Tchaikovsky Piano Concerto No. 1 in B flat Minor, Op. 23) 연주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서 1등일 것이다.
1958년 당시 실황 연주를 온라인에서 찾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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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희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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