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 문우가 지난 6월 10일 안개의 천국 수필집을 출간했다. 따스한 글은 봄바람에 젖은 나뭇가지에 싱그러운 세순과도 같고 인정은 강물처럼 흘러 누구나 발을 담그고 편히 쉴 수 있는 편안한 글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생에 대한 긍정이 숨쉬고 있는 글에서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는 이성적인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21세기 공해의 해결책에 대한 고민을 긍정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18세기 19세기에 걸쳐 대륙의 이성론자들은 인간의 이성 속에 신이 있다고 보았으나 인간의 이성 속에는 악마가 들어있습을 광란의 20세기에 혁명과 전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작가가 주장하는 자연과의 호생지덕(好生之德)은 우리들 시대에 절대선이 되었다. 자연을 역학적인 전체로 보았을 때 자연은 인간에 의해 조작하는 존재가 아니고 자연무위(自然無爲)라는 인간이 변형해서는 안될 존재라고 작가는 주장하고 있다. 자연의 역학적 전체가 인간에 의해 조작되는 시대에 인류적 재앙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그것은 작가가 주장하는 호생지덕이다. 두가지 답이 없는 한가지 답인 공해 추방이란 절대선을 이 땅에 세워야 한다 고 작가는 역설하고 있다.
요 근자에 여래사의 설조 스님과 화엄의 세계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던 끝에 문학은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는 행위다,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헷세의 작품 <데미안> 중에 새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듯이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새로운 세계를 창조 할 수 있다 주장하니 스님께서 그것은 줄탁동시 이다 이는 헷세가 주장하는 새로운 세계의 창조는 옛것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고 옛것(어미닭)이 새것을 만든다는 것이 아닌가? 병아리 부화시 알을 스스로 깨고(茁) 나오려는 순간 어미닭이 밖에서 쪼아(啄)준다는 것이다.
작가는 줄탁동시 칼럼에서 애뜻한 자식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자신이 미국의 부모에 비해 돈도 없고 빽도 없으니 어미 닭처럼 쪼아줄 수도 없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아들은 당당하게 수련의를 마치고 전문의가 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 근저에는 미국 시민의 정직하고 반듯한 가치관을 확인하고 있다. 스탠포드 의대 수련의 과정에 대한 줄탁동시의 조화에 충실하지 못한 자신의 감정을 적고 있다. 작가의 의심없는 세계관은 긍정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그는 세상을 보는 눈이 정성스럽고 모든이를 포용하고 이해하는 삶속에 따듯함이 있는 것이다. 긍정의 세계에는 친구도 있고 부모와 자식 간의 인정이 흐르는 세월이 있다.
필자와 같이 세상만사를 모두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하는 세계의 생을 발견하는 것이다. 모든 사물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해답을 찾는 방식은 김작가와 정반대의 방식이다. 필자는 히로시마 이후 철학 역사 시학등에 대한 기존 학설을 모두 부정해보자 그리고 (새가 알을 스스로 깨고 나오듯이 기존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자) 그러니 필자의 글은 기존질서에 대한 반정립이다. 히로시마 원폭이후 인류 종말을 예견하니 모든 것을 부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중세를 암흑 시대라 했으나 중세는 로마 캐톨릭 주교단이 서구 복음화를 통해 미개한 서구의 개명을 준비한 시대 였다면 20세기는 광란의 시대였다. 수천만이 전쟁에 죽고 수천만이 혁명으로 처형당하고 수천만이 굶어 죽는 광란의 시대였던 것이다. 이에 대한 인간 이성을 의심하며 인류의 종말론에 가슴에 폭풍을 안고 나는 글을 쓰는 것이다. 그래도 같은 것이 있다면 호생지덕에 대한 견해다. 필자가 주장하는 새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다와 줄탁동시(茁啄同時)가 다를 수 없듯이 자연무위(自然無爲)도 자연의 생리로 해석하니 지구의 생리를 파괴하는 어떤 행위도 근절되어야 한다는 절대선의 주장은 같은 것이다.
그리고 미국시민으로 한국문학을 하며 1941년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주장한 평화4원칙을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인정하는 작가의 글에서 필자가 주장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공해를 추방하는 부자유와 공해적 생산성을 높이는 자유는 하나가 되는 절대선의 세계를 미국 시민은 그려내야 한다. 핵무기를 가장 많이 가진 미국인으로 과생산 과소비로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미국 사회적 모순에 지구의 생리는 시름하고 있다는 김희봉 작가의 견해에 반해 <인류는 일하기를 싫어하는 천국 낙원의 꿈을 가진 존재다> 21세기 인류의 멸망을 막기위해 주 20시간만 일하고 인구를 ¼로 줄이고 핵무기를 폐기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난 새 역사창조 하자는 것이다.
“물잔에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네와 물잔에 물이 반이나 있네”어느 칼럼의 주장도 정답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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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광/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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