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오순절 성령강림과 케리그마의 선포로 출현한 초대교회 탄생
1절의 오순절이란 유월절 후 50일째 되는 날이다. 그 날에는 하나님과의 계약갱신을 다짐하며 곡식추수를 축하하는 날이다. 크리스천들에게는 새로운 계약 곧 성령강림의 계약의 날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지 50일째 되는 날이고, 승천하신 지 10일째 되는 날이다. 유월절과 오순절과 장막절 등 3대 명절에는 예루살렘 20마일 안에서 사는 유대인 남자들은 모두 함께 모이는 날이다. 그리고 지중해 주변에 사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몰려온다는 것이다. 보통 5만 명은 운집한다고 한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는 하나님의 때가 찬 것을 말한다. 고전15: 6에서 말하는 5백여 형제들이 일시에 만난 것이 이 사건이라고도 해석한다. 그러니까 마가 다락방에서 120문도가 모여 기도하다가 이날은 오백 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지금도 남아있는 마가 다락방에는 5백명을 수용할 만한 장소가 못 된다. 그 정확한 장소는 알 수 없다.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체험하고 성전 뜰이 있는 곳으로 몰려가 거기서 설교하였다는 설도 있다. 거리가 실상 그리 멀지 않다. 그리고 오순절 명절에 순례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앞에서 설교하면서 3천명으로까지 전도가 확산된 것이다.
오순절 성령의 강림은 제외된 사람이 없이 모두에게 임하였다. 각각의 사람들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1등 교인들도 없고, 2등 교인들도 없다는것이다. 모두에게 동등하게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이다.5-6절에 보면 세계 각 곳에 흩어진 다양한 디아스포라 경건하고 믿음이 좋은 유대인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방언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오순절 광경을 목격하기 위해 모인 국제적인 집회(international assembly)를 형성하였다.
7절에 무식한 갈릴리 제자들, 외국어 공부를 한적도 없는 사람들이 여러 나라언어로 설교하기 시작하였다는 것 때문에 다 놀랐던 것이다. 사람 들에게 알아들을 수 있는 대인 방언이 있다. 대부분 대신 방언 곧 기도하는 방언인데,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인 방언도 있다. 여기서는 대인 방언이 일어났던 것이다. 무식한 갈릴리 사람들이 자기 지역 방언으로 유창하게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를 설교하였던 것이다.
20세기 초 현대 아주사 거리를 중심으로 오순절운동의 지도자가 된 세이머 목사의 아내가 된 여인, Jennie Moore는 전혀 배운 바도 없는 불어, 스페인어. 라틴어, 희랍어, 희브리어, 힌두어 까지6개 국어를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피아노를 쳐본 적도 없는 그녀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였다. 2: 14절 이후에 나오는 설교는 베드로의 첫 설교이자 크리스천의 첫 설교였다. 베드로와 함께 다른 11사도 들도 같이 일어섰다는 것은 감동적인 설교장면이다.
12명의 사도가 공동으로 일어나 함께 설교에 동참하였던 것은 감동적인 사건이다. 15절에 제3시는 아침9시인데 무슨 술 취하는 일이 아침부터 있겠는가 고 반문하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설교에는 네 가지 형태가 있었다.
1. 선포(KERYGMA), 2. 교육(DIDKE), 3. 권면(PARAKLESIS), 4. 강해(HOMILIA) 등이다. 모든 설교에는 이 네 가지 요소들이 다 들어가 있어야 한다. 베드로의 설교에 그런 네 가지 요소가 모두 나타난다. 그런데 그 중에서 사도행전에는 십자가와 부활사건으로 인하여 예수가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는 케리그마가 두드러지게 많이 있다. 이 설교의 클라이막스는 2: 36절에 있다. 행 2: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초대교회는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나누어 갖는 공유의 사랑의 공동체였다.
일반 백성 들이 그들을 칭송하고 존경할 정도로 바람직한 공동체였다. 그것은 병고침과 귀신축출의 기사와 이적으로 능력 있는 교회였다. 예수님의 생전의 목회에도 많은 기사와 이적이 일어났는데, 그러한 현상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특별히 누가는 44-45절에 원시공산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 공산주의와 다르다. 생산 과정에서의 공산주의는 없었다.
다만 나눔과 분배에서 공유의 모습들이 나타났다. 공산주의식으로 강제로 나누는 것이 없었다. 자원해서 자발적으로 나눔이 일어났다. 기쁨의 찬양과 소유의 나눔과 공동식사의 나눔이 있었다. 그것은 말로 할 수 없는 기쁨의 넘쳐남 이었다. 그들의 사랑과 기쁨의 나눔은 구원받는 숫자를 날마다 더하게 하는 능력으로 나타났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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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 박사/전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장, 현 오이코스대학교 대학원장 및 이스트 베이 평생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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