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번째 방문국 이탈리아
▶ 93세 마지막 생존자 리볼디 할아버지 전쟁때 썼던 일기장을 건네 주시며
한국전쟁 참전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리볼디 씨가 당시에 찍었던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유엔 미가입국 이탈리아도 연합국 참전국?
망각은 신이 인간에 부여한 가장 큰 축복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인연이나 장면이 있다. 콜로세움과 스페인 광장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은 ‘외국’과 ‘여행’을 생각할 때마다 함께 연상되는 장면이다. 거의 17년 전이었던 2000년에 방문했던 로마를 잊을 수가 없다.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첫 해외 여행’이었기 때문이었고 인류의 역사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는 흥분과 감동이 컸다. 두 번째 이탈리아 방문은 첫 번째보다도 더 인상 깊은 여행일 것이다. 2박3일간의 짧은 여행이지만 이탈리아의 한국전 참전 마지막 생존자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이탈리아 군 역사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봐도 한국전쟁은 이탈리아의 해외전쟁 역사에 포함되지 않는 사이트가 많다. 이탈리아가 적십자를 통한 의료 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군부대가 아닌 50명의 장교와 7명의 의사, 6명의 간호사 그리고 한 명의 목사를 한국에 보냈다. 이탈리아 적십자사에 의해 편성된 병원 부대라는 의미로 ‘이탈리아 제 68적십자 병원’을 새긴 수송선은1951년 10월 16일 이탈리아를 출항하여 1개월간의 항해 끝에 부산에 도착했다. 이탈리아 병원은 한국전쟁의 총성이 멈춘 1953년 7월 27일까지 1천604명의 입원 환자를 돌봤고, 7만 4천 명의 통원 환자를 진료했으며 3천 300여건의 수술을 했다.
이탈리아는 한국전쟁 이후인 1955년에 유엔에 가입했기 때문에 유엔 연합군에 참여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한국전 참전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첫 날, 적십자 본부를 방문했다. 주 이탈리아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실비아 젠틸리 씨와 워싱턴DC의 절친인 수잔 갈리 (Suzanne Galli)의 딸 타티, 그리고 나까지 세 명의 여성 방문객들이 적십자 본부 건물의 문을 열며 서로를 보며 웃었다. 3명의 옷 색깔이 이탈리아 국기 색깔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하얀색, 타니는 초록색, 실비아 할머니는 빨간색 옷을 입었다.
워싱턴 지역의 유명한 성형 의사인 수잔은 내가 이탈리아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대학생 딸을 급히 보냈다. 보스턴의 스미스 대학을 다니고 있는 타티는 새벽에 보스턴에서 로마로 오는 비행기를 타고 왔다. 이탈리아어 통역을 위해 잠도 못자고 그 먼 길을 달려와 준것인데, 20살도 안된 어린 여대생이 엄마 친구를 돕기 위해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나라를 도운) 참전용사를 만나러 간다니까 자발적으로 와줬다는 것이 대견하고 고마웠다.
이탈리아 적십자 본부건물은 1951년 10월 ‘이탈리아 제 68적십자 병원’의 자원봉사 의료진들이 떠날 때 기념식을 했던 장소이다. 본부 건물 중앙홀에는 한국대사관이 감사의 뜻으로 전달한 한국전쟁에 참전 기념문 패가 걸려 있었고 아래에 화환이 놓여져 있었다. 1989년 한국대사가 증정한 기념문은 “유엔의 깃발아래 1951년 10월 16일부터 1955년 1월 10일까지 한국전에 참가하여 숭고한 박애정신으로 헌신적인 구호활동을 한 이태리공화국 제68 야전병원단원들의 높은 뜻을 기리며 감사하는 마음을 모아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으로 이 기념문을 드립니다.”라고 씌여 있다.
