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사가 그렇듯, 한 인생이 엮어가는 삶은 어쩌면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김희봉의 글에는 그의 살아온 인생이 한 폭의 그림으로, 그리고 잔잔한 서사시로 차분하게 담겨있다.
이목구비가 뚜렸한 미인이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던 희봉 어머니는 함경남도 원산의 명문 루씨 여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 손에 끌려 서울의 이화여자 대학에 입학했으나 그 후로 얼마 안있어38선이 그어지고 집과 연락이 끊겼다. 희봉 어머니는 오가지도 못 할 고아 아닌 고아가 되었으나 다행히도 동경제국대학 법학과 출신으로 당시 고등법원 판사이자 이화여자 대학교 교수이던 전도 유망한 한 청년의 청혼을 받아 결혼하였다.
그런데 신혼의 행복도 잠시, 결혼 1년 만에 6.25가 터진 것이다. 고등법원 판사 희봉 아버지가 1차로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이 되었을 때 희봉 어머니는 임신 8개월. 만삭의 몸으로 남편을 찾아 헤메던 희봉 어머니에게 어느날 밤 형무소를 탈출한 어떤 사람이 쪽지 하나를 건냈다. 희봉 아버지의 글씨였다. “내가 꼭 돌아올테니 걱정 마시오. 아들을 낳으면 바랄 希, 봉우리 峰자를 써서 희봉이라 하시오. 부디 희망을 잃지 마시오.” 그러나 북으로 끌려간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희봉은 아버지가 납북된지 두 달만에 세상에 나온 유복자였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유품으로는 사진이 두 장. 하나는 동경제국대학생으로 사각모에 망토를 걸친 모습이고, 또 하나는 소매를 걷어 올린 흰 와이셔츠 차림의 뒷 모습이다. 학생들 앞에서 바이올린을 켜고 계셨던 거다. 상상이 간다. 나이 20을 갓 넘긴 새댁이 일가 친척 하나 없는 이남에서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이다. 희봉 어머니는 힘이 들고 어려울 때 마다 이 사진을 꺼내 보며 눈물을 훔쳤단다.
어머니는 항상 김희봉에게 “너는 꼭 네 외삼촌 닮았다”고 하셨다. 착하고 공부 잘하고 특히 목소리가 고와서 노래를 잘 불렀다는 외삼촌을 닮았다는 것이다. 어머니 말씀으로 소설가 이호철은 외삼촌과 원산 고등보통학교 동기동창이라고 했다. 어느 기회에 희봉은 이호철에게 외삼촌 아무게의 소식을 물으니 이호철은 깜짝 놀라서 “나와 같은 반 짝꿍이었어”하며 반가워하며 너희 외삼촌은6.25 때 낙동강 전투에서 행방불명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열 몇살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했던 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전세가 다급해 지자 인민군 의용병으로 징집되어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었다. 전투가 막바지에 접어들어 내일 다시 총공격을 한다는 전날 밤, 그날은 며칠 계속 내리던 비가 멈추고 구름이 걷혀서 달빛만 교교한 밤이었다. 그 저녁 진흙탕 구덩이 참호 속에서 희봉 외삼촌은 청아한 목소리로 가곡 ‘가고파’를 불렀단다. “.. 그 푸른 물결 눈에 보이네, 가고파라 가고파..” 무섭게 다구치기만 군관 지휘관도, 참호속의 인민군 동무들도 모두 고개를 숙이고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 대규모 UN군 폭격있었는데 “자네 외삼촌은 그 때 죽었지..아마..” 이호철은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아서 국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자유민이 되었다.
납북인사 1호로 끌려간 남편을 기다리며 고생하던 희봉 어머니는 “뼈를 깎는 고민 끝에” 재혼을 하고 3남매를 두었다. “딴 형들은 폭군처럼 동생에게 대했는데 우리 형은 항상 내게 양보하고 내가 혹시 대들어도 져주고는 했지요. 그 땐 내가 어려서 왜 그런지 몰랐어요” 나중에 커서 철이 들고야 형의 상처를 이해하며 동생은 많이 울었단다. 그 동생은 얼마전에 암으로 세상을 떴는데 그때 김희봉은 얼마나 슬피 울었는지. 내가 아는 희봉은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어머니의 남편이 나의 아버지가 아니다’ 이것을 아는 어린 희봉은 참으로 처절한 심정이었지만 다만 열심히 공부함으로 이것을 좋은 쪽으로 승화시켰다. 경복 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공대 화공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ROTC 장교(10기)로 임관후 통역장교로 영어 교관을 했다. 그리고 당시 미국으로 오는 유학생들은 꼭 봐야 했던 TOEFL시험에서 아시아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는데 아마 그 기록은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깨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희봉은 목소리가 고르고 고아서 노래도 잘 한다. 어머니 말씀대로 꼭 외삼촌을 닮았나보다.
16년 전에 출판한 김희봉의 수필집 ‘불타는 숲’ 에 이어 이번 두 번째 출판된 ‘안개의 천국’에 실린 수필 ‘아버지의 지팡이’는 어머니가 재혼한 남편 그러니까 의부(義父)에 대해 쓴 글이다. 나이 90까지 지팡이를 짚지 않으셨던 굳건한 의지의 아버지는 생부의 동경제국대학 후배였다. 대학 선배의 미망인, 선배의 유복자를 거두어 주신 것을 감사하는 마음이 그 글에서 전해진다.
김희봉이 사랑하는 것은 “환경과 글과 사람”이란다. 본보에 격주로 쓰는 칼럼 ‘환경과 삶’은 샌프란시스코 수질관리관으로 평생을 근무하면서 샌프란시스코의 수려한 풍광과 청정한 항구를 바라보며, 지구 온난화로 생태계를 염려하며, 그리고 친구와 이웃들의 우정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쓴 글들이다. 그 따뜻한 마음과 사랑이 그대로 묻어있는 글들이다.
글을 읽으면 쓴 사람의 세계가 보이고 그 체온을 느낀다. 우리는 김희봉의 글을 사랑한다.
<
김정수 칼럼니스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