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어린이’ 단계는 진화적인 수수께끼다. 무릇 양성생식을 하는 생명체는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수정란이 되는 순간부터 계속 세포를 증식해나가는 성장단계를 거친다. 계속 커가던 생명체가 성장단계가 끝나면 그때부터는 재생산 단계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할 궁리와 행위가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몸의 크기는 더 이상 변화가 없고, 단지 고장 난 곳을 고치는 등 현상유지를 할 뿐이다. 그리고 먹어서 들어오는 에너지는 재생산을 위한 일에 쓴다.
그에 비해 인간의 생애사는 특이하다. 수정되고 태어나서 첫 3년 정도의 젖먹이 기간, 그리고 3세부터 6세까지 젖니를 가지고 어른들 음식을 먹는 연습을 하는 첫 번째 어린이 기간 동안은 여타 동물들처럼 성장단계가 계속된다. 첫번째 어린이 단계에는 모두에게 귀여움과 사랑을 받는다. 이 단계는 첫 어금니가 나오는 6세 정도에 끝난다. 그리고 두 번째 어린이 단계가 시작된다.
6세 정도 부터 그다음 6년 정도 계속되는 두번째 어린이 단계는 수수께끼이다. 이 단계에서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몸이 커지는 속도는 많이 떨어진다. 두뇌도 6세 정도에 이미 어른 두뇌용량의 80-90% 선까지 컸기 때문에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
몸도 두뇌도 커지지 않는 이 단계 어린이의 몸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이빨이다. 젖니에서 영구치로 바뀐다. 젖니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오는 사건이 반복되면서 어린이의 얼굴은 계속 불안정하다. 젖니만 있던 시절 귀엽고 앙증맞기만 하던 얼굴은 이 기간 자그마한 얼굴에 큰 영구치 때문에 입과 턱의 균형이 깨진다. 얼굴 생김새도 어색하다. 빠진 이빨 때문에 발음도 정확하지 않아 어눌하다.
다른 동물들의 경우, 젖니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오는 이 시기는 짧다. 그도 그럴 것이, 이빨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으면 그만큼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얼굴 생김새도 자리를 잡지 않은 불안한 시기가 길 필요는 없다.
유독 인간만이 이 시기가 길어서 엄연한 성장 단계로 인정받는다. 아무 하는 일이 없이 밥만 축내고 있는 어중간한 시기가 왜 이리 길까?
수수께끼의 해답은 두뇌에 있다. 두뇌는 태아 시절부터 태어난 이후에도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여 크기 면으로는 6세 즈음에 거의 완성된다. 그리고 그다음 6년 동안 어린이는 다른 일은 제쳐두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기관인 두뇌를 쓰는 법을 연습한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흡수, 소화하고 응용한다. 사회 속에서 다양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협동, 갈등, 중재, 화해, 협상의 수없는 변주를 시도해 본다.
그러니까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 같은 두 번째 아동기는 온전히 학습만을 위한 시기인 것이다. 초등학생들은 웬만하면 학교를 즐겁게 다니고 모든 것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는 시절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면 그동안 거의 멈추었던 성장 단계가 재개된다. 사춘기를 거쳐 본격적으로 어른이 되는 과정인 12세부터 18세까지의 6년 동안에는 2차 성징이 나타나고 다시 성장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다. 인간의 경우 평균 18세 정도에 어른이 되면서 몸의 성장은 완성된다.
초등학교와 함께 자연적인 학습의 기간이 끝나고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청소년기가 시작된다. 더 이상 재미있게 한가하게 공부를 할 겨를도 그럴 마음도 들지 않게 된다. 청소년기를 맞이한 어른 아이는 이제 본격적으로 짝짓기와 새끼치기에 올인을 하도록 몸이 만들어져 간다.
그렇지만 현대사회는 그러한 청소년에게 두 번째 어린이 시절을 계속하기를 요구한다. 아무 생각 없이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학교를 재미있게 다니던 시절을 그냥 지속하기를 기대한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중학생은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배움의 재미가 자연스럽게 찾아오기보다는 꾸준한 연습으로 자기와 싸우는 단계인 것이다. 중2병은 당연하다.
그런 매일 매일의 싸움터를 나가는 중학생들에게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조건 이해, 무조건 응원뿐이다.
<
이상희 UC 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