이탈리아 야전병원 단원들은 전쟁이 멈추고 2년 후인 1955년까지 한국에서 의료지원을 계속했는데 다행히도 한 사람도 전사하거나 부상 당하지 않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첫 날은 적십자 본부 건물 방문으로 끝내고 쉬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부터 아주 먼 길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참전군 중 유일한 생존자인 리볼디 할아버지를 만나다
이탈리아에 단 한분 계신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만나는 과정은 로마에서 할아버지께서 사시는 제노아까지의 거리만큼이나 돌아야 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이탈리아참전군협회 회장을 통해서 인터뷰를 알아보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참전회장과의 연락이 끊기면서 무산되는듯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한국대사관 무관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살아있는 이탈리아 한국전의 역사’이신 리볼디 할아버지와 연결될 수 있었다. 참전군협회 회장님과의 연락이 끊긴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됐는데 나와 이메일을 나누시던 무렵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타티와 나는 한 시간 차로 이동해 공항에 도착한 후 한 시간 넘게 기다려서 비행기를 탔고, 다시 한 시간 비행 후에 제노아 공항에 내렸다. 생존자 할아버지께서 살고 계신 사보나라는 곳까지는 택시로 한 시간을 더 이동해야했다. 사보나는 이탈리아 북서쪽에 있는 작은 해변가 도시이다.
새벽에 출발했지만 오후 한 시쯤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리볼디 할아버지는 한국나이로 94세셨는데 심장수술을 3번이나 하셨지만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지오바니 리볼디 할아버지는 한국에 1951년부터 1953년까지 계셨고 방사선 의사로 의료 봉사를 하셨다.
할아버지께 왜 멀고 먼 나라인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에 참전할 생각을 하셨냐고 여쭤봤더니 할아버지는 한국이 공산당과 싸우는 것을 돕고 싶었고 당시 27살 청춘이었던 만큼 새로운 모험을 찾아 가고 싶었다고 답하셨다.
1953년 한국을 떠난 후 한번도 다시 가본 적은 없지만 한국의 발전상을 잘 알고 있으시다면서 자랑스럽다고 말씀하셨다. 한국과 한국사람 그리고 나와 같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면서 한국을 떠나서 살고 있는 모든 한국계 사람들이 오늘날 자유와 풍요를 즐길 수 있는 것이 할아버지의 희생과 봉사 덕분이라고 인사를 드렸다.
할아버지는 역사를 좋아하셔서 한국에서 찍은 사진과 자료를 거의 당시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계셨다. 여러 사진 중 할아버지께서 동료들과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것이 보여서 “할아버지 하모니카를 불어주시면 안될까요?”라고 몇 번이나 부탁드렸더니 연주 안해본지 오래됐다고 고개를 흔드시다가 결국 멋진 하모니카 연주를 해주셨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의 군복과 모자도 잘 보관하고 계셨다. 할아버지와 나, 타티가 한국전쟁 당시의 모자를 쓰고 우스광스런 포즈를 하며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할아버지는 유머감각도 많으셨는데, 나한테 결혼했냐고 물어보시길래 안했다고 답하니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하라”시면서 “미국남자는 하루 종일 소파에 앉아서 맥주만 마시는데 이탈리아 남자는 오히려 요리를 대신해줄 것”이라는 농담을 하셔서 우리 셋 모두 크게 웃었다.
할아버지와 헤어지기 직전, 할아버지는 전쟁 당시 손수 쓰셨던 일기장 원본을 나에게 주시며 “전쟁 관련 자료로 활용되길 빈다”고 말씀하셨다. 복사본을 가시고 계신다고는 했지만 너무나 감사해서 할아버지께 일기장이 이탈리아 어로 씌었지만 영어와 한글로 번역해서 전시하겠다고 약속했다.
타티와 나는 저녁 5시쯤 아침이면서 점심이면서 저녁이기도 이날의 유일한 식사를 하고 다시 저녁 7시 10분 비행기를 타고 로마로 이동했다. 로마에 도착하니 밤 10시쯤 되었는데 둘 다 지쳤지만 지오바니 할아버지를 만난 감동과 느낀 점을 이야기 나눴다 타티는 ‘살아있는 역사’와의 만남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타티 나이 때 전세계 한국전쟁 참전군인을 만나고 싶다는 꿈을 꿨었다. 타티의 나이 때 이탈리아를 왔다면 더 많은 생존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을거다. 한편으로는 타티가 내 나이가 될 무렵을 상상했다. 한반도는 어떤 모습일지, 한국전 참전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얼마나 살아 계실지를 생각하며 한 분 한 분 생존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이탈리아 여행을 함께해주며 통역으로 고생한 타티의 미래를 위해서도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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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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