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수요일로 서머스쿨과 성인고등학교를 제외한 2017년도 공립학교 졸업식 참석을 모두 마쳤다.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 광역 교육위원인 나는 항상 많은 졸업식에 참석한다. 시간과 체력에 조금 부담이 되어 올해는 예년에 비해 줄였지만 그래도 특수교육 센터를 포함해 20군데 정도 참석했다.
페어팩스 카운티의 많은 고등학교들은 카운티 내에 위치한 조지메이슨 대학교 체육관을 빌려서 졸업식을 치룬다. 몇몇 학교는 워싱턴 D.C.의 컨스티튜션 홀에서 하기도 하는데 분위기는 좋으나 교통이 좀 불편하다. 또한 일부 학교는 자기 학교 내의 체육관에서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졸업시즌 중 조지 메이슨 대학 체육관이나 컨스티튜선 홀 사용 횟수에 제한이 있고 대관료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학교 내의 체육관을 사용할 경우 하객수를 제한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학교 체육관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내가 그 동안 교육위원으로서 참석한 졸업식이 대충 300회 정도 되지 않나 싶다. 덕분에 졸업연설도 많이 들었다. 초청연사들 가운데에는 정치인, 사업가, 연방대법원 판사, 그리고 우주비행사도 있었다. 또한 해당 학교의 선생님, 부모님, 선배들 가운데에서 선정해 모시기도 한다. 올해의 졸업 연설자 가운데에도 사업가, 신문 칼럼니스트, TV 리포터, 대학 연구 학자, 전임 교육감, 그리고 배우 등이 포함 되었다. 맹인도 있었고 16형제의 14번째라는 사람도 있었다. 16형제 중 쌍둥이가 5쌍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 말에는 모두의 입이 벌어졌다.
졸업연설 대부분이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면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은 비슷한 내용이 많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올해의 연설 중 특히 기억에 남는게 있다. 한 여자 배우가 고등학교 때의 경험을 소회한 내용이었다.
뮤지컬에 관심이 높고 소질이 있었던 그는 9-10학년 때와 달리 11학년 때 부터는 학교 뮤지컬에서 주역을 맡았다. 그래서 12학년에 올라와서도 주역은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배역은 오디션을 통해서만 정해졌다. 그래서 오디션에 참여했는데 내용이 형편 없었다. 오디션 과정 중에 본인도 확실히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두 주역 자리가 다른 학생들에게 돌아갔고 자신은 조역을 맡게 되었다. 치욕적이었다. 그러나 오디션 신청시 어떤 역이라도 감수하겠다는 각서를 썼기에 비겁하게 빠질 수도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공연 첫 날 공연장으로 오는 길에 차 사고가 났다. 본인의 차가 도로를 벗어 났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으나 경찰차를 타고 공연장에 도착했다. 조역을 맡은 것 만으로도 자존심이 크게 상해 있는데 차 사고까지 나서 정말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의기소침해서 한참 조용히 앉아 있는 자기에게 두 학년 아래 후배 한 명이 다가왔단다. 그리고 그 후배는 아주 조심스러운 말투로 혹시 연기할 기분이 아니면 자신이 대신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서슴없이 얘기하라고 했다. 자신에게는 창피하게 느껴졌던 그 작은 배역마저 그 후배에게는 바라보기도 어려운 꿈 같은 배역이었다는 것이었다.
그 배우는 졸업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살다 보면 항상 본인이 원하는대로 성공하고 만족스러운 결과만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럴 때 낙심하지 말라. 자신에게 실패로 보이는 결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성공일 수 있다. 대신 실패라고 생각했던 그 경험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 자신이 12학년 때 당연하게 여겼던 주역 캐스팅에 실패한 것은 잠시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고 노력에 소홀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교훈이었다.
이 날 그 연설을 들으면서 그 내용은 단지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 뿐 아니라 나처럼 그들에 비해 훨씬 인생을 오래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귀한 말이었다. 지금까지 들어보았던 많은 졸업 연설들 내용 중 오래 동안 기억될 수 있는 가르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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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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