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여성 정치인 중에 주목할 만한 인물이 있다. 하와이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 중 한 명인 메이지 히로노 여사(69)다. 그는 여러 가지 ‘최초’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아시아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연방 상원 입성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태어난 이민자 여성으로서, 그리고 하와이주 출신 여성으로서 최초의 연방 상원의원이기도 하다. 또 연방 상원에서 첫 번째이자 유일한 불교 신자라는 특이점도 있다.
민주당 소속으로 1985년 하와이주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주요 정치 경력을 쌓기 시작한 그는 부지사를 거쳐 연방 하원의원을 역임한 뒤 지난 2013년 65세의 나이에 보궐선거를 통해 연방 상원에 진출했다. 그 사이 하와이 주지사직에 도전했다가 낙선한 경험도 있지만, 미 정계에서 아시안 여성 정치인의 선구자이자 롤 모델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만한 정치 여정을 착실히 걸어왔다.
이런 배경을 가진 히로노 의원이 지난주 뉴스의 초점이 됐다. 두 달 전 갑자기 내려진 신장암 진단에 따라 예정돼 있던 대수술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상황에서 ‘트럼프케어’ 법안 저지를 위해 연방 상원 단상에 올라 연설을 한 것이다. 그는 “트럼프케어는 미국인에 재앙이 될 것”이라며 “보편적 건강혜택은 특권이 아닌 모든 미국인의 권리”라고 강조했다. 암 투병 의원의 이같은 호소는 주목을 받았고, 공화당 내 일부 의원들의 법안 반대 속에 트럼프케어 상원 표결은 일단 미뤄졌다.
이번 상원 트럼프케어 법안의 통과 전망이 흐려지자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은 “오바마케어를 선 폐기하고 추후 대체 법안을 만들어도 된다”고까지 언급하고 나섰다. 실제로 보다 많은 미국인들에게 혜택을 주도록 제도 개선을 하는 것보다는 전임 행정부 업적 지우기가 주목적이라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물론 오바마케어가 보험료 인상 문제 등 일부 개선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트럼프케어는 정작 필요한 핵심적 개선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저소득층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과 병력 환자들에게는 치명적인 ‘개악’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측은 트럼프케어의 목적, 아니 엄밀히 말하면 오바마케어 폐기의 가장 주된 목표가 크게 분류해 두 가지임을 주장하고 있다. 즉 의무가입 조항을 없애 미국인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건강보험을 선택할 ‘자유’를 주고, 비싼 보험료로부터 미국인들을 ‘해방’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시간대 법대의 니콜라스 배글리 교수는 얼마전 LA타임스 기고에서 트럼프 측의 이같은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배글리 교수는 ‘공화당 건강보험 법안이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해줄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트럼프케어가 가져다 줄 자유는 부유층들이 오바마케어로 늘어난 세금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자유 뿐”이라고 일갈했다. 즉 부자 감세를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트럼프 측은 오바마케어를 폐지하면 국민들이 비싼 보험료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이와 정반대가 될 것이라는 게 배글리 교수의 말이다. 일단 빈곤층과 장애인 및 연장자들이 사실상 무상 혜택을 받고 있는 메디케이드의 예산이 삭감돼 2026년까지 1,500만 명이 보험 혜택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연방 의회조사국의 분석이 나와 있다.
배글리 교수에 따르면 또 트럼프케어가 저소득층에게 보험 가입을 위한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기는 하지만, 트럼프케어 하에서 이들이 들 수 있는 건강보험은 치료를 받을 때 개인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디덕터블’이 매우 높은 프로그램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트럼프케어의 보조금은 보험료 지불에만 도움이 될 뿐, 개인당 약 6,000달러에 달하는 디덕터블은 커버해주지 않아 저소득층은 정작 아파도 디덕터블을 낼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될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트럼프케어 하의 저소득층 보험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일반 국민들의 여론도 마찬가지여서, 지난달 말 공표된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케어 지지율이 17%에 불과한 반면 반대 여론은 55%에 달했다. ‘진정한 건강보험의 혜택을 누릴 자유’는 트럼프케어에 있지 않음을 많은 사람들이 꿰뚫어보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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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하 사회부장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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