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손녀 딸 사만타의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사만타는 내 딸의 딸이다. 세월은 유수 같이 흘러 그애가 태어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엘 가게 되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졸업하는 학생수가 삼백명이 넘었는데 “사만타 메리”하는 그애 이름이 호명되자 난 갑자기 가슴이 뭉클하고 코가 시큰해졌다.
18년전 그애는 한국의 차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애가 이 세상에 태어날때 제일 먼저 마주한 사람이 할머니인 나였다. 그애가 처음 눈을 떴을때 바다물처럼 깊은 북청색의 눈을 보고 나는 참 신비한 색깔의 눈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애는 한국에서 일년 반만 살고 미국엘 왔다. 내가 우리 딸을 맞으러 공항에 나갔을때 딸애는 남편 없이 달랑 아기 한명을 안고 나타났다. 그들은 우리 부부와 함께 일년간 덴빌 집에서 살았다. 딸애가 오클랜드에 있던 로펌에 직장을 얻게 되자 자연히 아기는 내 차지가 되었다. 우리 딸은 드디어 이혼녀가 되어 몇년 동안 혼자 힘들게 아기를 키웠다. 적어도 사만타의 새 아빠인 스티브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제 딸은 스티브와 재혼을 해서 지금은 남매를 더 낳았고 행복하게 살고있다.
우리 부부가 딸네 식구를 만나기 위해 세이프웨이 파킹장에 나가자 스티브와 마커스가 나란히 차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커스는 사만타의 친아빠이며 딸의 전 남편이다. 그가 캐나다 토론토에서 딸의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그가 딸의 집에서 월요일 까지 머문다고 딸애는 태연히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딸인 사만타를 만나러 이곳까지 온 것이 처음은 아닌데 마커스도 뻔뻔하지만, 더 우스운 것은 항상 이런 상황에서 태연한 딸 부부다. 내가 아무리 진보파라 해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에 난 아마 너무 늙었나 보다. 부부가 살다가 이혼을 하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서로 원수가 된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그후에도 친구가 되고 자주 부부끼리 만나는 사람도 있다.
“엄마! 내가 마커스를 우리 집에 머물게 하는 것은 사만타 때문이예요. 그 남자는 돈이 없어 호텔엔 못가고 모텔에 가야하는데 난 사만타를 그렇게 초라한 곳에 가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친구가 되야지 원수가 되면 사만타가 불편하잖아요.”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았다. 미국인은 감정적인 한국인보다 실리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우리 딸보다 사위인 스티브가 더 대단해 보였다.
속으론 싫어도 겉으론 평화를 위해 좋은척 하는 미국인들, 그의 배려심, 매너 등이 오늘따라 돋보였다. 사실 마커스는 아직도 재혼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다. 한때는 대단한 미남자였던 마커스도 세월이 흐르자 배도 좀 나오고 이젠 평범한 중년의 남자로 변모했다. 우리 딸이 한때 그에게 빠졌던 것도 그의 인물때문이었다. 반대로 스티브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요가도 수준급이어서 그들보다 나이가 많아도 아직 탱탱한 몸집을 간직하고 있다.
파킹 때문에 늦게 온 스티브를 아이들이 놓칠세라 대디!대디!하면서 손을 꼭 잡고있다. 막내인 여섯살짜리 니코는 요즘 농구에 미쳐서 지 아빠만 오면 함께 몇시간을 농구대에 매달려 산다. 늦게 장가를 가서 늦게 아이들을 가지게 된 스티브는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난 아이들과 함께 노는 시간이 이렇듯 재미진진한 것인줄 몰랐어요”라고.
드디어 졸업식이 끝나고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시간이 왔다. 나도 사만타와 사진을 찍고 키가 큰 그애를 올려다 보니 마침 붉게 물든 노을에 비친 그애의 모습이 금빛 머리칼과 함께 너무 환상적으로 아름다워서 아!하는 탄성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새어 나왔다.
스티브도 사만타와 단둘이 사진을 찍었다. 마커스도 그렇게 찍었다. 친 아빠와 새 아빠와 행복하게 웃으면서 돌려가며 사진을 찍는 사만타의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흐뭇해졌다. 결국 사만타는 자기 팔자에 두 아빠를 가지게 되었다. 저를 낳아준 친 아빠와 저를 십수년 길러준 새아빠 사이에서 사만타가 앞으로도 늘 갈등 없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싶은 마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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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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