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발률 높고 생존율 낮은 독한 암
▶ 두 달 약값이 무려 2,000만원 달해
최근 유방암 환자들이 여성가족부를 상대로 성명서를 냈다. “유방암 환우들이 대한민국의 어머니, 아내, 딸, 여동생이기에 이들이 겪는 고통과 차별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적극 도와야 한다”는 내용이다.
암 환자들이 보건복지부가 아닌 여성가족부를 상대로 성명을 발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실제 국내 여성 환자는 남성 환자보다 차별받고 있다. 여성의 건강보험 보장률(54.2%)은 남성(59.5%)보다 5.3%p 낮다. 이처럼 차별받는 여성 환자 가운데 특히 더 서글픈 여성이 있다. 난소암 환자다. 난소암은 여성암 가운데 유방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발병하지만 사회적 관심은 덜하다.
난소암 환자들은 “정부로부터 서얼 취급을 받는다”며 “차라리 다른 암에 걸렸으면 덜 억울할 것”이라고 한탄한다. 난소암 가운데 BRCA유전자 돌연변이 환자는 혁신 신약이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해 두 달에 2,000만원이나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메디컬 푸어’가 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두 달에 2,000만원 드는 약값
난소암은 최근 급격히 늘고 있다. 2012년 1만2,942명이었던 난소암 환자가 2016년 1만8,115명으로 39%나 증가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또한, 비혼(非婚), 만산(晩産) 여성이 늘면서 폐경기 이후 여성을 위협하던 난소암이 20~30대 젊은 여성에게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 5년 새 난소암으로 진료받은 20~30대 환자가 2,388명에서 3,145명으로 32%나 늘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6년 기준 연령대로 보면 50~60대 폐경기 이후 여성이 49%로 가장 많았지만 20~30대 젊은 여성도 17%를 차지했다.
난소암은 조기 발견하면 5년 생존율이 92%일 정도로 매우 양호하다. 하지만 난소암 환자의 70%가 3기 이후 진단될 정도로 조기 발견이 되지 않고 있다. 난소가 골반 안쪽 깊은 곳에 위치해서다. 게다가 3~4기 진단을 받은 난소암 환자의 5년 생존률은 15~20%에 불과할 정도로 ‘독한’ 암이다. 재발률도 50~70%로 다른 암보다 아주 높아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대전에 살고 있는 한모(52)씨는 2014년 난소암 진단을 받은 뒤 수술하고 얼마 안 돼 두 번이나 재발했다. 구토와 탈모를 겪으며 매달 한번씩 항암치료를 받는 것이 헛되었다. 난소암 가운데 재발률이 40배나 높은 BRCA유전자 돌연변이 암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2월부터 복용한 새 표적항암제 덕분에 15개월이나 암이 재발되지 않았고 거의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걱정이 줄어 심리적으로 안정됐고, 덕분에 삶의 의지가 강해져 항암치료를 받을 때는 그만뒀던 그림 강사 일도 다시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최근 한씨의 시름이 늘었다. 대체 치료제가 없는 이 표적항암제가 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아 두 달에 2,000만원 가까운 비싼 약값 때문이다. 가족들 눈치가 보여 약을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생겼다. 한씨는 “너무 비싼 약값 때문에 약을 먹지 못해 세상을 떠난 다른 난소암 환자를 보면서 유방암 등 다른 암보다 환자수가 적다고 난소암에 관심을 덜 기울이는 상황이 너무 원망스럽다”고 했다.
위암 간암 대장암 유방암 자궁경부암과 같은 5대 암은 국가암검진과 생애전환기검진 등에 포함돼 조기 검진과 치료환경이 잘 조성돼 있는 반면 난소암은 예외다.
정부는 자궁경부암 예방을 위해 지난해부터 12~13세 여학생에게 무료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 유방암은 최근 8년간 8개의 신약 항암제가 허가를 받을 정도로 의학이 발전됐지만 난소암은 2개에 불과하다. 게다가 국내 허가된 2개의 난소암 항암제 가운데 1개(아바스틴)만 건강보험 적용을 받고 있다. 재발률이 40배나 높은 BRCA유전자 돌연변이 난소암 환자는 건강보험까지 받지 못해 비싼 약값 때문에 ‘메디컬 푸어’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혁신 신약 보험 등재에 601일 걸려
난소암은 재발률이 높다. 진행성 난소암의 경우 재발률이 75%다. 거듭되는 재발과 항암치료로 인한 내성은 치료효과를 낮추고 합병증이 생길 위험도 높다.
최근 기존 항암제 단점을 보완하고 난소암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밝혀진 BRCA유전자 돌연변이 사멸을 목표로 하는 표적항암제(린파자)가 나왔다. 임상시험 결과, 해당 약제를 복용한 환자군은 병이 악화되지 않고 생존한 기간이 11.2개월로 위약 복용 환자군(4.3개월)보다 2.6배나 생존율이 높았다.
하지만 환자가 적어 건강보험을 적용 받지 못해 비싼 약값을 부담해야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의약품청(EMA)은 이 약을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신약 허가를 받고 건강보험 급여 등재까지 평균 601일이 걸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245일보다 2배 이상이다.
이재관 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여성암 가운데 유방암은 생존율이나 치료환경이 많이 좋아졌고, 자궁경부암도 예방백신까지 나왔다”며 “반면 난소암은 재발률이 높고 생존율이 매우 낮은 등 치료환경이 열악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신약의 경제성 평가에 앞서 확실한 효과를 보이는 약에 대해선 치료를 우선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돕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최근 새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공약에 따르면, 비싼 검사비와 신약이나 신의료기술 등의 비급여를 줄이고, 재난적 의료비로 인한 가계파탄 방지를 위한 의료비 지원 등이 포함돼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대체 가능한 다른 치료법이 없지만 환자수가 적어 경제성평가에서 소외되는 약제가 없도록 새 정부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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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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